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5년에 등장해 ‘싸우는 미소녀’ 원조로 평가받았다. 일본 콘텐츠 업계에 ‘비키니 아머 미소녀'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작품이 바로 판타지 애니메이션 ‘환몽전기 레다(幻夢戦記レダ)'다.

환몽전기 레다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환몽전기 레다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환몽전기 레다는 1985년 당시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 콘텐츠로 나와 3만장 이상 팔린 히트작이다. OVA는 TV와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고 비디오테이프(VHS)과 레이저디스크(LD)등에 담아 판 상업 콘텐츠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레다의 성공을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이노마타 무쯔미(いのまた むつみ)'가 창조한 캐릭터와 그림에 있다고 평가한다.

이노마타 무쯔미의 아사기리 요코 일러스트. / 핀터레스트 갈무리
이노마타 무쯔미의 아사기리 요코 일러스트. / 핀터레스트 갈무리
레다 제작 당시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았던 이노마타 무쯔미는 작가 특유의 순정만화같이 섬세하면서도 육감적인 비주얼의 미소녀 주인공 ‘아사기리 요코(朝霧陽子)'를 탄생시켰다.

이노마타가 그린 요코는 애니메이션 마니아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한 관계자는 "이노마타의 마법 같은 그림과 매력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당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고 말했다.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이노마타 무쯔미는 한국에서 게임 ‘테일즈 오브' 시리즈 캐릭터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2009년 세상을 떠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1987년 10월 ‘배드 월드 투어(Bad World Tour)’ 일환으로 일본에 방문했고, 이노마타가 그린 ‘우쯔노미코(宇宙皇子)’ 화집에 반해 이노마타 작가와 미팅을 가진 바 있다.

마이클 잭슨은 당시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색을 사용하는 방법이 신선했다"며 이노마타의 그림을 높게 평가했다.

레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품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 모모'를 만든 유야마 쿠니히코(湯山邦彦)다. 유야마 감독은 레다 제작 이후 싸우는 마법소녀 애니 ‘웨딩피치’ 시리즈와 인기 판타지 애니 ‘슬레이어즈'를 만들었다.

환몽전기 애니메이션 한장면. / 야후재팬 갈무리
환몽전기 애니메이션 한장면. / 야후재팬 갈무리
애니메이션 환몽전기 레다는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 요코가 돌연 ‘아샨티'라 불리는 세계로 소환돼, 아샨티의 전설로 내려오는 ‘레다의 전사(レダの戦士)’로서 싸워 세상을 구한다는 심플한 내용을 담았다.

레다는 로봇 메카닉과 미소녀를 조합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보호 받는 나약한 미소녀 캐릭터가 아닌 적에 맞서 싸우는 강한 ‘미소녀 전사'의 이미지다. 1980년대 당시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요코가 입은 ‘비키니 아머'는 이후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레다가 공개된 다음 해인 1986년 비키니 아머를 몸에 걸친 미소녀가 활약하는 액션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가 등장했다. 이 게임은 인간계, 몽환계, 암흑계 3개 세상의 평화를 위해 주인공 ‘아소 유코'가 전설의 용사인 ‘바리스 전사'가 돼 마왕 로그레스를 물리친다는 내용을 담았다.

몽환전사 바리스 MSX버전 패키지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몽환전사 바리스 MSX버전 패키지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는 당시 남성 팬클럽을 탄생시킬 만큼 인기가 높았다. 1989년 게임 주인공 이름을 내건 ‘미스 유코' 선발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바리스 게임은 1991년 게임기 PC엔진용으로 4편까지 등장했다.

◇ ‘비키니 아머' 원조는?

‘비키니 아머(Bikini Armor)’, 즉 비키니 형태의 이른바 ‘노출 갑옷’ 역사는 그 시작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됐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고대 로마 제국에 여성 검투사가 존재했다. 2011년 발표된 학설에 따르면 여성 검투사는 당시 상반신을 벗고 싸운다는 룰에 따라 가슴을 노출한 채 싸웠다. 여성 검투사는 소수만 존재했기 때문에 투기장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상처받기 쉬운 가슴을 노출한채 싸우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지금의 비키니 아머처럼 가슴 일부를 고정시키고 싸웠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1920년대 미국에는 속옷차림으로 채찍을 든 성적 페티시즘을 강조한 사진 작품이 등장했다. 1930년대 프랑스 파리의 페티시즘 전문 매장 YVA리차드는 메탈 비키니를 입은 여성 사진을 판매했다.

