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원의 오덕이야기] (59)'타도 마징가'외치며 등장한 거대로봇 '용자 라이딘'

입력 2019.02.23 06:00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독수리 모양으로 변신하는 슈퍼로봇 ‘용자 라이딘'은 건담을 탄생시킨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의 첫 로봇 애니메이션이다.

용자 라이딘과 주인공 히비키 아키라. / 야후재팬 갈무리
융자 라이딘 제작에는 애니메이션은 기동전사 건담 원작자인 ‘토미노 요시유키(富野喜幸)’ 감독과 변신 합체로봇 콤바트라V(파이브)·볼테스V(브이)·투장 다이모스 등 나가하마 로망 3부작을 만들었던 ‘나가하마 타다오(長浜忠夫)’ 감독이 함께 참여했다.

용자 라이딘 관련 서적 일부. / 야후재팬 갈무리
1975년 5월 일본에서 공개된 용자 라이딘은 영화사 토호쿠신샤(東北新社)가 기획하고 선라이즈의 전신인 소에이샤(創映社)가 제작한 작품이다. 라이딘의 탄생은 토호쿠 창업자인 우에무라 반지로우(植村伴次郎)의 기획 제안에 따라 이뤄졌다.

2002년 출간된 ‘건담을 만든 남자들'을 보면, 우에무라는 "마징가를 만든 토에이동화(東映動画)는 마징가Z로 돈을 많이 버니, 커다란 로봇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토호쿠신샤 사장의 말에 따라 소에이샤의 토미노 감독과 각본가 야스히코 요시카즈(安彦良和)는 무게 350톤, 높이 52미터의 대형 슈퍼로봇 라이딘을 탄생시켰다. 토미노 감독은 마징가Z와 겟타로보를 뛰어 넘겠다는 각오로 라이딘을 만들었다.

용자 라이딘은 1970년대 당시 슈퍼로봇 붐을 일으켰던 ‘마징가Z’의 아성에 도전한 작품이다. 변신 로봇이라는 특징과 고대문명이 제작한 병기라는 요소를 접목해 마징가 시리즈와 차별화 됐다.
애니메이션 ‘용자 라이딘’ 오프닝. / 유튜브 제공
애니메이션 제작진은 마징가Z를 뛰어넘기 위해 기존에 없던 차별화된 로봇을 만들어야 했다. 고뇌 끝에 탄생된 라이딘은 ‘변신 로봇' 특성을 가졌으며, 이를 통해 로봇이 독수리 모양 비행체로 변신하게 된다. 기존 로봇들은 과학자가 만들었지만, 라이딘은 1만2000년전 무 대륙이 요마제국의 침략을 막는데 쓴 병기다.

애니메이션은 고대문명이라는 오컬트(Occult)적 요소 외에도 사라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주인공과 적이라 보기에는 너무 잘 생긴 보스 캐릭터 등 성인이 봐도 재미를 느낄만한 드라마성을 갖췄다. 당시 시청자들로부터 참신하다 평가 받았다.

◇ 고대문명이 낳은 거대 병기 ‘용자 라이딘'

애니메이션 용자 라이딘은 1만2000년전 무 대륙을 침공했던 ‘요마제국(妖魔帝国)’이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 대지진을 일으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고학자의 아들인 소년 히비키 아키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에 이끌려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서고, 그곳에서 요마제국군의 공격을 받는다. 주인공이 요마군의 공격을 받자 바다가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피라미드가 나타나고, 그속에서 황금빛으로 감싸진 거대한 석상이 등장한다.

주인공 히비키가 자신도 모르게 주문을 외치자 석상이 히비키를 흡수하고, 주인공을 태운 석상은 거대로봇 라이딘으로 변한다. 라이딘과 일심동체가 된 주인공이 눈앞에 나타난 요마제국군을 무찌르면서 1만2000년의 잠에서 깨어난 고대병기 라이딘의 싸움이 또 다시 시작된다.

바닷속에서 등장하는 라이딘. / 야후재팬 갈무리
주인공 히비키가 라이딘의 부름을 받은 이유는 히비키가 라이딘을 만든 무 제국 왕가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히비키의 어머니 ‘레이코(레므리아)’는 무 제국의 공주였으며, 1만2000년전 요마제국 제왕 파라오의 부활을 예견한 무 제국의 왕 ‘라 무'가 파라오에 맞서기 위해 자신의 딸인 레므리아를 냉동수면시켜 현대 지구로 전달한다.

