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한 전자상거래 시장 내 소비자 보호 규제를 강화하겠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야심차게 꺼내들고 나선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자상거래법은 2002년 제정돼 수십차례 개정됐지만 이제는 전면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데는 정부와 업계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한다. 하지만 공정위의 강행군에 소비자와 시민단체를 비롯해 학계,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은 의견 수렴이 충분치 않다며,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 시장의 혼란과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업계 ‘뜨거운 감자'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내용은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의 핵심은 전자상거래 사업자 중 통신판매중개자의 개념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자적 방식으로 사업자의 상품정보 제공과 소비자의 청약이 이뤄지는 비대면 거래는 ‘전자상거래’로 정의하고, 그 외의 우편 등의 방식으로 하는 비대면 거래는 통신상거래로 구분한다. 순수하게 중개만 하는 배달앱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해당 법에서 ‘사이버몰’ 사업자로 분리된다.

현행 법은 통신판매업자와 통신판매중개업자라고 구분했다. 직접 판매하느냐, 단순 중개만 하느냐의 차이지만, 현재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어떤 쇼핑몰이 통신판매업자인지 중개업자인지는 구분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쿠팡의 경우 직접 제품을 조달해 판매하는 판매자이기도 하면서, 오픈마켓 운영을 통해 판매업자들이 입점해 거래할 수 있는 판매 중개업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신판매중개업자는 사실상 판매자와 같은 전자상거래 업무를 수행해도 판매자에게 부과되는 법적 책임을 일부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법에 따르면 사업자가 스스로 ‘중개업자’라고 고지하면 중개업자로 분류된다.

개정안은 기존의 통신판매업자와 통신중개업자를 모두 전자상거래사업자로 통합한다. 개정안은 또한 통신판매자라는 개념을 두고, 비대면 거래 중 전자상거래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상거래 전부를 통칭한다. 예를 들어 전화나 카탈로그 방식을 통한 쇼핑 사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개정안은 순수하게 판매 중개 플랫폼만 운영하는 사업자를 사이버몰로 규정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 배달 앱 사업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사이버몰도 소비자 피해에서 책임이 강화됐다. 배달 앱 사업자도 판매업자와 관련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진다. 또한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 재산 등의 위해가 발생하면 배달 앱 사업자도 필요한 조치에 협력해야 하는데,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배달 앱을 통해 동네 중국집에서 음식을 주문했다가 배탈이 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면, 배달 앱도 소비자에게 동네 중국집 신원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보호원으로 연결해주는 등 ‘중재' 의무가 생긴다. 만약 배달 앱이 이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소비자는 배달 앱 사업자에게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개정안에서는 통신판매사업자의 신고 의무를 폐지했다. 현행 법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물품을 판매하는 사업자는 통신판매업 신고가 있다. 이미 사업자 등록 절차도 별도로 진행해야 하므로, 판매자가 신고 절차를 두 번 밟는다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자상거래법 상 판매자에 대한 가장 큰 제재 조치였던 ‘영업정지’를 폐지했다. 사업자에 대해 영업을 정리하면 해당 사업자로부터 재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받던 다른 소비자가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다. 다만 전자상거래 사업자들을 과태료와 과징금 대상으로 재분류해 다른 제재 조치를 부과하는 것으로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개정법안은 문재인 대통령이 내세운 공정경제라는 슬로건 하에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특히 공을 들이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어 "PC통신 시절의 법률로 5G시대 전자상거래를 규정하고 있다"며 "모바일 전자상거래 비중이 전체 상거래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2002년의 법 체계는 많은 한계가 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차현아 기자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차현아 기자
◇ 취지는 좋은데…’업계 다 죽는다' 반발 들끓는 이유

23일 국회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법률안’ 토론회에서는 소비자 단체와 온라인쇼핑협회, 인터넷기업협회 등 사업자 단체는 물론 소비자 단체까지 나서 개정안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일제히 쏟아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통신판매중개자의 개념을 없앴다는 지점을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전자상거래로 직접 판매를 하는 당사자와 일부 판매에 관여하는 판매 ‘중개’업자인 오픈마켓 등을 묶어 같은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건 지나친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이커머스 업체인 A는 오픈마켓에 판매자를 입점, 판매를 돕는 ‘중개' 역할을 한다. 소비자는 A 웹사이트에 방문해 물건을 구매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A에 입점한 판매자와의 계약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기존 법 조항에 따르면 A는 판매자의 상품 정보를 제공하고 판매자와 소비자 간 청약 접수만을 돕는 ‘통신판매중개자’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A와 A에 입점해 상품을 판매한 사업자가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A와 A에서 물건을 판매한 사업자가 같은 책임을 지게된다.

서종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막연하게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범위만 넓혀놓으면 오히려 책임 소재를 구분하는 일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며 "판매업자를 세분화하지 않고 뭉뚱그리면, 세분화된 쟁점이 반영되지 못해 일률적으로 모든 사업자가 다 같은 책임을 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네이버 등 포털 기업들도 이번 개정안 내용에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배달 앱 등의 사이버몰의 책임성을 강하게 만든 법안이, 엉뚱하게 네이버와 카카오가 운영하는 쇼핑 서비스 뿐만아니라 카페와 블로그 서비스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네이버 카페 중에는 ‘중고나라’가 있다.

박성호 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포털은 거래당사자가 아니며 서비스만 제공하는 사업자인데, 판매자와 소비자 간 거래를 대신해 분쟁을 왜 대신 중개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문상일 인천대 법학과 교수는 "단순히 플랫폼만 제공하는 사업자부터 실제 통신판매 사업자까지 판매 중간관여 정도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사전에 모든 규제 틀을 만들어 한번에 모두 적용하기 보다는 업계의 자율규제를 전제로, 일부 문제에 대해서는 ‘핀셋 규제’를 도입해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통신판매업자의 신고절차 폐지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윤태 온라인쇼핑협회 부회장은 "현행 신고제에 의해 사업자 현황과 운영 정보가 수집되므로, 소비자들도 사업자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 쇼핑몰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며 "온라인 쇼핑 사업자 수만 58만 개에 달하는 상황에서 신고제가 사라지면 관리가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법안이 정작 소비자 권리 보호라는 본래 취지를 제대로 못 살렸다는 비판은 더욱 뼈아프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법안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소비자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지도 정확히 평가가 어렵고, 소비자 보호의 실효성은 물론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도 정확하지 않은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송상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은 "전자상거래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새로운 상거래 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쫓아가면서 개정하고 반영하는 것보단 포괄적으로 법안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중개업이든 판매자든 전면에 나서서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사업자라면 일단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취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