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구를 제작하는 한 스타트업은 최근 소셜미디어 상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여러 투자 제안을 받았다. 국내서 내로라하는 대기업도 포함됐다. 주변에선 향후 인수를 고려해 대기업 투자를 받으라고 조언했다. 이 스타트업 B 대표는 고심 끝에 대기업 투자를 거절했다. B씨는 "대기업 제안은 우리 제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판로를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매력적"라며 "하지만 경영 자율성을 보장받기 어려워 사실상 대기업에 잡아먹힌다는 점이 우려됐다"고 거절 이유를 밝혔다.

국내 대기업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을 높이는 가운데 정부도 제2벤처붐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양쪽 모두 상생을 꾀할 수 있음에도 적극적인 투자에는 머뭇거리는 이유다.

./ 조선DB
./ 조선DB
◇ 스타트업 투자 마중물 역할 대기업 CVC, 한국은 ‘깜깜'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관심이 높다. 이들을 적극 지원하면 동반 성장을 꾀할 수 있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대기업은 새로운 사업 성장동력을 찾고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협력하고 인수합병(M&A)을 하는 과정에서 성장 발판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전체 캐피탈 투자 금액 중 CVC 투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0%가 넘는다.

구글 지주사 알파벳은 자회사로 구글벤처스를 보유했다. 구글벤처스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다. 구글이 전략적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해 전략적 협업관계를 맺기 위해 2009년 만든 자회사다. 지금까지 구글벤처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만 300개에 달한다. 2018년 한 해에만 70곳에 투자했다.

구글이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는 이유는 상생과 협력이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구글이 새로운 기술과 시장 문을 두드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우수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특정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도 투자를 단행한다.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일반 지주회사는 CVC 운영이 불가능하다. 산업자본이 금융시장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한 금산분리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서다.

◇ "일반 지주사 CVC 보유 제한막는 ‘금산분리’ 해소해야"

금산분리 규제는 스타트업 업계에 대기업 자본 유입을 막는 걸림돌로 꼽힌다. SK와 LG 등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업 등을 영위하는 국내 회사 소유가 금지돼 계열사 내에 창업투자회사 등 CVC를 설립할 수 없다. CVC가 없는 지주회사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공정거래법상 해당 기업 지분 40% 이상을 확보해 자회사로 편입하거나 5% 미만 지분 투자만 할 수 있다.

반드시 40%라는 높은 지분을 투자해 스타트업을 자회사로 인수하는 건 대기업 입장에서 부담이다. 스타트업이 가진 경영 불안정성을 대기업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존 VC들은 평균 20~25% 지분을 획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운영 중인 일부 대기업 계열 CVC는 대체로 해외 법인을 출자하거나 개인회사를 설립하는 방식 등으로 규제를 우회해 운영한다. 대기업계열 CVC들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지주회사 전환 전인 2017년 10월 신기술금융 라이선스를 취득해 CVC로서 스타트업 투자에 나섰다.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지주 산하 계열사로 분류된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롯데액셀러레이터는 롯데지주나 지주 자회사가 보유한 지분을 오는 10월 전에 처분해야 한다.

2018년 말 기준 롯데액셀러레이터 최대 주주는 신동빈 회장이다. 롯데지주(9.99%), 롯데케미칼(9.99%), 호텔롯데(9.99%), 롯데닷컴(9.99%) 등 롯데 계열사가 40% 가량 지분을 보유했다.

이준혁 롯데액셀러레이터 매니저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CVC는 금융회사에서 제외하거나 특례법을 마련해 스타트업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벤처기업협회 역시 "CVC가 투자한 기업에 계열사 편입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벤처기업으로서 받는 혜택을 유지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기업 자회사 편입은 스타트업도 꺼린다. 공시 의무가 발생해 스타트업 특유의 자유로운 경영 실험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적을 공시해야만 한다. 적자를 감수한 공격적인 경영에 외부 비판이 이어질 수 있다. 자회사가 되면 3년 내에 중소·벤처기업 대상 정부 지원도 끊긴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이 대기업 투자를 받거나 인수되는 것을 그리 반길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경영권이 희석되기 때문에 대기업 투자 제의를 거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