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누는 지는 모두의 관심사다. 특히 첫 만남을 주목한다. 대화 내용을 떠나 만남 자체로 대통령의 향후 국정 구상과 비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처음 만난 글로벌 기업 CEO도 그래서 늘 화제였다. 대통령들은 이 만남을 계기로 미래 산업과 기업 정책 구상을 가다듬었다.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난 첫 글로벌 기업 CEO는 잭 도시 트위터 대표다. 역대 대통령과 사뭇 달랐다. 취임 후 몇 달 안에 만난 역대 대통령과 달리 1년 10개월로 첫 만남이 한참 늦었다. 산업 얘기는 없었다.

잭 도시 트위터 CEO가 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 트위터 갈무리
잭 도시 트위터 CEO가 2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 트위터 갈무리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남짓인 1998년 6월 18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을 만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과 빌 게이츠 전 MS 회장. /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갈무리
김대중 전 대통령(오른쪽)과 빌 게이츠 전 MS 회장. /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갈무리
김 전 대통령은 빌 게이츠 MS 회장에게 "한국에 빌 게이츠 같은 인재 10명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한국 벤처기업에 투자해달라"고 요청했다.

외환 위기 후 경제 재건 방안을 묻는 김 전 대통령에게 빌 게이츠 전 회장과 손정의 회장은 입을 모아 "초고속 인터넷만이 살 길이니 그것으로 세계 1등이 되라"고 제안했다. 김 대통령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어 정보통신기술(ICT)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난 첫 글로벌기업 CEO는 제프리 이멜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다. 2003년 5월 22일이다.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이른 시점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여기에 필요한 노동 유연화도 약속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과 제프리 이멜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과 제프리 이멜트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이멜트 전 회장은 "한국이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정책을 펴면 한국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정규직 고용·해고가 더욱 유연하게 이뤄져야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흡수될 수 있고 안정적인 노사관계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화답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노동 유연화 정책을 폈고 임기 내내 노동계와 불편하게 지내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3개월이 채 안 된 2008년 5월 6일 빌 게이츠 전 MS 회장을 만났다. 게이츠 전 회장은 이 대통령에게 "향후 5년간 한국의 IT, 게임, 교육 분야에 1억4700만달러(1662억원)를 투자하겠다"며 "5년간 7조원의 경제유발효과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한국 정부,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당시는 그가 회장직 은퇴를 앞둔 때다. 이 대통령은 그 해 11월 스티브 발머 전 MS 회장과 만나 전임 회장과의 약속을 다시 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빌 게이츠 회장. / 조선일보 DB
이명박 대통령과 빌 게이츠 회장. / 조선일보 DB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글로벌기업 CEO 접견은 더 일렀다. 취임 두달이 채 안 된 2013년 4월 22일 빌 게이츠 테라파워 회장을, 나흘 뒤인 26일엔 래리 페이지 구글 CEO를 만났다. 6월 18일에는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겸 CEO인 마크 저커버그를 접견했다. 세번 모두 창업 생태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빌 게이츠 전 회장은 소프트웨어, 생물학, 공학 인력이 창업 시장에 유입할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기 내내 개념 혼란 비판을 받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창조경제 정책을 펼쳤다.

고 김대중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글로벌 CEO 접견 시점은 갈수록 빨라졌다. 가장 늦은 게 3개월 후였다. 이와 비교해 문재인 대통령은 글로벌 기업 CEO를 늦게 만났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가 워낙 컸지만 초기 경제 정책 방향이 소득주도 성장에 집중된 탓도 있다.

경기 위축이 지속되자 문재인정부는 점차 혁신 성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래도 글로벌 CEO 접견은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지난해 방한한 글로벌기업 CEO 일부는 한국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기대했지만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올들어 청와대가 혁신성장과 제2의 벤처붐을 전면에 내걸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기업 CEO와의 회동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때마침 방한한 잭 도시 트위터 CEO가 첫 접견의 행운을 안았다.

문 대통령은 잭 도시 CEO에게 ‘혁신 창업’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도시 CEO는 창업에 실패해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6년 전 래리 페이지 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구글 창업 당시 학교가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받아주겠다는 말을 듣고 도전할 수 있었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리스크 테이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도시 CEO간 대화 주제는 주로 ‘소통'이었다. 도시 CEO는 문 대통령이 트위터 계정을 가진 것과 진정성 있는 소통에 감동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 노력을 소개하며 "주권자인 국민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5분간의 대화에서 산업과 투자와 관련한 이야기는 없었다.

으레 그러하듯 투자나 협력 약속이 이뤄졌던 전임 대통령과 글로벌 기업 CEO 회동과 대조된다. 물론 대통령을 만나는 대가처럼 따라붙는 투자 약속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없지 않았다. 어차피 할 투자에 생색만 낸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와 산업 체력이 커져 중요도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투자 유치나 협력은 대통령이 외국 기업 수장을 만날 중요한 이유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의 이번 트위터 회장과의 만남과 대화 내용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없지 않다.

청와대 스탭들이 첫 접견자 선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수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기술산업이다. 이에 대한 몰이해가 이번 회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비판은 자칫 집권 3년차 뒤늦게 시동이 걸린 혁신경제 드라이브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 청와대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 청와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