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중앙 지역 화폐 활성화, 예산 낭비에 기업 경쟁력 떨어뜨려

  • 홍기훈 홍익대학교 교수
    입력 2019.02.01 06:00

    노원구가 '노원'이라는 지역 화폐를 만들어 2018년 2월부터 운용한다. 블록체인 기업과 함께다. 이 블록체인 업체는 노원 이외에 영등포구 블록체인 기반 제안 평가 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블록체인을 공공서비스에 접목하는 정부 사업에 적극적이다.

    지역 화폐 ‘노원’은 '노원구의 지역 화폐'라는 의미다. 여기에 '원화 없이(No-Won)'결제 가능하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노원구와 블록체인 기업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비용 절감과 투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이 만나 이뤄진 성공 프로젝트라고 홍보한다. '블록체인의 성공적인 활용 케이스'를 꼽을 때 경기도 따복공동체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노원 구조를 살펴보면 지역 화폐라기보다는 '상품권'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교적 현실적인데다 상품권 이용내역이 블록체인에 저장되는 만큼 종이상품권보다 거래 과정이 투명해 보인다. 전자화된 만큼 종이상품권보다 복제하기 어렵기도 하다.

    노원의 ‘성공적인’ 상용화 과정을 보고 다른 지자체도 이 부문에 뛰어들었다. 2019년에는 성남시, 인천시, 시흥 등 경기도 31개 시군을 포함해 지역 화폐 발행을 계획하는 지자체가 120곳쯤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지역 화폐 발행 규모는 2018년 3714억원이던 것이 2019년에는 2조원으로 급등할 예정이다.

    하지만, 필자는 예산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노원은 성공 프로젝트가 아니다. 노원구의 대대적인 홍보에 반해, 2018년 말 기준 노원의 누적발행 수는 7500만노원이다. 누적 이용액은 3400만원이며, 회원수는 2018년 7월 기준 5777명이다.

    노원구 인구가 약 55만명임을 고려하면 이용인구 비중은 불과 1%쯤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지역화폐를 지역주민 100명 중 1명만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회원 모두가 사용자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용률은 0.3~0.5%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 화폐단위가 일정 기간에 한사람으로부터 다른 사람의 손으로 양도, 거래되는 횟수를 '통화유통속도'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통화유통속도는 연간 국민소득을 통화량으로 나눠 계산한다.

    통화유통속도가 지나치게 낮은 화폐는 소득대비 교환수단으로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실상 화폐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통화유통속도는 1992년 1.4를 기록한 후 지속 하락해 2017년 0.7에 머무른다. 미국 통화유통속도는 2017년 1.43이다.

    노원의 통화유통속도는 어떨까? 사용자 5777명에 2018년 1인 소득 3000만원(물론 노원구 평균소득은 대한민국 평균소득보다 높겠지만)을 곱하면 1700억원쯤이다. 노원의 2018년 누적 이용액 3400만원을 이용자 총소득으로 나누면 통화유통속도는 0.0002가 나온다.

    물론, 중앙화폐인 원화와 지역 화폐인 노원을 동일 선상에 놓은 비교가 공평하지는 않다. 하지만, 0.0002는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싶다.

    게다가, 실제 노원구에 가서 노원을 사용하려 할 때 이용할 수 있는 가게 수는 겨우 80곳쯤에 머문다. 55만명이 거주하는 지역의 지역 화폐를 단 80곳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도 '블록체인 지역화폐 중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부른다니, 민망하게 느껴진다.

    결국 지역 경제에 노원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는 노원구의 일방적인 홍보가 아닌 보다 구체적인 수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지자체 부채 비율은 매우 높다. 이때 지역 화폐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면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재무 위험도 늘어난다. 지역 화폐 목표 발행액의 4%인 800억원을 중앙정부가 지원금으로 주기로 하고,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상반기 집행 금액 349억원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중앙 정부의 예산 지출 또한 늘어난다.

    지역마다 적게는 3%에서 최대 10%가량 할인해서 지역 화폐를 판다. 이는 할인액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면서까지 발행을 독려한다는 이야기다. 언론에 따르면 행안부 지역금융지원과 관계자가 "지역 화폐 발행은 이번 정부 국정과제"라며 "올해 국가 지원 계획이 알려지니까 발행하겠다고 나서는 지자체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2018년 7월 판매를 중단한 ‘강화사랑 상품권’ 실패를 기억해야 한다. 이 상품권은 지역화폐와 닮았다. 지금까지 3~5%씩 할인 판매하느라 재정 손실금이 10억원쯤 발생했는데, 정작 강화사랑 상품권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전혀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는 2017년 '강원상품권' 480억원어치를 찍어냈다. 이 중 법인과 개인이 산 것은 10%도 안 됐고, 나머지 90%는 강원도 예산으로 다시 샀다고 한다.

    강원도 의회는 ‘전형적인 예산 낭비 사례’라며 강원상품권 폐지를 논의한다. 관계자는 "일부 가맹점이 할인 판매하는 상품권을 사서 현금화하는 '상품권 깡(할인판매)'을 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고, 군 공무원들에게 매월 얼마씩 할당 판매를 해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지역 화폐뿐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 정부 예산을 쓰는 블록체인 사업'이 과도하게 많다고 생각한다. 이는 정부 예산을 함부로 쓰는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부 지원정책에 기대 블록체인 산업계 경쟁력이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늘 '정부 지원이 부족해 기술과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업계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정부 지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해주고,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정부 지원사업에만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안목과 기술력을 기르는 데 실패해서다.

    필자는 정부 지원사업으로 블록체인 기업을 육성하는 걸 반대한다. 블록체인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선 정책으로 밀어줄 것이 아니라 기업 간 경쟁을 거쳐 자생 및 생존 역량을 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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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입니다. 현재는 중소기업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우베멘토의 리서치 자문과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하여 현업 및 정책적으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