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영국 생산공장을 2022년까지 폐쇄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유럽 전략차종인 시빅 해치백을 만들며, 3500여명을 고용한다. 공장 폐쇄 이후 생산은 일본 공장이 맡을 것으로 본다. 영국 공장 생산직 전원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닛산 역시 주력 SUV 엑스트레일의 차세대 모델 생산을 위한 영국 공장 투자 계획을 취소했다. 당초 닛산은 이 투자로 수백명의 일자리가 만들 것으로 예상됐으나, 없던 일이 됐다. 차기 엑스트레일의 생산지 또한 일본 큐슈공장이 될 전망이다. 대표적인 일본 회사 두 곳이 비슷한 시기에 영국 공장의 축소와 함께 자국 공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오는 9월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의 생산 계약을 만료할 예정이다. 후속 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르노 본사는 지지부진한 노사 임단협 협상이 이어지면 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간 10만대 물량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 르노삼성차 제공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오는 9월 북미 수출용 닛산 로그의 생산 계약을 만료할 예정이다. 후속 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르노 본사는 지지부진한 노사 임단협 협상이 이어지면 배정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연간 10만대 물량이 해외 공장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 르노삼성차 제공
이를 두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넓게 보면 꼭 브렉시트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 업계 전반에 걸친 ‘보호주의’가 더 강해지는 중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자동차 산업 보호주의’의 대표 사례는 바로 미국이다. 이 나라는 무역확장법을 따라 수입차와 부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이 법 232조에 따르면 특정 수입품이 미국 통상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여겨질 때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특정 국가에서 수입해 오는 차에 관세를 매기면 가격경쟁력을 잃고, 결과적으로는 자국 자동차 회사와 제품의 경쟁력이 강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수입차 관세 부과로 경쟁력을 잃은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미국 내 생산과 투자를 늘리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트럼프 정부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일자리 만들기’다. 자동차 생산이야 말로 고용에 특화된 산업이고, 자국 내 고용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만한 카드도 없는 셈이다.

2018년 3월 타결한 한-미 FTA 개정안도 그렇다. 자동차 분야의 경우 양국은 한국 생산 픽업트럭의 관세를 20년 연장(2041년까지)하는 결과를 냈다. 현대차는 한국보다 큰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개발 중인 신형 픽업트럭 생산거점을 거의 미국으로 굳혔다. 이렇게 하는 것이 숫자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이른바 ‘빈카운터스(Bean Counters)’에겐 최대 효율이다. 한국 공장은 연간 수만대의 생산 물량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자리도 말할 것이 없다.

이런 가운데 한국 자동차 시장은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국내 자동차 산업을 지탱하는 것은 수출이기 때문이다. 근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내 자동차 회사는 2018년 총 400만여대를 만들어 155만대를 내수에서 소화하고, 245만대쯤을 해외에 내보냈다. 만약 수출 활로가 모두 막힌다면 400만대의 차를 내수에서 모두 소화해야 충격 없이 산업 규모가 유지된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 한 대당 인구 숫자’가 선진국 수준인 대당 2.0명 이하가 되더라도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인구 감소 추세가 나타나 내수 위축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날이 갈수록 해외 수출 의존도는 높아질 것이 뻔하고, 현 보호주의 경향은 우리 자동차산업에 큰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영국을 떠나 자국으로 향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회사들은 자국 일자리를 늘리면서 일-EU FTA에 의한 무관세 혜택을 충분히 누리겠다는 포석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도 이제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 경쟁은 다른 회사가 아니라, 같은 브랜드의 해외 생산 공장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해외에서 만들 물량을 우리가 가져오려면 우리만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이 길을 생존권 사수와 같은 노사의 극명한 대립이 막아서면 곤란하다. 생존권을 지키려고 생존 자체를 흔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동차 보호주의에 맞서 모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