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초 미국과 스페인에서는 CES와 MWC 등 세계 양대 IT쇼가 열린다. 이들 전시회에 출품되는 제품과 기술에 전 세계인은 놀라움과 찬사를 보내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제품이 정말 그렇게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상 초유(cutting-edge)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이미 수개월, 멀게는 수년전 이미 세상에 공개된 기술이다. 개막도 되기 전 출품작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 열쇠는 바로 ‘특허’다.

◇ 인기작, 특허는 알고있다

2월 2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19'. 개막 첫 날부터 삼성전자 폴더블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에 관심이 쏠렸다. 2018년 말 관련 디스플레이가 공개되는 등 이번 출품이 예견됐지만 삼성전자의 폴더블 기술력은 관련 특허를 통해서만 확인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2015년 접이식 스마트폰을 구상해 이를 ‘폴더블 단말기와 그 제어법’이란 특허로 출원했다. 삼성전자는 이때부터 안으로 접는 ‘인폴딩’(In-folding) 방식을 염두해두고 있었음을 특허를 통해 알 수 있다.

2015년 출원된 삼성전자의 ‘폴더블 단말기와 그 제어법’ 특허. / 윈텔립스 제공
2015년 출원된 삼성전자의 ‘폴더블 단말기와 그 제어법’ 특허. / 윈텔립스 제공
폴더블폰의 핵심은 화면이 접히는 곳, 즉 ‘힌지’ 부분의 기술적 문제 해결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2013년 ‘접철식 전자기기’라는 특허를 출원했다. 단말기 특허를 내놓기 2년전, 이미 힌지부분의 기술적 대비부터 차분히 해놨던 셈이다.

해당 특허의 명세서에 따르면 ‘기기가 접힐 때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소자의 구부러지는 곡률반경을 제한할 수 있는 ‘접철구조’가 요구된다’고 돼있다.

2013년 출원된 삼성전자의 ‘접철식 전자기기’ 특허. / 윈텔립스 제공
2013년 출원된 삼성전자의 ‘접철식 전자기기’ 특허. / 윈텔립스 제공
이 접철구조는 지지부재와 슬릿부재, 이격방지부재 등으로 구성된다. 아무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소자라 하더라도, 완전히 꺾이면(각지게 구부러지면) 소자 자체가 파손될 수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는 디스플레이 소자의 구부러지는 곡률반경을 제한하는 접철에 자사 기술력을 집중시켰다고 특허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1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에선 유독 중국 로욜 전시관에 인파가 붐볐다. 바로 ‘플렉스파이’라는 폴더블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힌지의 조악함과 자체 운영체계(OS)의 버그문제 등 공식 출품작 치곤 아직 덜 다듬어졌다는 비난 속에서도 ‘세계 최초 폴더블폰’이라는 이벤트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플렉스파이를 보기 위해 로욜 부스에 몰려든 CES 인파./ 로욜·CES 뉴스룸 제공
플렉스파이를 보기 위해 로욜 부스에 몰려든 CES 인파./ 로욜·CES 뉴스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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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은 모양의 ‘플렉스파이’ 시연 장면. / 로욜·CES뉴스룸 제공
접은 모양의 ‘플렉스파이’ 시연 장면. / 로욜·CES뉴스룸 제공
이 제품을 만든 중국 로욜사, 즉 심천시유우과기유한공사의 해당 특허를 하나씩 들춰보자. 먼저 ‘가변형 지지구조를 갖는 전자장치’라는 중국 특허다. 2014년 출원돼 2016년 공개됐다. 최종 등록은 2017년 4월 마쳤다.

해당 명세서에 따르면 서로 다른 형태의 이질 구조를 연결해 융통성있게 변경시킬 수 있는 ‘지지 구조’, 즉 힌지를 형성한다고 돼있다. 이 특허를 통해 로욜의 힌지는 자석과 체인철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꺾임이 다소 투박해보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거다.

