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금 등 배터리 원료로 쓰이는 금속류 가격이 현물시장 예상과 달리 안정세다. 자동차 전장화(electrification)가 가속화되면서 가격이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자동차 업계는 원료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는 모습이다.

 현대차 수소연료전기차 넥쏘의 파워트레인. / 현대차 제공
현대차 수소연료전기차 넥쏘의 파워트레인. / 현대차 제공
13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백금의 현물 가격은 최근 5년간 40%이상 하락했다가 최근 몇 달 사이 소폭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와 선박, 기차 등 이동수단에 쓰이는 연료전지 수요가 늘어나야 가격 회복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백금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조나단 버틀러 미쓰비시 사업개발부장은 "자동차용 연료전지의 글로벌 수요는 2030년 36만6000온스(약 10.3톤)까지 증가할 것"이라며 "선박, 철도, 기타 산업의 수요를 포함하면 예상치는 96만5000온스(약 27.3톤)로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자동차부품제조사 보쉬는 백금 가격이 연료전지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백금이 친환경차 제조에 여전히 혜택을 주더라도 금속 시장에서 가격 상승으로 인한 혜택을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쉬는 앞으로 연료전지를 만드는 데 지금보다 10분의1 백금만 있으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아킴 모리츠 보쉬 연료전지 부문 매니저는 "백금 등 원재료 사용과 관련 연료전지 최적화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보쉬는 최근 스웨덴 에너지기업 AB와 연료전지 대량생산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가 개발 중인 연료전지는 아직 양산단계까지 완성되진 않았지만, 새 전지에 필요한 백금의 양은 디젤 촉매변환기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억제될 것으로 이들은 전망했다. 보쉬의 신형 연료전지는 2022년 양산될 예정이다.

디젤차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촉매변환기가 널리 쓰인다. 산화환원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촉매제로 백금 등 희귀금속류가 필요하다. 촉매변환기에 필요한 백금은 3~7g 수준, 비슷한 크기의 차에 들어가는 연료전지에 쓰이는 백금은 30~60g이다.

자동차 전장화는 리튬이온계 배터리를 사용하는 배터리전기차(BEV)와 수소연료전기차(FCEV) 등 두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이중 연료전지는 수소가 산소와 결합하는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 여기에 필요한 촉매가 백금 등 희귀금속류다. 배터리전기차와 비교해 충전시간이 짧은 점, 1회 충전 후 주행 가능거리가 길다는 점 등이 연료전지 전기차의 장점으로 손꼽힌다.

데이비드 하트 E4테크 이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수소연료전기차인 도요타 미라이의 경우 현재 차 한 대당 30g 정도의 백금이 필요하다"며 "그러나 다음 신차는 백금 사용량을 10g까지 억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소전기차 분야에 집중하는 현대차 역시 2018년 말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백금양을 25% 줄였고, 차세대 전기차의 경우 감소율을 5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