고사양 고성능 게이밍 PC가 글로벌 PC 시장을 이끌 새로운 메인 트렌드로 떠오른 가운데, 기존 게이밍 PC 시장을 이끌던 조립 PC 시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통적인 순수 조립 PC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완성된 형태로 제공되어 구매 즉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 PC’를 중심으로 게이밍 PC 시장이 재편되기 시작하면서 ‘게이밍 PC=조립 PC’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완제품 PC의 장점은 사용자가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손쉽게 원하는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레노버의 게이밍 데스크톱 ‘리전 T530’으로 구성한 게이밍 PC 시스템의 모습. / 레노버 제공
완제품 PC의 장점은 사용자가 하드웨어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손쉽게 원하는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레노버의 게이밍 데스크톱 ‘리전 T530’으로 구성한 게이밍 PC 시스템의 모습. / 레노버 제공
이전까지 게이밍 PC 시장을 조립 PC가 주도하던 것은 순전히 ‘가격 대비 성능’, 즉 ‘가성비’ 때문이었다. 가격은 비싸지만 구성이나 성능이 평이해 게임용으로 적합하지 않던 브랜드 완제품 PC에 비해, 조립 PC는 게임 구동에 적합한 고성능 하드웨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같은 금액으로 쾌적한 게임 실행이 가능했다. 게이밍 PC를 중심으로 조립 PC 시장이 활성화되었고, 그에 맞춰 각종 PC 하드웨어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들도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최신 기술의 상향 평준화 현상에 이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가성비’보다는 ‘비용 효율’을 중심으로 바뀌면서 순수 조립 PC 시장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기존의 조립 PC는 사용자가 각각의 부품을 따로 구매해 직접 조립하는 만큼 완제품 PC에 비해 사후지원(AS) 면에서 취약한 것이 최대 단점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사용자 스스로 조립 지식 및 하드웨어에 대한 기본 지식을 익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다.

요즘은 각종 IT 기기에 익숙한 20대~30대 소비자들 중에서도 PC 조립 및 하드웨어 지식이 거의 전혀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과거 IT 제품 사용자의 ‘기본 스킬’과 다름없던 윈도 재설치도 스스로 못해서 주변의 전문가를 찾거나 서비스센터를 찾는 경우가 더 많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스스로 시간을 투자해 하드웨어 지식을 배우고 스스로 조립하는 것보다 돈만 내면 원하는 기능과 성능을 제공하는 제품을 바로 손에 넣을 수 있는 ‘완제품’을 더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이밍 노트북의 인기는 ‘이동성’뿐 아니라 구매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이라는 특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델의 게이밍 노트북 ‘에일리언웨어 m15’ 제품. / 델 제공
게이밍 노트북의 인기는 ‘이동성’뿐 아니라 구매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제품’이라는 특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델의 게이밍 노트북 ‘에일리언웨어 m15’ 제품. / 델 제공
이러한 PC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게이밍 노트북’의 인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최신 게이밍 노트북은 성능 면에서 전통적인 데스크톱과 비교해 손색이 없지만, 여전히 같은 성능의 데스크톱 완제품과 비교해 약 1.5배, 조립 PC와 비교해 약 2배 이상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게이밍 노트북의 인기와 판매량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노트북의 장점인 ‘이동성’ 때문에 게이밍 노트북을 찾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게이밍 노트북을 집이나 기숙사, 사무실 등 고정된 장소에 놓고 데스크톱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이동성뿐 아니라 별다른 고민이 필요 없는 ‘완제품’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함을 보여준다.

HP와 델, 레노버 같은 글로벌 PC 제조사들이 최근 들어 게이밍 브랜드를 강화하면서 게이밍 노트북은 물론 게이밍 데스크톱 라인업도 확대 강화하고 있는 것도 게임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완제품 게이밍 PC’를 찾는 소비자들이 그만큼 늘고 있음을 방증한다.

게이밍 PC 시장에서 조립 PC가 아직 몰락한 것은 아니다. 조립 PC 견적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PC 전문 쇼핑몰 ‘샵다나와’는 지난 11일 자사의 2018년 조립 PC 거래량이 20만대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으며, 거래액도 2532억원으로 전년 대비 32.8%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샵다나와는 지난해 4분기를 중심으로 게임용 PC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으며, 올해도 게이밍 PC 부문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향후 게이밍 PC 시장에서 단순 조립 PC의 전망이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단지 ‘더 저렴한 것’보다는 ‘더 편한 것’을 찾을수록 초보자들의 진입장벽이 높은 조립 PC보다 브랜드 완제품 PC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브랜드 PC 제조사들은 완제품 게이밍 PC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 데스크톱 오디세이’ ‘델 에일리언웨어 에이리어-51’ ‘HP 오멘 데스크톱’ / IT조선 DB
글로벌 브랜드 PC 제조사들은 완제품 게이밍 PC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삼성 데스크톱 오디세이’ ‘델 에일리언웨어 에이리어-51’ ‘HP 오멘 데스크톱’ / IT조선 DB
최근 시장조사기관 가트너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4분기 전세계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3% 줄어든 6860만 대를 기록했다. 2018년 한 해 PC 출하량도 2억5940만대를 기록하며 2017년 대비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CPU를 비롯한 일부 하드웨어의 공급 부족과 복잡하게 돌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PC 출하량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글로벌 PC 시장을 이끄는 HP와 델, 레노버 등 톱 3 제조사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시장 점유율이 최소 2.1%에서 최대 6.9%까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랜드 파워가 있는 상위 브랜드로의 쏠림 현상이 가속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들 브랜드는 공통적으로 게이밍 PC 라인업을 더욱 확대, 강화하는 추세다.

결국 게이밍 PC 시장에서 순수 조립 PC가 대부분 시장을 브랜드 완제품에 넘겨주고 ‘쓰는 사람들만 쓰는 제품’으로만 남게 되는 것도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