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동영상 구독 서비스 ‘애플TV+’ 문호를 삼성, LG 등 하드웨어 경쟁업체들에게 활짝 열었다. 서비스를 자사 전용 기기에만 몰아 폐쇄적으로 운영한 애플이 전략을 확 바꿨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아울러 기술시장 싸움터가 하드웨어로부터 콘텐츠서비스로 급격히 이동할 전망이다.

애플 TV+앱 시작 로고. / 애플 제공
애플 TV+앱 시작 로고. / 애플 제공
애플은 삼성전자 신형 스마트TV에 애플TV 앱을 가장 먼저 탑재해 제공할 계획이다. LG전자를 비롯한 다른 회사 스마트TV에도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탑재한다.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에어플레이 2(AirPlay 2)’ 기능으로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재생하는 ‘애플TV+’ 독점 콘텐츠를 삼성과 LG의 최신 TV로 볼 수 있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폐쇄적인 생태계로 인해 비판을 받았던 애플이다. 타사 제품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애플TV+’를 특정 하드웨어나 플랫폼에 얽매이지 않는 완전히 독립된 서비스로 키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 분야 선두업체인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특정 플랫폼이 아닌 거의 모든 스마트 기기를 통해 동영상 구독 서비스를 제공한다. 애플 생태계만 고집하니 시장 절반 이상을 아예 버리고 경쟁사와 싸워야 할 판이다.

삼성전자 최신 스마트TV에서 ‘에어플레이2’로 애플TV 콘텐츠를 시청하는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최신 스마트TV에서 ‘에어플레이2’로 애플TV 콘텐츠를 시청하는 모습. / 삼성전자 제공
애플은 지난 2007년 전용 셋톱박스인 ‘애플TV’를 선보였다. 4세대 제품까지 나왔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찮다. 오픈 플랫폼으로 서비스와 콘텐츠를 선보인 아마존, 넷플릭스와 달리 애플TV는 전용 하드웨어와 서비스 플랫폼 안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콘텐츠 조달능력까지 경쟁사에 뒤진다. 폐쇄 정책이 애플TV가 소비자 외면을 받게 만들었다는 반성이 이번 문호 개방으로 이어졌다.

화질을 보장한 유료 동영상 콘텐츠를 제대로 보려면 TV가 꼭 필요하다. 특히 삼성과 LG는 대화면 고급형 TV 구매력이 높은 북미와 유럽의 프리미엄 TV 시장을 휘어잡았다. 동영상 구독 서비스를 선언한 애플로선 싫어도 삼성, LG와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다.

비싼 애플 하드웨어가 없어도 ‘애플TV+’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 선택 폭은 훨씬 넓어졌다. 애플 사용자는 독점 콘텐츠를 ‘에어플레이 2’를 통해 삼성과 LG의 최신 TV에서 더욱 간편하게 큰 화면으로 즐길 수 있다. 애플은 신규 가입자 증가로 안정적인 수입원을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다. TV업체는 갈수록 한계에 부닥치는 수요를 다시 확대할 기회가 생겼다. 양쪽 모두 윈윈(win-win)이다.

이번 애플 전략 수정을 계기로 그간 하드웨어 분야에 집중됐던 정보통신기술(ICT) 헤게모니 다툼은 콘텐츠 서비스쪽으로 급격히 옮겨갈 전망이다. 하드웨어 시장 경쟁의 강도는 약해지는 반면에 콘텐츠 서비스 경쟁은 선수들의 증가로 더욱 치열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