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은하철도999’, ‘천년여왕', ‘우주해적 캡틴 하록’, ‘퀸 에메랄다스' 등 SF 명작 만화·애니메이션의 공통점은 세계관을 공유했다는 데 있다.
은하철도999의 여주인공 ‘메텔'은 천년여왕 여주인공 ‘유키노 야요이'(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의 딸이다. 지구의 미녀 야요이에서 행성 라 메탈의 지배자 프로메슘으로 탈바꿈하는 그는 은하철도999에서 주인공 소년 테츠로(철이)의 엄마를 죽여 박제로 만든 최종 보스로 그려진다.
하록과 함께 우주를 무대로 활약하는 여해적 ‘퀸 에메랄더스'는 천년여왕의 딸이자 은하철도999의 메텔과 자매 관계인 인물이다. 또, 캡틴 하록의 우주전함 ‘아르카디아호'를 만든 토치로와는 결혼을 했다.
이들 SF작품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 ‘어벤져스’처럼 서로 연결되는 세계관을 갖췄다. 명작 SF 만화라 칭송받는 이들 작품의 연결고리에는 원작자인 만화가 마쯔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있다.
◇ 마쯔모토 세계관 연결고리의 핵심 ‘스타 시스템'
일본 만화 업계에 따르면 은하철도999와 천년여왕 등 마쯔모토의 만화 작품이 처음부터 연결된 것은 아니다.
1981년 공개된 천년여왕 속 주인공 야요이는 은하철도999의 여주인공 메텔과 쏙 빼닮은 절세미녀로 나온다. 지구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야오이는 착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은하철도999에 등장하는 천년여왕이 된 야요이(프로메슘)는 차가운 외모와 마음을 가진 기계인간으로 나온다.
마쯔모토가 자신이 만든 작품의 세계관을 연결하고, 은하철도에 하록을 등장시킨 것은 ‘스타 시스템' 때문이다. 마쯔모토는 하록, 에메랄더스, 메텔 등 대중에게 친숙한 캐릭터들이 다른 작품에 등장하면 그 작품의 인기도 올라간다고 설명한다. 현재 영화 업계가 인기 배우를 출연시켜 영화 흥행을 높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끝없이 우주를 동경한 만화가 ‘마쯔모토 레이지’
2019년 올해로 81세를 맞이한 만화가 마쯔모토는 1954년 고등학생 시절 그렸던 ‘꿀벌의 모험'으로 만화가로 데뷔했다.1960년쯤에는 본명인 ‘마쯔모토 아키라'라는 이름으로 순정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지금의 ‘마쯔모토 레이지'란 이름을 작품에 사용한 것은 1965년부터다.
그의 우주에 대한 애착은 안드로메다 등 머나먼 우주를 끝없이 여행하는 ‘은하철도999’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편, 마쯔모토는 오래된 회귀 만화책 콜렉터로도 유명하다. 일본 만화 업계에 따르면 ‘만화 신(神)’으로 평가받는 ‘테츠카 오사무(手塚治虫)'도 살아생전 자신의 만화 자료를 찾을때 다른 곳이 아닌 마쯔모토에게 먼저 물어봤다고 한다.
◇ 마쯔모토 세계관의 중심 ‘은하철도999’
1977년 만화잡지 주간소년 킹을 통해 공개됐던 ‘은하철도999(999라고 쓰고 ‘쓰리나인’이라고 부른다)’는 누가 보아도 마쯔모토의 대표작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보여졌고 전 세계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안겨줬다.
은하철도999는 캡틴하록, 천년여왕, 퀸 에메랄다스의 세계관을 잇는 중심적인 작품이다.
마쯔모토는 메텔을 육체 교환을 통해 머나먼 시간을 여행해 온 '라 메탈' 행성의 사람이라고 밝혔다. '라 메탈' 인은 수만년을 사는 종족으로, 지구 시각으로 1000년은 그들에게 1년 정도의 길이라고 설명했다.
라 메탈인인 '메텔'의 진짜 육체는 명왕성 얼음땅 깊은 곳에 있다. 은하철도999 TV애니메이션 5화에서 메텔은 명왕성 속 진정한 자신의 육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만화가 마쯔모토는 1981년 애니메이션 전문 매체 아니메쥬 인터뷰서 은하철도999가 완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년 테츠로와 여왕의 짐을 진 메텔의 우주여행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마쯔모토에 따르면 '999'라는 이름에는 미완성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어른을 숫자 '1000'이라고 한다면, 999는 미완성된 청춘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
◇ 우주해적 캡틴 하록과 은하철도999
우주해적 캡틴 하록은 앞서 등장한 ‘우주전함 야마토'와 함께 ‘SF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획을 그은 작품이다. 1970년대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전유물'이란 편견이 있었는데 캡틴 하록은 대중의 이런 정서를 깼다.
캡틴 하록은 은하철도999에서도 등장한다. 하록은 아직 기계화되지 않은 라 메탈 행성인을 도와 천년여왕 프로메슘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은하철도999 주인공 테츠로가 토성의 위성 타이탄에서 노인으로부터 건네받은 광선총은 하록의 우주전함 아르카디아호를 만든 토치로와 관계가 깊다는 설정이다. 토치로는 은하철도999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 메텔에 이은 천년여왕의 또 다른 딸 ‘퀸 에메랄다스’
한때 은하철도999 여주인공 ‘메텔’과 같은 사람이라 여겨졌던 천년여왕 ‘유키노 야요이'는 2000년작 ‘메텔 레전드'를 기점으로 메텔의 어머니이자 프로메슘 행성의 지배자 ‘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으로 바뀐다.
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은 고향 별이 암흑태양에 이끌려 점점 추워져 인간이 살기 어려운 별로 바뀌자 백성들을 기계인간이 되길 권하고 자기 자신이 먼저 수술을 통해 기계인간으로 재탄생한다.
그녀는 기계 몸이 되기 전 닥터 반과 부부의 연을 맺고 ‘메텔’과 ‘에메랄다스'를 낳는다. 여자 우주해적 에메랄더스는 메텔과 자매인 셈이다. 외모도 표정이 강하고 얼굴에 상처가 있는 것 빼고는 메텔과 판박이 수준으로 닮았다.
이후 에메랄다스는 은하철도999에서 메텔과 라이벌로, 남자 주인공 테츠로를 돕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에메랄다스가 모는 우주전함 ‘퀸 에메랄다스'는 캡틴 하록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우주전한 아르카디아호의 제작자인 토치로가 개조했다는 설정이다.
토치로와 에메랄다스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애니메이션 은하철도999 시리즈 속에서는 마유와 쇼타라는 두 명의 자녀가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