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중 다행이다. 지난 4일 발생해 강원도 5개 시군을 휩쓴 대형 산불을 정부가 조기에 진화했다. 비상근무한 소방대원과 군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강풍속에서 밤을 지새며 불과 싸운 덕분이다. 인명과 재산 피해는 상당했지만 지난 6일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수습 국면이다. 기업과 사회명사를 비롯한 국민의 피해자돕기 행렬도 이어져 산불 사태 극복에 힘을 보탤 전망이다.

그래도 꼭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산림감시원 비정규직 문제, 소방헬기 지원 부족과 같이 큰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똑같이 반복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로 위치정보 활용 부재다.

정부가 그간 축적해온 다양한 위치정보가 산불 진화는 물론이고 대피 과정까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는 게 이번에 확인됐다.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위치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건만 유독 행정서비스만 이를 비껴간다.

GIS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위치정보체계 시범 사업을 꾸준히 진행했지만 한번도 본사업으로 연결한 적은 없다"며 "이번 산불 대응을 보니 시스템을 구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4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강원 고성군의 한 주택의 처참한 광경. 휘어진 골조만 까맣게 탄 채 남았다. / 조선일보 DB
4일 발생한 산불로 전소된 강원 고성군의 한 주택의 처참한 광경. 휘어진 골조만 까맣게 탄 채 남았다. / 조선일보 DB
◇ 홈페이지에는 쓸데없는 정보만 가득

산불이 발생한 이후 국민재난안전포털을 비롯해 소방청, 산림청, 경찰청, 행정안전부, 지자체 등 유관 기관, 심지어 청와대, 국무총리실까지 홈페이지와 경보체계를 훓어봤다. 산불이 났다는 소식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거의 실시간으로 알렸다.

정작 필요한 정보는 없다. 산불이 ‘도대체 지금 어디로 어떻게 번져나가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찾아볼 수 없다. 외국 정부기관처럼 지도까지 동원한 친절한 안내는 ‘언감생심’이다.

그나마 근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산림청이 운영하는 산불상황관제시스템산불위험예보시스템 정도다. 특히 산불상황관제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산불 상황과 위치지도, 레이더, 위성 영상, 위험지수, 국가지점번호 및 우편주소까지 다양하게 제공한다. 국가지점번호 이외에도 화재가 발생한 지역의 기존 우편주소 기반 위치정보도 제공한다. 일반 이용자가 산불 위치를 확인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지만 이 산불이 어디로 확산되는지에 대한 정보 제공은 없다.

산불이 나자마자 가장 정보가 많을 것 같아 국민재난안전포털을 찾았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사이트다. 첫 화면은 지방자치단체가 보낸 긴급안전문자메시지를 모아놓은 ‘재난안전상황보고’와 ‘산불 발생시 국민행동 요령’이다.

산불이 어디에 났는지 알려면 긴급재난문자를 눌러 지자체가 보낸 재난문자를 확인해보거나 재난현황→재난사고발생→산불 순으로 들어가 확인해야 한다. 산불발생위치에 있는 주소를 클릭하면 해당 위치를 표시한 지도도 있다.

산불 상황을 점검하는 공무원에게 필요한 정보들이다. 그러나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알고자 하는 주민 또는 이 지역에 사는 부모를 걱정하는 도시 자녀들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다. 이미 보낸 재난문자를 확인하는 정도이며 상황 종료된 것이 대부분이다. 대피할 때 의미 없는 정보라는 뜻이다.


4월 7일 오전 국민재난안전포털가 등록한 산불현황. 주소 왼쪽 아이콘을 누르면 팝업으로 지도가 뜬다. /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갈무리
4월 7일 오전 국민재난안전포털가 등록한 산불현황. 주소 왼쪽 아이콘을 누르면 팝업으로 지도가 뜬다. / 국민재난안전포털 홈페이지 갈무리
산불상황관제시스템이나 국민재난안전포털은 그나마 산불 위치라도 보여주기라도 한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강원도청, 속초시청, 행정안전부, 산림청, 소방청, 경찰청 등의 홈페이지는 지도는커녕 실시간 화재 정보 제공도 없었다. 내용도 산불 자체 정보보다 관계자 대책회의, 지원계획이나 기업체 후원과 같은 홍보성 뉴스로 가득하다.

행정안전부 4월7일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행정안전부 4월7일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공공데이터 개방 확대와 민간 기술 활용이 답

모바일과 소셜시대다. 유선 웹페이지보다 모바일이나 소셜미디어 활용이 정보 전달속도나 효율성면에서 훨씬 낫다. 청와대, 행안부, 속초시청은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와 안전문자로 화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렸다. 기존 우편 주소를 기반으로 지역 주민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위치정보도 제공했다.

특히 속초시청은 발생위치뿐만 아니라 산불 확산 방향과 대피소 위치까지 트위터로 정확히 알렸다. 모범이 될 만하다.

https://twitter.com/dreamsokcho/status/1113768632352301057
-피해 지역 주민도 위치정보 포함된 재난알림문자 실시간 수신함.
-지역주민이 받은 문자 사례
[속초시청] 금일 19:17 토성면 원암리 산불발생, 학사평, 한화콘도, 장천마을 인근 주민들은 청소년수련관으로 대피바랍니다.639-2968

그런데 이런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와 정부부처는 산불 발생 사실과 주의 및 대피 당부가 끝이다. GIS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실시간 화재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당국이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브리핑을 통해 미디어에 산불 위치정보와 진행상황을 전달하지만 내용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렇다보니 미디어 보도 역시 큰 불이 났다는 ‘뉴스’만 있을 뿐 주의해야할 지역이나 대피소 위치와 같은 ‘정보’ 제공이 뒤따르지 않는다.

국가지점번호 예제. / 한국국토정보공사 제공
국가지점번호 예제. / 한국국토정보공사 제공
주요 기관이 쓰는 위치 정보 역시 지번, 도로명주소부터 국가지점번호까지 제각각이다. 서로 연계가 부족하다. 홍보 역시 미흡하다. 국토를 촘촘히 나눠 매긴 국가지점번호는 정확한 위치정보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10월말 기준으로 전국 등산로에 3만1200개쯤의 국가지점번호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일반인은 거의 없다. 일부 등산객이 산행하다가 본 적이 있다는 정도다.

무엇보다 지번과 국가지점번호과 같은 정보를 지도맵과 앱, GPS, 이동통신망과 연결해 쓰지 않는다. 여꼭 필요한 공공데이터 개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민간이 개발한 기술을 가져다 쓰지도 않는다.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는 예방한다고 다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발생 후 신속하게 대응하고 국민에게 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규제든 예산이든 문제를 빨리 찾아 바꿔야 한다. 전문가들이 전면에 나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 당국자는 적극 수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용이 든다면 치열한 논쟁도 벌여야 한다. 하지만 2019년 4월, 한국은 산불이 ‘어디로 가는지’엔 관심이 없고 ‘국가안보실장과 속초시장이 어디에 있었는지’만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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