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가 한국 스타트업의 유니콘기업 발돋움을 막는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유니콘기업이란 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신생 기업을 말한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 체감규제포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등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마니실에서 ‘4차산업혁명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각종 규제 법안과 간접 규제의 문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기술혁신, 신산업 진흥에 필요한 규제개혁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 / 류은주 기자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 / 류은주 기자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규제편의주의’를,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는 ‘스타트업 혁신·경쟁 저해 규제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회 좌장은 이상우 연세대 교수(정보대학원)가 맡았고, 패널로는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와 최세정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이상용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충남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 규제박스에 갇힌 韓 스타트업...유니콘기업 가뭄

신용현 의원(바른미래당)은 환영사에서 "CES 2019에서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역량이 어느 나라 못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와 관련한 규제는 이스라엘이나 프랑스 등과 비교해 너무 많다"며 "스타트업을 발아시키는 것은 잘 하지만, 육성시켜 규모를 키우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이 창업 국가를 표방한 지 오래됐지만, 아직 체감 성과가 좋지 못하는 데는 규제가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관영 의원(바른미래당)은 축사를 통해 "세계 100대 스타트업 리스트를 보면 미국은 56개, 중국은 24개가 있지만 한국은 한 곳도 없다"며 "상위 100개 기업의 사업 모델을 한국에 적용한다고 할 때, 그 중 절반 이상은 규제 때문에 사업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조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 계류된 1000개 법 중 진흥법이 300개인 반면 규제법은 700개 정도며, 정부가 규제혁신과 규제철폐를 내세우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해마다 더많은 규제가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며 "앞으로 규제 관련 법안을 낼 때는 ‘규제영향평가'를 할 수 있도록 국회 내 기구를 뒀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들도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한국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로 ‘규제'를 꼽는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니콘이 많은 영역인 모빌리티, 디지털헬스케어, 핀테크 영역에서 한국의 스타트업은 6곳 뿐이다"며 "지나친 규제는 규제를 적용받지 않은 해외기업과 비교해 한국 회사들의 혁신을 막는 역차별 문제를 야기한다"고 말했다.

. / 텔레닥 페이스북 갈무리
. / 텔레닥 페이스북 갈무리
이어 그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우버'로 불리는 미국의 ‘텔레닥'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텔레닥은 2015년 상장한 뒤 주가가 급등해 4조원의 가치를 지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임 센터장은 "일본과 미국은 원격의료가 이미 가능해졌지만,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몸상태를 체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업을 할 수 없다"며 "지금도 전안법,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은 한국 디지털기업, 스타트업계에서 규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료기기 ‘카트'를 개발한 스타트업 스카이랩스도 원격진료가 금지돼 있는 국내 의료법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먼저 인증을 받아 제품 상용화에 나섰다. 카트는 심방세동을 측정하는 반지형 웨어러블 기기로 유럽심장학회(ESC)가 처음 개최한 신기술부문에서도 최고 혁신제품으로 뽑혔다.

◇ 부가통신사업자 ‘실태조사'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최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따라 부가통신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법제화됐다.

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의 유통방지를 위해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부가통신사업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요청하는 사업 실태조사를 위한 자료제출 의무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장 스타트업 사업자들은 이 같은 규제가 성장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불필요한 규제의 부작용들을 지적했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IT정책전문대학원)는 "한국은 스타트업계는 유니콘 기업 가뭄이고, 동남아는 무규제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전규제 방식이 새롭게 도입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실태조사가 실효성과 역차별 문제로 도입 반대가 있었던 경쟁상황평가의 대안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목적과 조사의 범위, 대상이 모호한 조사는 정책당국자 자의적 의사에 좌지우지 될 수 있어, 수범자에게 불안과 혼동을 가져다 준다"고 지적했다.

또 "과도한 자료제출 의무 규정은 행정조사기본법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을 소지가 있다"며 "기업에게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는 경우는 서비스공공성이 크거나 불공정행위가 심각하다는 등의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역시 "규제의 수단이 피규제자의 이익을 지나치게 침해하진 않는지, 영업자유의 본질적 침해가 있는지, 실현하고자 하는 규제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살펴봐 적합한 규제인지, 나쁜 규제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이 원칙을 대입해보면 부가통신사업자 실태조사 자료제출 규제는 잘못 설계된 규제다"고 일침했다.

이어 "규제가 없어지는 속도보다 만들어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며 "법개정에 따른 후속조치 시행령 작업에서 기업 겁주기로 실태조사를 악용하는 사례가 없는 조항들을 넣어 기업들의 우려를 잘 해소해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 / 류은주 기자
17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개최된 4차 산업혁명 시대,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 / 류은주 기자
최세정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는 이 같은 규제들이 결국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제품 서비스를 가로막는 측면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스타트업은 시장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혁신을 통해 나아가야하는데 규제는 이전 것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미래를 규제할 수 없다"며 "혁신산업을 이해하는 규제가 없다보니 혁신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고 결국 소비자들이 기술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편의를 빼앗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해외에서 실시되고 있는 서비스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규제는 시장에서 이해관계 대립하는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국민(소비자)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데이터 투명성과 책임성에 기반한 사후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남들은 꽁꽁감추눈 기업정보 공개하라니"

해외 스타트업들과 달리 국내 스타트업들이 겪어야할 문제들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임정운 센터장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사례를 들어 부가통신 사업자 실태조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임 센터장은 "아마존은 킨들, 에코스피커 등의 공식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2006년 처음 시작한 클라우드서비스 AWS 매출도 공시 의무가 생긴 2014년 전까지 철저히 감췄다"며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지 12년이 흘렀지만 지금까지도 구글은 유튜브의 매출과 수익성 여부를 철저히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공개기업인 스타트업들은 투자유치 내용이나 고객수, 매출, 이익 등 경쟁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데 있어서 극히 조심하는 입장이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세계 최초 클라우드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 시작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경쟁사들이 클라우드컴퓨팅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경쟁제품이 나오는 데 7년이 걸렸다"며 "이것은 비즈니스 기적이다"고 말한 바 있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도 "실태조사가 시행된다면 이 자료가 어디에 쓰이는지, 실질적인 자료의 목적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알려주셨으면 한다"며 "그렇지 않고 규제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때야 실태조사가 들어오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이진수 과기부 과장은 "부가통신사업자가 2018년 기준 1만6000개라 모든 사업자를 행정조사한다는 것은 엄두도 안나고 그럴 의지도 없다"며 "다만 실태조사 대상으로 스타트업이 들어갈 확률은 높지 않아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여러 사전적 연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실태조사 과정에서 여러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분들의 목소리를 들어 시행령을 마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