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지난 2월 21일 손해배상청구사건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종전까지 만 60세로 보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해 만 65세로 보아야 한다는 내용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9. 2. 21. 선고 2018다248909 전원합의체 판결). 혹자가 보기에는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겨우 5년 연장해 인정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대법원이 30여 년 만에 종전 입장을 바꾼 것인 만큼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에서 문제 된 사안은 만 4살의 어린이가 가족과 함께 수영장에 방문했다가 풀장에 떨어져 사망했고, 이후 사망한 어린이의 가족들이 수영장의 설치·운영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법제상 불법행위의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해 배상해야 하는 손해는 적극적 손해(치료비 등 피해자가 실제 지출하는 등의 사유로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 소극적 손해(일실이익, 즉, 불법행위 등이 없었다면 피해자 등이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대한 손해) 및 정신적 손해(불법행위 등으로 인해 피해자 등이 입게 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로 구성된다(손해 삼분설). 이 중 소극적 손해인 일실이익의 경우, 피해자가 아직 직업을 갖기 전의 나이였다면, 일반육체노동자의 일용노임에 가동연한을 곱해 추산했다. 특히 이 사안에서 문제 된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과 관련해서는 별도로 법령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고, 대법원이 ‘경험칙’에 근거해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판결로서 정해 왔다.

원래 대법원은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에 대해 종래 만 55세를 기준으로 일실이익을 산정했으나 1989년 말에는 ‘1989년 당시의 경험칙’에 따라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1989. 12. 26. 선고 88다카16867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약 30년이 경과한 지금 다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2019년의 경험칙’에 따라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연장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린 것이다.

사실 각종의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일실이익 산정의 기초가 되는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보는 대법원 판결이 부당하다며, 이를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고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1989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평균여명과 경제수준, 고용조건 등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 외에 연령별 근로자 인구수, 취업률 또는 근로참가율 및 직종별 근로조건과 정년제한 등 제반 사정을 조사해 이로부터 ‘경험칙’상 추정되는 가동연한을 도출해야 한다고 하면서 만 60세로 본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조사된 증거에 의하면, 남성과 여성의 평균 수명은 1989년 당시 67.0세와 75.3세였으나, 2017년에는 79.9세, 85.7세로 각 12.9세와 12.2세가 늘어났다. 또한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상 정년이 연장되는 추세이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실질은퇴연령이 남성은 72.0세, 여성이 72.2세로 OECD 평균 남성 65.1세, 여성 63.6세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결국 대법원은 제반 증거에 나타난 사실관계를 고려해 2019년 우리나라에서 일반육체노동자도 일반적으로 만 65세까지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번 판결을 선고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 개인적인 견해로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적절히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되어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환영하지만, 한편으로는 필자의 변호사로서의 수명도 처음 시작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지고 있음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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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리인 대표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및 3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습니다. 법무법인(유)태평양(2005~2011)에 재직했으며, 플로리다 대학교 SJD in Taxation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법무법인 리인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 스타트업규제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조화를 고민하며 기술을 통해 효과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