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의 오덕이야기] (57)로봇 애니메이션의 권선징악 프레임 깬 선구자 나카하마 타다오의 '투장 다이모스'

입력 2019.02.09 06:0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초대형 트레일러에서 슈퍼로봇으로 변신하는 ‘투장 다이모스(闘将ダイモス)’는 1950년대부터 이어져오던 슈퍼로봇의 ‘권선징악' 프레임을 깬 나가하마 감독의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이다.

투장 다이모스 주제가가 담긴 LP음반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은 1956년 ‘철인 28호’의 탄생으로 시작됐다. 3040세대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마징가Z’는 슈퍼로봇이라는 로봇 애니메이션 장르를 세상에 널리알리는 것은 물론 1970년부터 1990년까지 봇물처럼 쏟아진 로봇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인기작 마징가Z는 철인28호부터 이어진 선한 자가 악당을 무찌른다는 ‘권선징악'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우주 어디선가 날아와 지구를 정복하려는 자들에 맞서 지구와 인류를 지킬 뿐이었다.

하지만 1978년 4월 방영된 ‘투장 다이모스'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이어지기 쉽지 않은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 다이모스는 적으로 등장하는 외계인의 지구 침략 목적이 상처받은 명예와 국익을 걸고 지구 인류와 싸운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이모스는 기존 만화 애니메이션 업계의 권성징악 프레임을 일거에 뒤바꾼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주인공 남녀의 사랑을 그린 나가하마 3부작 마지막 작품 ‘투장 다이모스'

투장 다이모스의 이야기는 고향별을 잃은 바무 성인(星人)이 정착해 살 땅을 찾아 지구를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무 대표 리온 대원사(大元帥)는 지구인과 화합을 목적으로 지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지만 회담장에서 독살되면서 회담이 결렬되고 만다.

이후 암살사건의 배후인 ‘오르반’이 바무인 대표로 올라서고, 리온 대원사의 죽음을 지구인의 음모라고 주장하며 지구인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애니메이션 속에서 오르반은 1999년 자신이 암살한 리온의 아들 ‘리히텔'을 전투로봇 군단의 사령관으로 앉혀 지구 공격을 시작한다. 지구인은 거대 변신로봇 ‘다이모스'로 바무인이 만든 로봇 병기에 맞서 싸운다.

남자 주인공 카즈야와 여자 주인공 에리카의 만남. / 야후재팬 갈무리
다이모스 파일럿이자 남자 주인공인 ‘류자키 카즈야'는 전투 중에 기억을 잃은 소녀 ‘에리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 에리카는 바무 별 사람이자, 지구 공격 선두에 선 리히텔의 여동생이었다.

에리카는 애니메이션에서 총명하며 심지가 굵은 여성으로 그려진다. 외모는 오빠인 리히텔과 달리 검은 머리 롱스트레이트 헤어 스타일의 미녀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촉발된 전쟁 속에 지구에 남겨져 기억을 잃은채로 주인공 카즈야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기억을 잃은 에리카는 자신이 설계한 바무의 전투 로봇과 오빠인 리히텔의 모습을 보고 기억을 되찾는다. 자신이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을 깨닳은 에리카는 홀로 다이모스 기지인 다이모빅으로부터 떠난다.

카즈야와의 사랑을 떨쳐내지 못한 에리카는 몇 번이고 카즈야와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에리카는 오르반이 10억명의 동포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르반을 암살하기 위해 오르반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결혼식장에서 에리카는 드레스에 감춘 단검으로 오르반을 죽이려 들지만 실패하고 만다.

오르반에게 단검을 휘두르는 에리카. / 야후재팬 갈무리
에리카의 오빠인 리히텔은 바무 민족을 대표하는 자로서 높은 자부심과 명예심을 가진 인물이다. 사랑하는 여동생이 지구인과 사랑에 빠지자 여동생을 죽은 사람 취급하며 인연을 끊는 모습도 보인다.

오르반의 음모를 알게된 리히텔은 오르반으로부터 말살될 위기에 처한다. 그는 오르반 암살에 실패한 여동생을 구한 뒤 고난 끝에 오르반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에리카와 오빠 리히텔. / 야후재팬 갈무리
하지만, 오르반의 죽음으로 목성으로 추락하는 인공행성과 비록 적이지만 10억명의 바무인의 목숨을 구하기위해 사지로 뛰어든 주인공 카즈야의 모습을 본 리히텔은 자신의 여동생 에리카를 맡기고 제어실로 뛰어들어 인공행성의 추락을 막지만, 자신의 손으로 수많은 지구인을 죽인 죄를 탓하며 스스로 목성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한다.

1978년 4월 1일에 시작해 1979년 1월 27일, 44화 ‘내일로 매진(明日への驀進)’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다이모스 애니메이션은 원래 44화 보다 더 길게 그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이모스 제작진은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제공하는 장난감 제작사와의 문제 등 이른바 어른들의 사정으로 본래 기획보다 이야기 분량을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가하마 감독은 생전 출간된 서적 ‘로망로보 아니메 클라이맥스 셀렉션'을 통해 "제작 축소가 없었다면 인공행성의 추락을 막는데서 끝난 다이모스 애니메이션의 다음 이야기를 그릴 계획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리카와 카즈야. / 야후재팬 갈무리
나가하마 감독이 본래 구상했던 다이모스의 결말은 바무인과 지구인이 서로 손잡고 바무인이 정착해 살 수 있도록 화성을 지구화(테라포밍)하는 개척단을 지구에서 출발시키는 것이다.

