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상용화를 앞뒀지만 ‘망 중립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망 중립성은 통신사 같은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ISP)가 콘텐츠나 서비스 종류에 따라 전송 속도를 차별하거나 요금을 차등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이다. 한국은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하고 있다.

제1차 5G 통신정책협의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제1차 5G 통신정책협의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하지만 최근 데이터 이용량이 폭증하는 만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평등한 인터넷 이용을 위해 규제를 오히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다.

최근 사단법인 오픈넷은 논평을 통해 "5G 시대에 망 중립성 규범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픈넷은 5G 시대에 인터넷접속 대역폭이 10~20배로 늘어난다고 해서 인터넷의 기본 작동원리가 변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픈넷은 "특수서비스들이 일반 인터넷 접속서비스와 상호교란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운용되기 위해서라도 망 중립성 규범이 유지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 국제수준에 맞게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미국은 망 중립성 폐지 vs 유럽은 망 중립성 유지…우리나라는?

오픈넷은 망 중립성 필요성의 근거로 유럽을 들었다. 오픈넷은 최근 유럽전자통신규제기구(BEREC)의 2016년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의 주저자라고 할 수 있는 프로드 소렌슨 노르웨이 통신위원회(Nkom) 수석자문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서 소렌슨은 특수서비스는 망 중립성을 완화하지 않더라도 일반 인터넷 접속서비스의 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럽은 5G시대 도래에 따른 망 중립성 규제 개정은 하지 않을 것이란 계획도 밝혔다.

여기서 소렌슨이 말한 특수서비스는 한국의 ‘관리형 서비스’에 대응되는 개념이다. 한국의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은 인터넷 서비스를 '최선형 인터넷'과 '관리형 서비스'로 구분한다.

최선형 인터넷은 일반 인터넷, 관리형 서비스는 프리미엄 인터넷이다. 망 중립성 원칙이 적용되는 영역은 최선형이며 관리형은 제외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ISP)는 최선형 인터넷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망 중립성 폐기를 알리는 그래픽. / 트위터 갈무리
망 중립성 폐기를 알리는 그래픽. / 트위터 갈무리
이에 인터넷기업 및 시민단체들은 5G에 나타날 수 있는 특수서비스가 일반 인터넷 서비스 품질 저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를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미국은 2018년 망 중립성 원칙을 폐지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는 망 중립성 폐지의 근거로 3년간 상위 12개 통신사업자의 망 설비 투자 규모 감소(4조원)를 들었다. 5G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양한 서비스 발전을 위해서는 망 중립성 폐지를 통한 인프라 설비 확장을 유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 평행선 달리는 통신사와 콘텐츠제공자(CP)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입장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 망 중립성 폐지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자율주행 등 5G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망 중립성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선 대용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대형 콘텐츠 사업자(CP)에게 공정한 망 이용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콘텐츠 제공자인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로고. / 각 사 제공
글로벌 콘텐츠 제공자인 넷플릭스, 유튜브, 페이스북 로고. / 각 사 제공
최근 페이스북으로부터 망 사용료를 지급받은 선례를 남긴 SK브로드밴드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페이스북이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은 올바른 선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많아졌으면 한다"며 "(SKB도)10기가 망을 고도화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망 중립성 완화를 바라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SKB에 망 사용료를 지급한 것을 두고 망 중립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있다. 오픈넷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상호접속 고시를 통해 강제로 콘텐츠제공자 쪽에 접속비용이 전가되도록 했다"며 "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2018년 3월 콘텐츠제공자인 페이스북이 종량제 상호접속료의 부담을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자 행정제재까지 해 결국 국가가 SKB 캐시서버를 페이스북에 강매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런 태도를 연장해보면, 중소 스타트업이 접속용량을 제때 늘리지 못해 지연이 발생하면 이용자 이익 저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유료캐시서버 설치나 대용량 회선을 강매당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처럼 다양한 입장이 엇갈리자 정부는 산업계·학계·시민단체·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총 28명으로 구성된 5G통신정책협의회,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등을 만들어 망 중립성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상용화를 앞둔 지금까지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5G 통신정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G통신정책협의회에서도)많이 의견이 엇갈린다"며 "이통사 쪽에서는 5G 시대에 잉여 대역폭을 고가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파는 데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이용자들 입장에서 인터넷에 어떤 정보를 올리더라도 정보배달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야, 힘없는 사람들도 비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며 "통신사들이 망혼잡 없이 더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기 시작하면 돈을 내지 않는 사람은 정보가 더 느리게 전달되는 등의 문제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이 평등하게 인터넷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소CP(콘텐츠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통신사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섞이기 때문에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긴 어렵지만, 원론적으로 스타트업들은 망비용 부담을 우려한다"며 "3월 중 망 중립성에 대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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