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에 걸쳐 산업혁명의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한 회사가 있다. 19세기 철강, 중장비, 조선 사업을 시작으로 20세기에는 전력, 자동화 및 제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21세기를 맞아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통합 에너지 관리 기업으로 거듭났다.

1836년 창립해 올해로 183주년을 맞은 슈나이더일렉트릭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에는 1975년 진출해 45년째 주택, 빌딩, 공장, 데이터센터, 중공업 등 전력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에너지 관리와 공정 자동화를 지원해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스마트 빌딩, 스마트 팩토리를 위한 IT 인프라와 운영 기술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록 대표. /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제공
김경록 대표. /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제공
김경록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대표는 183년 전통의 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흐름에 부합해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융복합’을 꼽았다. 기술의 융복합을 넘어 지식의 융복합, 나아가 비즈니스 모델의 융복합을 지향하는 그룹 전략과 기업 문화가 혁신의 경계를 허무는 원동력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돕는 회사로서 우리가 먼저 혁신의 주체로"

"슈나이더일렉트릭에서 처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변화는 7~8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회사의 기존 핵심 역량이 산업자동화, 에너지 관리 등 하드웨어 중심이었다면, 그룹 전략 자체가 미래 에너지 시장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소프트웨어와 IT 기술 융복합을 통한 스마트 에너지로 초점이 바뀐 것입니다."

김 대표는 슈나이더일렉트릭이 10년 전만 해도 기업간거래(B2B) 시장에 특화된 하드웨어 공급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제는 완전히 DNA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오랜 역사에 걸맞게 그동안 130여개에 달하는 회사를 인수했는데, 이 중 70여건의 인수합병이 최근 8년에 집중됐다. 인수합병 대상도 대부분 소프트웨어, AI 등 스마트 기술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2017년 4조원대 빅 딜을 성사시키면서 품에 안은 영국 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 아비바(AVEVA)도 그 중 하나다.

김 대표는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우선 수직적인 통합을 통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스마트 에너지 관리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며 "다만,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에는 과거의 수직계열화 전략이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여러 전문가 집단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융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아이디어의 융복합을 위해 스타트업 등 젊은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고,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도 현재진행형이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혁신적 기술로 생활 및 업무 방식, 에너지 생산과 소비, 건물과 공장 운영 방식에 혁신을 불러올 회사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슈나이더일렉트릭벤처스’를 운영한다. 슈나이더일렉트릭벤처스가 융복합 아이디어 실현을 위해 투자 예정인 금액만 해도 최대 5억유로(642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하드웨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 이를 통해 고객 경험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는 목적만 놓고 보면 이제는 슈나이더일렉트릭이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과 같은 기업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아직은 해외 전문가 집단 의존도가 높은데, 국내에서도 고객에 직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 스마트 빌딩과 친환경의 가치, ‘데이터’로 입증한다

최근 슈나이더일렉트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스마트 빌딩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에코빌딩사업부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코엑스와 광화문 D타워, 이케아 광명점를 비롯한 400여개 빌딩에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스마트 빌딩 기술이 집약됐다. 해외에서는 딜로이트의 유럽 본사 빌딩 ‘디 엣지’가 스마트 빌딩 구축 사례로 가장 유명하다.

김 대표는 "과거에도 공조, 조명, 전력 제어 등에 일부 디지털 기술이 적용됐으나, 이제는 각 기술이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기술 발전에 따라 각각 연결됨에 따라 이를 통해 산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단순 빌딩 관리를 넘어 자산 관리까지 가능한 단계가 됐다"며 "하지만, 기술의 진화를 통한 효율성·안전·신뢰성 제고, 운영비용 절감 등의 가치를 넘어 ‘빌딩이 왜 스마트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결국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대표. /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제공
김경록 대표. / 슈나이더일렉트릭코리아 제공
그는 이어 "전 세계 40%의 에너지가 빌딩에서 소모되는데, 그만큼 친환경적으로 에너지를 쓴다면 우리 삶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파리 기후 협약을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유럽의 경우 빌딩 에너지 절감을 위한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고 한국도 녹색건축인증제도, 대형 건축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 의무화(2020년), 단계적 제로 에너지 빌딩 의무화(2025) 등 친환경 빌딩 발판을 정비 중이다"고 말했다.

실제 딜로이트 디 엣지의 경우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 ‘에코스트럭처 빌딩’을 적용해 기존 에너지 사용량이 100이었다면, 현재는 30 수준으로 70%의 절감 효과를 거뒀다. 빌딩 곳곳에 2만8000개의 센서를 설치해 각 층과 사무실마다 직원 수와 현재 실내외 온도, 냉난방 상황, 조명 밝기 등에 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한 결과다. 디 엣지는 영국녹색건축인증제도(BREEAM)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빌딩’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이제 데이터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데이터가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법. 이 회사가 최근 10년간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집중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찍이 전력 분야에서 추구해온 ‘연결성’은 사물인터넷(IoT)이라는 개념이 정의되기 전부터 슈나이더일렉트릭의 핵심 역량 중 하나였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역량이 보태지면서 자연스럽게 산업용 사물인터넷(IIoT) 시장의 중심에 설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센서가 5만개, 10만개 있더라도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연결성 확보가 첫 번째로, 중요도에 따라 분류된 각각의 대상물에 대한 데이터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데이터가 끊김없이 상호 호환될 수 있어야 한다"며 "슈나이더일렉트릭의 클라우드 시스템에 연결된 고객 자산은 무려 240만개에 이르는데, 빅데이터를 다루는 우리만의 노하우에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결합해 고객 자산에 연결된 데이터를 빌딩 소유주나 관리자, 입주자에 가치 있는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는 지난 45년 동안 수출 산업과 인프라 산업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전 산업 영역에 걸쳐 에너지, 친환경의 중요도가 높아지는 만큼 국내 기업이 자산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 스마트 빌딩이 갖는 재무적인 가치, 규제준수 등 한국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족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