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빅 오디토리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곳에서 ‘애플2’ 컴퓨터를 처음 공개했다. 이로부터 38년 후인 2015년 애플은 같은 장소에서 아이폰6를, 이듬해인 2016년에는 아이폰7을 선보였다. 지금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 그레이엄의 이름을 따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으로 불리는 이 곳은 애플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 전경. /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 홈페이지 갈무리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 전경. /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 홈페이지 갈무리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삼성전자가 이 곳에서 ‘갤럭시' 시리즈 탄생 10년의 역량을 쏟아부은 신제품을 공개한다. 빌 그레이엄 시빅 오디토리움은 20일 오전 11시(한국시각 21일 오전 4시) 열릴 삼성전자의 ‘갤럭시 언팩' 행사를 앞두고 막판 준비가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MWC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주로 갤럭시 언팩 행사를 열었다.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언팩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주로 전 세계 소매유통의 상징인 뉴욕에서였다. 삼성전자가 애플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언팩 행사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정면으로 애플을 저격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 최대 경쟁사로서 애플을 의식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애플뿐 아니라 실리콘밸리로 대변되는 미국 IT 기술의 산실이라는 점에서 기술 기업이라면 얼마든지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샌프란시스코는 주요 기술 발전의 허브이자 주요 파트너사들이 위치해 있는 곳으로 갤럭시 신제품을 출시하기에 최적의 장소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갤럭시 언팩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갤럭시S10’ 시리즈지만, 전 세계의 관심은 삼성전자의 첫 폴더블폰으로 쏠린다. 앞서 중국 로욜의 ‘플렉스파이' 등 몇몇 업체가 ‘최초'를 강조하면서 폴더블폰을 선보였지만, 완성도 면에서 실망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최근 정체된 스마트폰 시장에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경쟁사를 압도하는 혁신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이번 언팩 행사가 더없이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뚜껑을 열기 직전인 현재까지는 과정이 순조로워 보인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10 시리즈 라인업을 다변화하면서 벌써부터 판매량이 전작을 상회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폴더블폰도 ‘삼성이라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돈다.

전작인 아이폰XS·XR 시리즈의 예상 밖 부진으로 고전 중인 애플은 삼성전자의 행보를 지켜보며 향후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일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을 선보일 때 애플은 한 걸음 뒤에서 상황을 지켜볼 공산이 크다"고 논평했다. 폴더블폰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폼팩터의 제품인 만큼 애플이 소비자 반응이나 경쟁사가 겪을 시행착오를 지켜본 후 모험을 감행할 것이란 관측이다. "애플은 이전부터 경쟁사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어왔다"는 포브스의 평가는 의미심장하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보급형 라인업인 갤럭시S10e를 들고 나온 점도 애플로서는 뼈아픈 부분이다. 애플은 보급형을 표방한 아이폰XR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보급형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가격이 발목을 잡았다. 삼성전자가 갤럭시S10e 가격을 아이폰XR보다 저렴하게 책정할 것이 유력해 아이폰XR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갤럭시S10e가 기존 아이폰 사용자를 대거 흡수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절한 가격에 모든 주력 기능을 탑재한 만큼 기존 갤럭시S6, S7, S8 시리즈 사용자들의 교체 수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