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유튜브 등 인터넷 영화 서비스(OTT)를 제외한 방송법 개정은 한국 기업에 독이 된다.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트렌드가 대중화됐지만, 정부가 지상파 방송사나 유료 방송사만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외산 기업만 우대하는 이른바 역차별 규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기업만 방송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자칫 국내 기업 역차별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외 OTT 기업을 방송법 테두리로 가져오는 등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로고. / 김형원 기자
넷플릭스 로고. / 김형원 기자
김성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통합방송법’으로 불리는 방송법 개정법률안을 11일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방송사업은 ▲지상파방송 ▲유료방송 ▲방송콘텐츠제공사업 등으로 구분된다. 넷플릭스 등 OTT 사업자는 유료방송 사업자로 등록해야 하며, 기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실시간 중계 방송하는 경우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 외의 경우 신고를 해야 한다.

정치권은 OTT가 전통적인 방송과 전송 방식만 다를 뿐 시장에서 유료방송과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유료방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IPTV 등 유료방송 업계는 VOD 콘텐츠 공급 등 이미 OTT에 준하는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이들 업체는 방송발전기금, 망 사용료 등을 지불하지만, 넷플릭스 등 국외 업체는 이런 규제에서 자유롭다.

더 큰 문제는 방송법 개정으로 OTT를 방송법에 포함하더라도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국외 사업자가 국내 방송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가 여부다. 문화관광체육부의 ‘음원 전송 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처럼 국내 업체만 적용 받고 국외 업체는 자유롭다면 국내외 업체간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국외 업체는 국내 OTT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특히 넷플릭스는 190개국 1억3900만명이 넘는 유료 회원을 확보했다. 국내에서는 자체적으로 확보한 유료 회원 외에도 LG유플러스와 딜라이브 등 유료방송 사업자와의 파트너십으로 100만명에 달하는 시청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옥수수, 푹, 티빙 등 국내 OTT 서비스는 국외 업체와 비교해 시장 점유율이 미미한 상황이다. 국내 업체가 2018년에만 120억달러(13조486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투입해 700편 이상의 콘텐츠를 확보한 넷플릭스와 경쟁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유튜브는 이미 20대 미만 신세대의 놀이터로 정평이 나 있다. 이들 신세대에게 TV 채널과 프로그램은 구시대 유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4일 2018년 6월 4일부터 8월 10일까지 전국 4291가구에 거주하는 만 13세 이상 남녀 7234명을 대상으로 가구방문 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한 ‘2018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일상생활시 주로 이용하는 방송 시청 도구는 스마트폰이 57.2%에 달했으며, 하루 당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시청 시간은 1시간 36분에 달했다. OTT 이용률은 방송 시청 도구로 스마트폰을 이용한다고 응답한 이의 42.7%로, 2017년 36.1% 대비 6.6%포인트 늘었다.

OTT 중 유튜브(38.4%)를 보는 이가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페이스북(11.5%), 네이버TV(7.1%), 아프리카TV(3.8%) 순이다. 외산 서비스인 유튜브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의 점유율을 모두 합하면 51.2%에 달한다.

◇ OTT 포함한 방송법 개정돼도 산넘어 산

유료방송 업계는 방송법 개정안이 발의돼도 OTT를 현재 방송법 테두리에 넣기에는 너무 많은 난관이 있다는 시각이다. 국외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에 앞서 OTT를 어떻게 방송법에 넣을지에 대한 세부 규정과 각종 문제점을 아직 파악하지도 못했다는 지적이다.

세부 규정을 마련했다 해도 국외 업체와의 역차별 해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료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어렵게 OTT에 대한 규정을 만든다 해도 넷플릭스 등 국외 업체를 국내 법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FTA 등 통상무역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 다각도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케이블TV 등 유료방송 업계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OTT 법 테두리에 포함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료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OTT를 방송법에 포함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논의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며 "논의 결과가 언제 나올 것인지는 예측이 어렵다"고 말했다.

제시카 리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은 이에 대해 "국회에서 아직 관련 논의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공식 입장을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을 아꼈다.

국회는 방송법 개정안과 별도로 유료방송 업계 합산규제 재도입과 관련한 결론을 내릴 예정이다. 합산규제란 특수관계자를 포함한 유료방송 업체가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3분의 1 이상을 갖지 못하게 하는 규제다. 사실상 KT와 위성방송사인 KT스카이라이프를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방송 시장과 관련해 KT를 타깃으로 한 합산규제에만 목을 매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방송 시장은 넷플릭스 등 OTT를 중심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국회는 여전히 시장 변화에 둔감한 것 같다"며 "합산규제가 아니라 방송 시장 전반과 관련한 시장지배적 사업자 등장을 고려한 점유율 규제를 포함한 방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