미국 잡지 위어드 테일 1934년 12월호 표지에 실린 비키니 아머 일러스트. / 위키피디아 제공
미국 잡지 위어드 테일 1934년 12월호 표지에 실린 비키니 아머 일러스트. / 위키피디아 제공
비키니 아머가 콘텐츠에 접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다. 미국 만화 잡지 ‘위어드 테일(Weird Tales:기묘한 이야기)’은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성 일러스트를 1934년 12월호 잡지 표지로 사용했다.

스파이시 어드벤처 스토리즈 1936년 12월호 표지. / 인터넷아카이브 제공
스파이시 어드벤처 스토리즈 1936년 12월호 표지. / 인터넷아카이브 제공
해리 레몬 파크허스트(Harry Lemon Parkhurst) 작가가 1936년 그린 비키니 아머 여전사 일러스트는 그해 잡지 ‘스파이시 어드벤처 스토리즈’ 12월호 표지로 장식됐다.

레드 소냐 만화 표지. / 위키피디아 제공
레드 소냐 만화 표지. / 위키피디아 제공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전사가 활약하는 원조 만화 작품은 마블 코믹스의 ‘레드 소냐(Red Sonja)’다. 붉은 머리에 신체 노출도가 높은 비키니 아머를 입은 ‘레드소냐’는 로버트 E 하워드의 단편 만화 ‘독수리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Vulture)’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73년 출간된 마블코믹스 만화 ‘코난 더 바바리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레드소냐’는 미국에서 영화로도 등장했다. 브리짓 닐슨 주연의 영화 ‘레드소냐'는 악당들에게 빼앗긴 물건을 되찾기 위한 모험을 그렸다. 나중에 터미네이터로 유명해진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조연 코난 역으로 출연했다.

만화 ‘레드소냐'의 판권은 미국 출판사 다이나마이트 엔터테인먼트가 소유했다.

테츠카 오사무가 1982년 공개한 만화 ‘프라임 로즈'. / 아마존재팬 제공
테츠카 오사무가 1982년 공개한 만화 ‘프라임 로즈'. / 아마존재팬 제공
일본 만화 업계에 비키니 아머를 먼저 사용한 것은 ‘아톰’을 탄생시킨 만화거장 테츠카 오사무다. 테츠카는 1982년작 ‘프라임 로즈’로 비키니 아머를 입은 여주인공 ‘프라임 로즈(에미야 타치)’를 탄생시킨다.

애니메이션에서 비키니 아머를 먼저 착용한 캐릭터는 ‘캐론'이다. 1984년작 성인용 애니메이션 ‘크림레몬 SF초차원전설 라루'에 등장했던 캐론은 전설의 검사(剣士) 능력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비키니 아머를 착용한다.

환몽전기 레다와 같은 해에 등장한 애니 ‘드림헌터 레무(ドリームハンター麗夢)’ 주인공 아야노코우지 레무(綾小路 麗夢)도 비키니 아머를 입고 악마와 싸우는 용맹을 떨친다. 레무는 악몽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몽마(夢魔)를 퇴치하는 초능력자다.

1989년작 애니메이션 ‘극흑의 날개 바르키사스’ 일러스트. / 위키피디아 제공
1989년작 애니메이션 ‘극흑의 날개 바르키사스’ 일러스트. / 위키피디아 제공
1989년 등장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극흑의 날개 바르키사스(極黒の翼バルキサス)’에서도 여주인공 ‘레무네아'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적과 싸운다. 이 작품은 여성 캐릭터를 요염하게 그리기로 정평 난 ‘우르시하라 사토시(うるし原智志)’가 캐릭터 디자인과 작화 감독을 맡았다. 수 많은 남성 팬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우르시하라 사토시는 애니메이션 바르키사스에서 선보인 비키니 아머 디자인을 1991년 게임기 메가드라이브용으로 나온 전략 게임 ‘랑그릿사'에 도입했다.

콘텐츠 업계에서 ‘비키니 아머'에 먼저 손댄 것은 미국이다. 하지만, 이를 활발히 활용한 것은 일본이다. 1985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비키니 아머 관련 만화·애니메이션 콘텐츠는 마니아를 중심으로 팝컬처의 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일본이 쏟아낸 콘텐츠와 문화는 역으로 서양 콘텐츠 제작자와 마니아에게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