로욜의 ‘가변형 지지구조를 갖는 전자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중국특허청) 제공
로욜의 ‘가변형 지지구조를 갖는 전자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중국특허청) 제공
이 힌지 특허가 나온지 2년 뒤인 2016년 출원돼, 2018년 1월 세상에 공개된 ‘연성화면 단말장치’라는 특허를 하나 더 보자. 그새 로욜의 디스플레이 패널이 삼겹까지 꺽이며 점차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로욜의 ‘연성화면 단말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 제공
로욜의 ‘연성화면 단말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 제공
2018년 2월 등록된 ‘연성표시장치’라는 또다른 중국 특허를 보면 로욜의 디스플레이 기술이 단순 접이식 수준을 넘어 이제는 롤러블 즉, 두루마리 형태로까지 진화·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욜의 ‘연성표시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 제공
로욜의 ‘연성표시장치’ 특허. / 윈텔립스·SIPO 제공
2012년 설립된 중국 스타트업 로욜은 2019년 1월 기준으로 총 268건의 자국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도 각각 268건와 114건의 특허를 출원·등록중이다. 향후 미국은 물론, 국내 시장 진출도 염두해둔 포석이다.

로욜만큼이나 CES 2019에서 화제가 된 전시품이 있다. 바로 LG전자의 ‘두루마리TV’다. 전세계 관람객은 신박한 이 제품에 찬사를 쏟아냈지만, 해당 기술은 2015년 이미 출원된 ‘디스플레이 디바이스’라는 특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특허와 함께 총 13건의 공개 특허에서 LG전자의 두루마리TV 관련 기술을 미리 인지 가능했다는 얘기다.

2015년 출원된 LG전자의 ‘디스플레이 디바이스’ 특허. / 윈텔립스 제공
2015년 출원된 LG전자의 ‘디스플레이 디바이스’ 특허. / 윈텔립스 제공
특히 LG전자는 이번에 공개한 상하 수직형 제품뿐 아니라 ‘좌우’ 개폐형 두루마리TV 관련 기술도 보유하고 있음을 특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LG전자의 좌우 개폐형 두루마리TV 관련 특허./ 윈텔립스 제공
LG전자의 좌우 개폐형 두루마리TV 관련 특허./ 윈텔립스 제공
◇ 자율車, 그 이후를 보여주는 특허

언제부턴가 CES는 첨단 모터쇼를 방불케하는 전시회로 변모했다. CES 2019는 자율주행차 그 이후, 급변이 예상되는 차량의 기능과 인테리어에 테크기업의 기술이 집중됐다.

인텔은 자율주행차량의 모든 창문과 앞뒤 좌석 사이 공간을 투명 디스플레이로 바꾼 콘셉트카를 전시했다. 인텔은 2년전 출원한 ‘자율주행차용 센서관리 시스템’과 3년전 출원한 ‘투명 디스플레이 차량’ 특허를 통해 이를 준비해왔다.

자율주행차내를 영화관으로 만든 인텔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기술. / 인텔 제공
자율주행차내를 영화관으로 만든 인텔 차량용 엔터테인먼트 기술. / 인텔 제공
인텔 특허를 보면 주로 운전자에게 맞춰졌던 각종 센싱 기능이 모든 탑승자에게 향한다. 외부 교통정보와 바깥 풍경 등을 인지하는 통로였던 차창은 제 역할을 잃은 대신, 투명 디스플레이로 대체됐다. 차량내 영화 감상 등과 같은 각종 ‘엔터터인먼트’를 위한 디스플레이 창으로 거듭난 것이다.

2016년 출원된 뒤 2018년 3월 공개된 인텔의 ‘투명 디스플레이 차량’ 특허. / 윈텔립스·미 특허청(USPTO) 제공
2016년 출원된 뒤 2018년 3월 공개된 인텔의 ‘투명 디스플레이 차량’ 특허. / 윈텔립스·미 특허청(USPTO) 제공
기아자동차도 CES에서 인텔과 유사한 형태의 자율주행차 인테리어 콘셉트를 선보였다. 이 역시 현대기아차가 2016년 10월 출원한 뒤 2018년 4월 공개된 특허 ‘차량용 사용자 인터페이스 제어 장치 및 제어 방법’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탑승자의 터치 압력을 인지하는 차창, 즉 디스플레이는 자율주행차의 주요 정보 입출력 수단이 된다고 특허는 밝히고 있다.

