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SK텔레콤 ICO 지원 서비스 물거품되나(?)

입력 2019.01.16 11:39

SK텔레콤이 블록체인 담당 부서 이름을 설립 1년여만인 2018년 12월 말 바꿨습니다. 수장인 오세현 전무는 그대로이지만 조직을 구성하는 유닛이 통합되면서 조직 성격과 구성이 바뀐 것입니다. 사업 개발은 사라지고 인증으로 성격이 완전히 바뀐 셈입니다.이를 이유로 업계는 SK텔레콤 블록체인 담당 조직이 출범하면서 약속했던 것들이 모두 파기된 것 아니냐고 우려합니다. (관련기사 : SK텔레콤, 블록체인 조직 변경…인증사업 강화)

2018년 4월 24일 SK텔레콤 블록체인 사업방향을 발표하는 오세현 당시 블록체인사업개발유닛장. / 조선비즈DB
2018년 4월 24일,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 3사 중 처음으로 블록체인 발전 방향과 SK텔레콤 사업 비전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발표를 맡은 오세현 블록체인 사업개발 유닛장(현 블록체인/인증 유닛장, 전무)은 '고객에게 신뢰받는 블록체인 거래 플랫폼'을 사업 비전으로 제시하며 블록체인으로 디지털 실명제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외에도 오 유닛장은 SK텔레콤이 블록체인을 이용한 자산관리·지급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언론은 SK텔레콤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Token Exchange Hub)’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습니다.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는 SK텔레콤이 건전한 암호화폐 생태계를 조성하고 블록체인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며 약속한 사업입니다.

오 유닛장은 출범 당시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사업을 하려는 기업과 개인, 그리고 사용자 모두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SK텔레콤은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를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암호화폐 공개(ICO)를 하고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 체계적인 행정 지원과 조언을 제공하겠다"며 "이를 통해 안전하고 투명한 거래가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부연했습니다.

SK텔레콤은 또, "이를 위해 일회적 투자자 매칭이 아닌 블록체인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돕고, 블록체인 기술 기반 사회적 기업도 집중 육성할 방침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SK텔레콤 블록체인 사업부가 출범한 이후 블록체인 사업과 관련해 전한 소식은 단 두 건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 모델 발굴 및 구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2018년 10월 22일)했다는 것과 통인익스프레스와 블록체인 기반 이주 관련 O2O 플랫폼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2018년 10월 25일)했다는 내용입니다. 반면, ICO를 추진하는 스타트업을 도왔다는 소식은 전해진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은 블록체인 담당 부서 이름을 설립 1년여만인 2018년 12월 말 바꿨습니다. SK텔레콤은 2017년 말 신설했던 '블록체인 사업개발 유닛(Unit)'을 올해부터 블록체인/인증 유닛'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4월 기자들 앞에 선 오세현 전무는 블록체인 사업개발 유닛장에서 블록체인/인증 유닛장으로 직함이 변경됐습니다.

매년 말이 되면 기업은 다음 해 사업 계획에 맞춰 조직 개편과 함께 인사를 합니다. SK텔레콤이 블록체인 담당 부서 이름을 바꾸고, 조직 일부에 변화를 준 것 역시 매해 통상적으로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SK텔레콤은 부서명을 바꾸면서 이동통신 3사의 통합인증 공동 브랜드 '패스(PASS)' 담당 조직을 블록체인/인증 유닛으로 통합했습니다. 본래 패스 조직은 '데이터 유닛' 소속이었습니다.

여기서 SK텔레콤이 왜 블록체인 관련 부서명(명)에서 '사업개발'이라는 단어를 빼고 '인증'이라는 용어를 포함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지난해 속도를 붙였던 블록체인 기반 신분증 사업에 몰두하겠다는 뜻일까요. 여기다 블록체인과 전혀 관련이 없던 패스를 조직을 흡수하면서 블록체인 담당 조직의 덩치를 키운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지난해 말부터 "SK텔레콤이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를 접었다"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 블록체인·암호화폐와 관련해 ICO, 암호화폐 거래소 개설 등 8개 정도 사업을 구상했지만,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정부 정책 방향을 의식해 사업 방향을 변경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최태원 SK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고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정부가 2017년 이후 암호화폐에 대해 보여준 인식을 고려하면 SK텔레콤이 블록체인·암호화폐와 관련해 신분증 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정부가 공인인증서 폐지를 약속한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반 신분증과 이를 이용한 본인인증 서비스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정부가 2017년 12월 28일 암호화폐와 관련해 투기, 외화 유출 논란이 일자 관계부처 차관급 회의를 열고 강력한 대책을 예고했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한 상황에서 ICO 관련 사업을 펼치기 어렵다는 정무적 판단도 작동했으리라 보입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월 11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커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금지 법안을 준비 중"이라며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같은 날 국회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법무부와 같은 생각이다"이라며 "박 장관 말씀은 부처 간 조율된 것이고 서로 협의하면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언급하며 블록체인·암호화폐 사업에 경고한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같은 날 청와대는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와 관련한 박상기 법무부 장관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해온 방안 중 하나이지만,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암호화폐를 '바다 이야기'로 본다'는 소리가 나왔고, 이후 정부는 이렇다 할 변화된 입장을 보이지 않습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 관련 업계에서 "정부가 어서 관련 규제를 만들어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입니다. 벤처기업이 이럴진대 재계 3위인 SK그룹 소속인 SK텔레콤이 ICO 관련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상황입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약속한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를 접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사업 방향성을 말한 것이었다"며 "사업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사업을 접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SK텔레콤 말처럼 사업 방향성만을 정한, 확정되지 않은 사업을 굳이 기자간담회를 열어 발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굳이 암호화폐 투자와 ICO 참여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 문제가 된 시기에 이동통신 1위 업체가 언론 앞에서 블록체인·암호화폐 관련 사업 방향을 설명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발표 자리이니 암호화폐 관련 질문이 나오지 않았을 거로 생각했다면 상황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이런 이유로 SK텔레콤이 야심 차게 ICO를 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 사업을 접은 것은 아니냐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만약, 토큰 익스체인지 허브 사업을 접었다 해도 정부와 블록체인 업계 양쪽의 눈치를 보느라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쳤을 수도 있을 거라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물론 '제2의 인터넷'이라 불리는 블록체인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SK텔레콤의 의지는 높이 삽니다. 하지만 블록체인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게 된 SK텔레콤. 기업이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 정부. 누구 잘못이 더 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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