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벤처기업 차등의결권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특별법 개정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시민사회단체와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차등의결권제 확대를 반대한다. 반면 스타트업 업계는 정부에 시급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22일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3월 제2벤처 붐 확산전략을 발표하며 차등의결권 주식발행을 허용하는 벤처특별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정부는 각계로부터 벤처특별법 개정과 관련해 의견을 모으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보통의 경우는 주식 1주 당 1의결권이 원칙이지만 차등의결권이 부여되면 1주에 10개 또는 100개 등 다수 의결권을 부여할 수 있다.

차등의결권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 기업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어 그 수단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일부 주주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창업자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사업을 이끌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약한 스타트업이나 혁신 벤처기업이 차등의결권을 갖게 되면 경영권 흔들릴 우려 없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2월 7일 오후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인 7명을 초청해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를 열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청와대가 2월 7일 오후 1세대 벤처기업인과 유니콘 기업인 7명을 초청해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를 열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갈무리
◇ 스타트업 업계 "차등의결권, 국내 유니콘 지킨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2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벤처기업인들이 요구한 벤처 생태계 조성 규제혁신 방안 중 하나였다.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차등의결권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최근 배달의민족, 쿠팡 등과 같은 비상장 국내 유니콘 기업을 중심으로 글로벌 벤처캐피털 자금 투자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공격적으로 해외 자금 투자를 받으면서도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방안으로 차등의결권 제도가 필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차등의결권 제도가 스타트업 인력 유출을 막는 방법으로도 이용된다는 설명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면 창업주 1인 이외에 회사 운영에 기여한 핵심 인재에게도 더 많은 의결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회사 주요 결정에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인식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혁신의 상징인 실리콘밸리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차등의결권 도입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 내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기업은 2004년 5%에 불과했지만 2016년 기준으로는 11.3%까지 늘었다. 벤처기업협회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30개 중 20개 이상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스타트업 업계는 차등의결권제를 비상장 기업뿐 아니라 기업공개(IPO)를 진행한 벤처기업에도 확대 적용할 것을 주장한다. 배달의민족, 쿠팡 등 국내 유니콘이 IPO를 한 이후에는 정작 차등의결권 적용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은 "유니콘 기업에 차등의결권 도입은 필수다"라며 "해외 자본과 각종 투자 유치 이후 경영권이 계속 흔들릴 수 있어 기업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대기업 경영권 승계에 악용될 우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벤처투자업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벤처투자 업계는 경영권을 지키려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오히려 투자를 가로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민사회는 벤처기업 대상 차등의결권 제도가 향후 대기업에도 도입돼, 경영권 승계 작업에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회 위원장)는 3월 21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벤처캐피탈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가진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매력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엄밀한 조건에서 차등의결권을 허용해도 도덕적 해이와 벤처 버블만 키울 수 있다"며 "차등의결권은 결국 재벌 세습 방안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도 "초기 창업기업일수록 투자자 의견보다는 창업가 의견을 더 많이 반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관계가 많이 얽히는 만큼 차등의결권 제도가 지나치게 부당하거나 과도한 조건으로 부여되는 건 피해야 한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라 의견이 정반대로 엇갈리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의견 수렴부터 하겠다는 입장이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현재는 벤처기업 비상장주를 대상으로으로 하고 있다"며 "대기업으로 차등의결권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