주인공의 어머니이자 무 제국의 공주 ‘레므리아'. / 야후재팬 갈무리
무 제국 공주 레므리아는 고고학자인 이치로와 결혼해 주인공을 낳은 뒤 요마제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방랑의 길을 택한다.

애니메이션 마지막 편에서 레므리아는 십수년만에 아들을 만나지만, 요마제국을 무찌르는데 필요한 무 제국의 에네르기 개방 장치 ‘라 무의 별'을 작동시킨 댓가로 죽음을 맞이한다.

라 무의 별은 라이딘의 동력원인 신비의 에너지 ‘무트론'의 힘을 최대치까지 끌어 올리는 장치이지만, 사용자의 염력을 급격히 소모시키기 때문에 장치를 가동시킨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단점이 있다.

슈퍼로봇 라이딘은 요마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무 제국 황제 라 무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52미터 크기의 거대 병기로, 라 무의 혈족만이 조종할 수 있다. 로봇은 사용자의 염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파일럿과 로봇은 일심동체가 된다. 조종사의 생각이 로봇의 움직임으로 연결되는 만큼 애니메이션에서는 무기 공격보다 몸으로 싸우는 육탄전이 많이 연출됐다.

라이딘의 디자인은 애니메이션 스폰서였던 포피의 의견이 적극 반영됐다. 복잡한 변신 구조를 만들어내기 어려웠던 당시 장난감 업계의 사정을 반영해 장난감으로 만들 수 있는 무리없는 변신 구조가 채택됐다.

◇ 여학생들 사이서 선풍적 인기 끈 미남 악당 ‘프린스 샤킨’

요마제국 보스 ‘프린스 샤킨', 그는 주인공과 혈연 관계지만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다. / 야후재팬 갈무리
라이딘에 등장하는 미남 보스 ‘프린스 샤킨'은 ‘잘 생긴 악당 캐릭터의 원조'로 통하는 캐릭터다. 가면을 쓴 그의 모습은 건담의 핵심 인물이자 미남 캐릭터 ‘샤아 아즈나블'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용자 라이딘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와 잘 생긴 외모의 적 등의 요소는 콤바트라V를 필두로 한 나가하마 로망 로봇 3부작에 이식된다.

각본가이자 캐릭터 디자이너이기도 한 야스히코가 탄생시킨 프린스 샤킨은 현지 여성 시청자 사이서 인기가 높았다. ‘로망앨범 용자 라이딘’이라는 서적을 보면, 1975년 애니메이션 방영 당시 여자 고등학생만 참가할 수 있는 라이딘 팬 클럽 ‘무트론'이 생겼으며, 팬 클럽 회원 수는 1000명이 넘는다. 사실상 라이딘이 아닌 프린스 샤킨 팬 클럽의 일원이었던 여자 고등학생들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자주 방문했고, 샤킨이 애니메이션 27화에서 주인공 히비키 아키라와의 싸움에서 죽자 ‘면도날이 든 편지' 등 제작진에 대한 원망을 한껏 담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용자 라이딘 일러스트. / 핀터레스트 갈무리
용자 라이딘은 시장에서 성공했다. NET테레비 방송국이 방영했던 애니메이션은 인기가 높았고, 2003년 출간된 토이저널에 따르면 장난감 제조사 포피(반다이)가 만들었던 용자 라이딘 관련 장난감 매출은 당시 장난감 업계를 휩쓸었던 마징가Z를 넘어섰다. ‘타도 마징가Z’를 외쳤던 제작진의 목표가 달성된 셈이다.

한편, 라이딘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를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당시 영화사 토호쿠는 용자 라이딘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자회사격인 소에이샤 직원들에게 나눠주지 않았고, 이로인해 불만이 폭발해 토호쿠로부터 독립해 애니메이션 제작사 선라이즈를 설립하게 된다.

선라이즈는 1977년 자체 기획 작품인 ‘무적초인 점보트3(無敵超人ザンボット3)’를 만들고, 1979년 ‘기동전사 건담'으로 대박을 쳐 성공한 애니메이션 회사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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