화성 개척단의 단장은 다이모스 파일럿이자 남자 주인공 류자키 카즈야이며, 부단장은 에리카다. 카즈야와 에리카는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에리카의 가슴에는 오빠 리히텔의 영정이 안겨있다.

개척단 출발 환영식 속에는 ‘바무 인을 몰살하라'며 장난감 총을 휘두르는 거지 차림의 부랑자가 한 사람 등장한다. 그는 이전 지구방위군 태평양본부 사령관이던 ‘미와 시키모리'다. 그는 다이모스 40화에서 무모한 단독 작전으로 수많은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기획서 속 마지막 장면에서 부랑자가 된 미와는 바무인 몰살을 외치지만 청중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 행성 개척을 목적으로 만들어져 무기 대신 몸으로 싸우는 ‘다이모스’

초대형 트레일러에서 슈퍼로봇으로 변신하는 다이모스는 행성 개척을 위해 제작됐던 대형 트레일러다.

다이모스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행성 조사 작업 중 발견한 미지의 에네르기인 ‘다이모라이트'이며, 다이모스 로봇의 장갑은 ‘다이모니움'이라 불리는 합금으로 만들어진다. 로봇의 크기는 높이 기준 45미터, 무게는 150톤에 달한다. 45미터 초대형 로봇을 움직이려면 슈퍼로봇의 원칙인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미지의 에네르기’의 존재가 꼭 필요한 셈이다.

투장 다이모스. / 유튜브 갈무리
다이모스는 파일럿이자 카라테 무술 달인인 카즈야의 능력을 끌어내기 위해 로봇 조종사의 움직임을 다이모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태권브이 조종사 김훈이 로봇 속에서 태권도를 하면서 로봇을 조작하던 것과 비슷하다.

파일럿의 전신 움직임을 읽어들이는 태권브이와 달리 다이모스는 앉아서 조작하는 만큼 로봇 하반신 조작은 파일럿의 뇌파를 읽어들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다이모스 로봇과 파일럿이 뇌파로 연결되는 만큼 다이모스가 타격을 입으면 파일럿에게도 타격이 전달된다.

다이모스는 파일럿의 움직임을 읽어들이는 콘트롤 시스템을 탑재했다. / 유튜브 갈무리
다이모스는 행성의 지구화 작업인 ‘테라포밍'에 필요한 지하도시를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인 만큼 내부에 장착된 무기가 적다는 단점이 있다. 다이모스는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카즈야의 무술 실력을 로봇에 그대로 옮기는 기술을 채택해 무기 공격보다 육탄전으로 적 로봇을 쓰러뜨린다.

애니메이션 속 다이모스의 변신 장면은 2분쯤이 걸린다. 카즈야는 다이모스의 본체가 되는 ‘트랜저'에 곧바로 탑승하지 않고 스포츠카 모양의 ‘드라이퍼75S’에 먼저 타 기지 밖으로 달린 다음 차량에 탑승한채 트랜저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으로 트랜저에 갈아탄다.

지금 시점으로 보면 불필요한 로봇 탑승 절차지만, 로봇과 스포츠카 장난감이 인기를 끌던 197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어린이의 시선을 끌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 권싱징악 로봇 애니메이션 프레임 깬 나가하마 타다오 감독

나가하마 타다오(사진·長浜忠夫) 감독은 ‘어린이의 전유물'로 자리잡은 로봇 애니메이션 속 권선징악 프레임을 깨뜨린 기념비적 인물이다. 그는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 이야기의 근본인 권선징악 대신 적과 아군 캐릭터의 사랑, 갈등, 혈연, 숙명 등을 가미했다. 어른들이 애니메이션을 보더라도 괜찮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는 인간사를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 녹여냈다.

1976년 4월 일본에서 방영된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브이(V)’는 ‘우정'을 테마로 적군인 캠벨 행성의 등장인물이 자신들끼리 내부 갈등과 고뇌를 겪는 드라마다. 1977년 6월 공개된 ‘초전자머신 볼테스 파이브(V)’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테마로 혈연간 다툼과 캐릭터의 운명, 숙명을 드라마틱하게 담아냈다.


투장 다이모스 DVD패키지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갈무리
나가하마 감독은 자신이 만든 로봇 애니메이션 3부작을 통해 적군인 외계인에게도 지구를 침략해야만 하는 정당한 명분을 부여했다. 캐릭터 시점에 따라 선과 악이 달라지는 등 1970년대 당시 어린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추가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나가하마 감독의 참신했던 도전이 1970년대 당시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졸업한 20대를 애니메이션 팬으로 복귀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나가하마 감독은 1965년 방영돼 개그 애니메이션 붐을 이끌어냈던 ‘큐타로(オバケのQ太郎)’를 시작으로 1979년 명작이라 평가받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만들었다. 이후 나가하마 로망로보 3부작을 제작했다. 나가하마 감독은 한국 3040세대에게도 유명한 ‘우주전설 율리시스31’ 제작 중 급성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와 일본 합작 애니메이션인 율리시스는 나가하마 감독의 마지작 작품(위작·遺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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