CES 2019에서 기아차가 선보인 자율주행 콘셉트카 내부. / 현대기아차 제공
CES 2019에서 기아차가 선보인 자율주행 콘셉트카 내부. / 현대기아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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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가 2018년 4월 공개한 ‘차량용 사용자 인터페이스 제어 장치 및 제어 방법’ 특허. / 윈텔립스·USPTO 제공
현대기아차가 2018년 4월 공개한 ‘차량용 사용자 인터페이스 제어 장치 및 제어 방법’ 특허. / 윈텔립스·USPTO 제공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도 독립부스를 마련해서 나왔다. 재미있었던 것은 부스 어디에서도 보쉬하면 떠오르는 브레이크나 와이퍼 같은 기존의 기계적 부품은 찾아보기 어려웠던 점이다. 대신 보쉬의 컨셉카 ‘IoT 셔틀’이 부스 정면을 차지했다.

이번 CES 기간 중 진행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마르쿠스 하인 보쉬 부회장은 "이제 우리는 IoT 기업이다"라고 공식 천명했다. 미래의 도로 위 차량은 보쉬의 부품이 아닌, 보쉬의 디지털 ‘시스템’과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란 게 이 셔틀의 메인 콘셉트였던 셈이다.

자율주행 콘셉트카 ‘IoT 셔틀’이 중앙에 전시된 CES 2019 보쉬 부스. / 보쉬·CES뉴스룸 제공
자율주행 콘셉트카 ‘IoT 셔틀’이 중앙에 전시된 CES 2019 보쉬 부스. / 보쉬·CES뉴스룸 제공
‘자율주행용 유저 인터페이스’라는 특허를 보면, 보쉬의 이같은 변화가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CES 2019가 열리기 직전인 2018년 12월 EPO, 즉 유럽특허청에 정식 등록된 이 특허에 따르면 보쉬의 관심은 자율주행차 시스템 전반에 대한 통제와 조율에 집중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IoT 셔틀의 컨셉과 그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CES 2019 개막 직전 등록된 보쉬의 특허 ‘자율주행용 유저 인터페이스’. / 윈텔립스·EPO 제공
CES 2019 개막 직전 등록된 보쉬의 특허 ‘자율주행용 유저 인터페이스’. / 윈텔립스·EPO 제공
이밖에 빨래 개주는 기계 ‘폴디매이트’를 선보여, 현지서 큰 인기를 끈 일본 세븐드리머사의 최신 기술도 무려 11년전 출원한 특허 ‘변형성 얇은 옷감 전개 장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헬기 제조 전문 방산업체 벨은 드론 시대를 맞아 ‘넥서스’라는 거대 드론 택시를 전시했다. 이 제품은 2016년 원출원돼 2018년 7월 공개된 ‘수직 이착륙 항공기’라는 벨 특허에 기반해 탄생했다.

2008년 출원한 세븐드리머의 ‘변형성 얇은 옷감 전개 장치’ 특허. / 윈텔립스·JPO 제공
2008년 출원한 세븐드리머의 ‘변형성 얇은 옷감 전개 장치’ 특허. / 윈텔립스·JP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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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2019 행사장에서 한 관람객이 세븐드리머의 빨래 개주는 기계 ‘폴디매이트’를 작동해보고 있다. / 세븐드리머·CES뉴스룸 제공
CES2019 행사장에서 한 관람객이 세븐드리머의 빨래 개주는 기계 ‘폴디매이트’를 작동해보고 있다. / 세븐드리머·CES뉴스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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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원출원된 뒤 2018년 7월 세상에 공개된 벨사의 특허 ‘수직 이착륙 항공기’. / 윈텔립스·USPTO 제공
2016년 원출원된 뒤 2018년 7월 세상에 공개된 벨사의 특허 ‘수직 이착륙 항공기’. / 윈텔립스·USPT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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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19에 출품·전시된 벨사의 드론 택시 ‘넥서스’. / 벨·CES뉴스룸 제공
CES 2019에 출품·전시된 벨사의 드론 택시 ‘넥서스’. / 벨·CES뉴스룸 제공
◇ MWC·CES 예고편, ‘특허’

물론 여러 특허 가운데 MWC나 CES에 소개될 기술을 꼭 짚어낸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해당 업체의 참가이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 업체의 IP포트폴리오를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대강의 후보군 정도는 추려낼 수 있다.

전시회 개막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공개 또는 등록이 진행된 특허라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2019년 참가업체 중 유독 관심가는 업체가 있었다면, 그래서 2020년 출품작이 궁금해진다면, 해당 업체의 특허부터 거들떠보시라.

유경동 위원은 전자신문 기자와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의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현재 SERICEO에서 ‘특허로 보는 미래’를 진행중입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100 ▲ICT 시사상식 등이 있습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활동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이 선정한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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