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방송사간 인수합병(M&A) 조건으로 막연하게 콘텐츠 투자를 늘린다고 하지만, 넷플릭스는 1년 콘텐츠 제작비로 12조원을 쏟아 붓습니다. 정부가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유료방송 시장의 정상화를 꾀한다고 한다면 실효성 있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 과거처럼 한다면 한국 시장이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에 먹히고 맙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상근부회장은 최근 IT조선과 만나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유료 방송사 간 M&A 관련 고민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유튜브와 인터넷 방송 서비스(OTT) 넷플릭스 등 글로벌 방송 플랫폼 서비스는 가입자를 빠르게 늘려가며 국내 OTT 시장은 물론 유료방송 시장을 압박 중이다. 한국 유료방송 기업이 업체간 M&A를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선 것은 글로벌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 이진 기자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 이진 기자
SK텔레콤은 지상파 방송사와 손잡고 OTT 서비스 ‘푹'과 ‘옥수수' 통합 플랫폼을 만든다. LG유플러스는 케이블TV 방송사 중 가입자가 가장 많은 CJ헬로를 인수했고, SK텔레콤도 티브로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도 케이블TV 방송사 인수를 검토 중이다.

통신사와 유료방송 업계 간 합종연횡이 급물살을 타며 정부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는 눈치를 보인다. 하지만 이통사의 유료방송사 인수가 반드시 경쟁력 있는 유료방송 플랫폼 출범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규제 기관인 정부의 역할론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 "유료방송 위기 M&A로 돌파하라는 정부, 생각처럼 될 지는 의문"

성기현 부회장은 유료방송 업계의 판도 변화에 대해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우려도 나타났다.

성 부회장은 "정부는 통신사와 유료방송 간 인수합병(M&A) 후 콘텐츠가 대거 확보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며 "하지만 M&A 후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또 "여론과 업계에서 희망적인 얘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정부도 깊은 고민없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하지만 학계에서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대항할 거대 플랫폼을 키워 콘텐츠를 투자하겠다는 M&A 논조는 맞지 않는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발표한 2019년 업무계획을 통해 유료방송 M&A 후 콘텐츠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성 부회장은 정부의 이같은 생각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났다. 그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거대 플랫폼을 만든다 해도 가입자 모집에 한계가 있다"며 "SK텔레콤이 지상파와 합쳐 만든 플랫폼에 국민 절반을 가입시켜도 2000만명이며, 이는 미국의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 가입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케이팝 기판 K튜브 등을 통해 글로벌 플랫폼을 만든다고 하지만, 아직 케이팝이 통용될 수 있는 곳은 언어적 특성에 따라 동남아 지역 등 국소에 불과한 만큼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기 어렵다"며 "과거 IPTV 출범 당시에도 콘텐츠와 관련한 장밋빛 전망이 나왔지만, IPTV는 유료방송 시장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 이진 기자
성기현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 이진 기자
그는 우려 속에서도 M&A 등 변화가 한국 유료방송 업계가 가진 ‘마지막 기회'라고 피력했다.

성 부회장은 "이미 M&A가 시작됐으니, IPTV 때와 달리 미디어 시장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며 "정부나 기업이 마지막 기회를 잘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넷플릭스가 얼마나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지를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2018년에만 제작비로 10조원을 투자했으며, 콘텐츠 구매까지 합치면 12조~13조원에 달하는 돈을 썼다. 영업이익이 마이너스가 나면서도 콘텐츠 투자에 올인 중이다. 그만큼 콘텐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이것이 넷플릭스의 가입자 증가로 이어진다.

◇ "OTT 사전규제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OTT의 급성장은 방송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아직 국내법에서 OTT 사업자 관련 정의와 규제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국내외 사업자들이 차별규제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월 국회에서는 OTT를 부가유료방송사업자에 포함하는 통합방송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의견들이 적지않다.

성 부회장은 "OTT를 유료방송 영역에 넣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해외 OTT 사업자들은 한국에 굳이 서버 두지 않아도 돼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통신사들이 (트래픽 관련) 고객 성화에 못이겨 OTT 품질 업그레이드를 위한 캐시 서버를 한국에 둘 수 있다"며 "정부가 이런 과정을 사전에 규제하기란 상당히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방통위는 이용자 보호 측면에서 OTT 사업자의 불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서비스 임시중지 조치까지 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 부회장은 이 같은 방통위의 정책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지금 https 차단 관련해서도 난리가 났는데, 만약 유튜브나 넷플릭스 서비스가 중지되면 청와대 청원에 관련 내용이 올라가는 등 시끄러워질 것이다"며 "유튜브에서 국내 이용자들이 보는 콘텐츠는 사실 방송사나 다중채널네트워크(MCN)들이 만든 콘텐츠가 대부분인데, 서비스 막으면 결국 국내 사업자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방송시장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국내 제작 투자를 유도가 필요하다 언급했다. 이는 국내 방송사들에는 일거리가 생기고, 넷플릭스도 국내 콘텐츠를 확보해 이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부회장은 "국내 제작 투자를 유도하는 로컬 콘텐츠 쿼터제라든지, 연간 얼마의 금액을 투자해 로컬 콘텐츠를 만드는 문화를 (정부에서)만들어 줘야 한다"며 "이제 국경이 없는 시대이므로 순수한 자본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돈 벌겠다는 게 쉽지 않아, 다국적 콘텐츠 형태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