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1980년작 애니메이션 ‘전설거신 이데온(伝説巨神イデオン)’은 건담을 탄생시킨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전설거신 이데온 오프닝 영상. / 유튜브 제공

이데온은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서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곧잘 비교되는 작품이기도 하며, 등장인물 모두가 처참하기 죽음을 맞이하는 충격적인 결말로 인해 토미노 감독이 ‘몰살의 토미노(皆殺しの富野)'란 별명을 얻게된 작품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이데온은 서기 2300년, 인류가 지구를 떠나 우주로의 이민을 시작한지 50년을 맞이한 시점을 배경으로, 무한 에네르기 ‘이데'를 찾아 안드로메다 성운의 식민행성 ‘A7 솔로'에 다다른 지구인과 외계인 ‘버프 클랜’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전설거신 이데온 한장면. / 선라이즈 제공
전설거신 이데온 한장면. / 선라이즈 제공
지구인과 버프 클랜의 다툼은 병사간 소규모 무력 충돌로 시작한다. 주인공 ‘유우키 코스모'는 이야기 초반 버프 클랜과 싸움을 끝내기 위해 ‘백기'를 올리지만, 버프 클랜 사람들에게 백기는 ‘너희를 말살 시키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던 바람에 사태는 악화됐고, 지구인과 버프 클랜의 무력 충돌은 작은 국지 전투에서 행성간 전면 전쟁으로 발달하고 만다.

이데온이 가진 무한 에네르기 ‘이데'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버프 클랜은 결국 이데의 폭주를 불러왔고, 이데의 폭주에 의해 지구인과 버프 클랜은 함께 멸망하게 된다.

전설거신 이데온 한장면. / 선라이즈 제공
전설거신 이데온 한장면. / 선라이즈 제공
이데온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등장인물이 모두 죽는 충격적인 결말은 토미노 감독이 1977년 공개한 ‘무적초인 점보트3’와 함께 쌍벽을 이룬다는 것이 애니메이션 팬들의 평가다.

토미노 감독은 1977년작 ‘무적초인 점보트3’에서 당시 애니메이션 업계에 만연한 ‘해피엔딩' 관행을 깨뜨리기 위해 외계인이 인간을 폭탄으로 만들어 인류를 몰살하고, 주인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을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등 충격적인 결말을 그렸다.

이데온 역시 사실적인 전투와 포격에 머리가 날아가는 등 잔인하면서도 허망한 죽음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이데온의 참혹한 결말에 대해 토미노 감독은 "애니메이션 업계의 금기를 이데온에서 깨뜨렸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오라 배틀러 전기' 소설책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전설거신 이데온 극장판 포스터. / 야후재팬 갈무리
전설거신 이데온 극장판 포스터. / 야후재팬 갈무리
우주로 진출한 두 종족의 불행한 결말을 그린 이데온에 대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정신과학적인 이론과 인간의 잔혹성을 융합한 작품’이라 평가 한다.

이데온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인간은 서로 이해할 수 있는가'란 테마와 어른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구성, 건담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축적된 연출 노하우 등 1980년대 애니메이션 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시각이다.

전설거신 이데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전설거신 이데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에반게리온을 만든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감독, 잔혹한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마도카☆마기카를 ‘신보 아키유키(新房昭之) 감독 역시 이데온의 영향을 받은 인물이다. 두 감독은 이데온 팬으로서 2013년 출시된 이데온 블루레이 버전에서 이데온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밝힌 바 있다.

◇ 이데온과 에반게리온

1980년작 이데온과 1995년작 에반게리온은 ‘유적 발굴’부터 ‘인류 멸망을 통해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까지 애니메이션 내용 구성이 비슷하다.

2009년 출간된 서적 ‘전만화론(全マンガ論)’에 따르면 토미노 감독은 에반게리온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병(病)적이며, 이데온의 후계 작품이라 불리고 싶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토미노 감독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데온과 에반게리온은 지금도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설거신 이데온 블루레이 자켓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갈무리
전설거신 이데온 블루레이 자켓 일러스트. / 아마존재팬 갈무리
우선, 두 작품은 유적 발굴을 통해 거대 로봇을 등장시킨다. 이데온은 ‘여섯 번째 문명인의 유적'으로서 거신 이데온을 등장시키며, 에반게리온은 제2의 선주민족이 남극에 남긴 ‘아담'이라는 거인을 통해 거대 생체병기 에반게리온을 제조하게 된다.

이데온과 에반게리온은 적으로 등장하는 외계인과 사도가 인류와 같은 종족이라는 점이 동일하다. 이데온에서는 지구인의 포로가 된 ‘카라라'란 버프 클랜 종족에 대해 ‘우리와 똑같다'란 표현이 등장하며, 에반게리온에서는 사도가 인간의 유전자와 99.8% 동일하다는 대사가 나온다.

적에 대한 정신적인 교류 역시 같은 양상을 보인다. 이데온에서는 버프 클랜 종족 카라라와 지구인 베스 사이에 연애감정이 싹트며, 에반게리온에서는 주인공 소년 신지와 사도 카오루 사이에 우정이 깊어지는 장면이 연출된다.

전설거신 이데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전설거신 이데온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TV판을 기준으로 두 작품은 멸망 후 탄생되는 신인류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이데온에서는 이데 폭주로 멸망한 두 종족의 혼을 메시아가 새로운 우주로 인도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에반게리온에서는 인간과 사도 우호의 증표인 카오루가 부활하고 모든 아이들(칠드런)을 축하하는 장면이 연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