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료방송 회사 간 인수합병(M&A) 트렌드에 따라 소규모 케이블TV(SO) 사업자들의 고민이 깊어진다. M&A 필요성으로 내세우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는 허상일 뿐, 네트워크 사업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라며 반발한다.

19일 개별SO 한 관계자는 "계속해서 합산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지만 정부에서 듣지 않고 있다"며 "IPTV 사업자들이 합산규제의 논지를 흐리며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산규제는 특수 관계자를 포함한 한 유료방송 회사의 가입자 수를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3분의 1을 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개별SO 로고. / 각 사 제공
개별SO 로고. / 각 사 제공
LG유플러스는 15일 CJ헬로 인수 신청서를 과기정통부와 공정위에 제출했다.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와 합병하기로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KT는 딜라이브 결합을 추진 중이다.

◇ 국회와 정부의 ‘M&A’ 온도, 과거와 확 달라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등 유료방송 M&A 관련 주무부 처는 시장 재편에 긍정 신호를 쏘아 올렸다. 방송 업계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과정이 긍정적으로 끝날 것으로 전망한다.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은 1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독 양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 신청을 보면 SK텔레콤이 CJ헬로의 M&A를 신청했던 3년 전 상황과는 다르다"며 "유료방송 시장 획정에 대해 중요한 참고사항이 방통위에서 제시됐다"고 말했다.

최근 방통위는 2019년 방송시장 경쟁상황평에서 권역별 외 전국 시장 기준을 병행 사용했다. 유료방송 시장 경쟁이 전국 차원으로 확대된 만큼 권역별 시장점유율 규제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것이다.

박경중 LG유플러스 사업협력담당(가운데)이 15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에 있는 정부 과천청사를 방문해 CJ헬로 주식 인수 관련 변경승인 및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모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박경중 LG유플러스 사업협력담당(가운데)이 15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관문로에 있는 정부 과천청사를 방문해 CJ헬로 주식 인수 관련 변경승인 및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모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2016년 공정위는 방통위의 방송시장 경쟁상황평가를 근거로 유료방송 시장을 78개 케이블TV 권역으로 나누어 봤다. SK텔레콤-CJ헬로 합병 법인의 시장 지배력이 심화할 것으로 판단해 합병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공정위가 기업결합 심사 시 달라진 기준대로 시장을 획정할 경우, 시장점유율 도출 근거 역시 달라진다. 공정위가 LG유플러스의 CJ헬로 기업결합 심사할 때 참고해야 할 명분을 방통위가 제공한 셈이다.

국회는 1월까지만 해도 합산규제 재도입을 밀어 붙였다. 하지만 최근 방송 분야를 담당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의원들 사이에서도 합산규제 유지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들이 연이어 M&A를 발표하는 등 시장의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며,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과방위는 22일 열리는 법안 2소위에서 합산규제 재도입을 논의한다. 과방위 한 관계자는 "여야 의원들 사이에서도 합산규제를 둘러싼 이견이 있고, 적잖은 의원들이 합산규제 도입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고 밝혔다.

◇ 개별SO업계 "넷플릭스 핑계말라"

인수를 추진 중인 CJ헬로, 딜라이브, 티브로드 등 대형 MSO는 합산규제 재도입을 반대한다. 하지만 영세한 개별SO들은 입을 모아 "공정 경쟁을 위해 합산규제 재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한 개별SO 대표는 "M&A가 필요한 배경으로 자꾸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를 거론하는데,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한다고 해서 콘텐츠에 투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결국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네트워크 사업의 영역을 넓히기 위함인데 자꾸 넷플릭스 핑계를 대며 논조를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합산규제와 별개로 지역 사업권은 유지돼야 한다"며 "각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대변하는 콘텐츠를 내보내는 역할을 맡은 개별 SO가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