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자동차 역사상 유례 없는 여론조사에 나선다. 미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60일 이상 운전대(스티어링 휠)와 페달이 없는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을 허용할지 여부를 공개적으로 묻는다. 탑승객 개입을 완전히 배제한 완전 자율주행차의 실도로 주행 허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다.

미국 자동차기술학회(SAE)는 자율주행차를 적용 기술과 제어 책임 수준에 따라 5~6단계로 구분한다. 일반 소비자가 통상 자율주행차로 인식하는 것은 레벨3 수준이다. 레벨3 자율주행차는 스스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주행의 모든 단계를 제어할 수 있다. 다만 운전자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다. 레벨4(분류에 따라 레벨5)가 되면 차 안에 스티어링 휠이나 페달과 같은 자동차 조작 시스템까지 배제한다. 차가 움직이고 서는 것은 오롯이 자율주행차 자체가 판단하고 통제한다. 사람은 차 안에 앉아있기만 할 뿐이다.

 GM이 2018년 공개한 자율주행차 크루즈 AV의 실내. 스티어링휠 등 조작장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GM 제공
GM이 2018년 공개한 자율주행차 크루즈 AV의 실내. 스티어링휠 등 조작장치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GM 제공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는 자동차 형식을 법규로 규정했다. 현행 미국 법률 상 운전자가 차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조작장치가 없는 자동차는 형식 승인 자체를 받을 수 없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시험 주행은 가능할 수 있어도,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을 법이 허용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NHTSA의 이번 조사는 GM을 위시한 자동차 업계의 탄원 때문에 시작됐다. GM은 완전 자율주행차의 실증 실험을 위해 미국 내 도로에서 제한된 수의 차가 스티어링휠 등 인간 운전자를 위한 통제 장치 없이 주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무인자동차를 활용한 식료품 배송 서비스 스타트업 뉴로(Nuro)는 윈드실드(자동차 앞 유리)가 없는 자동차를 허용해달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미 현행 법상 자동차 형식 승인에 어긋난다.

법규는 기술보다 변화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새 기술이 범람하는 시대에 제도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며 답답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레벨3 단계의 자율주행차조차 SF 영화 속 탈것과 비교되는 상황 속에서 이동수단의 혁신을 수 많은 법규가 발목 잡고 있다는 비판에 수긍이 간다.

문제는 소비자 감정이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불과 수 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자동차 회사들이 제시하는 통계자료와 소비자 인식 사이에 여전히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구글 웨이모는 2018년 상반기 기준 자율주행차로 누적 주행거리 500만마일(약 800만㎞)을 기록했다. 까마득한 거리를 자율주행차로 달리는 동안 보고된 사고 건수는 두자릿수에 불과하다. 실증 실험 초기인 2017년 우버가 30만마일(약 48만㎞) 주행 후 발표한 사고는 단 세건에 불과했다. 우버, 다임러, BMW, 르노 등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 역시 사람보다 기계가 더 안전하게 운전한다는 자료를 속속 내놓았다.

그런데 글로벌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가 발표한 2019년 글로벌 자동차 소비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율주행차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미국 소비자 비율이 50%에 달했다. 2017년 74%와 비교하면 상당히 감소했지만, 2018년 47%에서 다시 부정적으로 돌아선 소비자가 증가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딜로이트의 같은 조사에서 자율주행차가 불안하다는 응답이 2017년 81%에서 2018년 54%로 크게 줄었지만, 2019년 49%로 5%P 감소하는데 그쳤다. 그 사이 몇건 일어난 자율주행 사망사고가 사람들 뇌리에 강하게 박힌 결과다.

기술의 완성도나 사회적 효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소비자가 상품으로서 왜 자율주행차를 구매해야 하는지 설득할 수 있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테슬라의 부분 자율주행 기술 ‘오토파일럿'에 대한 많은 찬사는 2016년 트럭과의 충돌사고 이후 급격히 잦아들었다. 기계적 오류에 의한 인명피해는 숫자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율주행차도 상품이다. 소비자가 외면하면 의미를 잃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회사들이 기술 개발만큼이나 자율주행차의 효용성을 알리는 노력이 절실하다.

사회적 논의도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자율주행차 사고를 둘러싼 법적, 윤리적 쟁점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지금보다 더 활발해져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회사와 소비자간 인식의 간격을 더 좁힐 수 있다. 이 점에서 미 NHTSA의 공론화 조사는 적절하다. 뒤늦게라도 업계 청원을 받아들인 것은 현행 법규와 어긋나는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자율주행차 쟁점에 대한 논의는커녕 인식조차 부족한 우리 정책당국이 이번 조사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