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다. 우리 정부도 제2벤처붐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피땀어린 노력으로 창업한 이들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글로벌 시장을 평정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IT조선은 글로벌 유니콘을 꿈꾸며 날개를 펼치는 기업을 집중 탐구한다. [편집자주]

"가족과 떨어져 사는 이들에게 기술로 가족을 되찾아 주자. 그게 저희 목표였습니다. 추석이나 명절 때만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3월 사회현안해결 지능정보화 사업을 추진했다. 총 40억원을 들여 인공지능(AI) 등 지능정보기술을 적극 활용해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AI 로봇 스타트업 원더풀플랫폼은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 노인과 말벗이 되는 AI 로봇 ‘다솜’을 개발해 이번 과제에 선정됐다. 다솜은 5월 중 경기도 김포시에서 시범적으로 독거노인을 만나는 플랫폼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IT조선은 지난 3일 서울 양재동 원더풀플랫폼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무실 곳곳에서 다솜을 찾을 수 있었다.

다솜의 동글동글한 본체 전면에는 액정이 달려있다. 구승엽(57) 원더풀플랫폼 대표가 다솜 전원을 켰다. 액정에 불이 들어오더니 눈 웃음(^^)이 떴다. 눈을 깜빡이던 다솜은 "언제든 저를 찾아주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구승엽 원더풀플랫폼 대표가 지난 3일 IT조선과 진행한 인터뷰 중 AI 로봇 다솜을 소개하고 있다./ IT조선
구승엽 원더풀플랫폼 대표가 지난 3일 IT조선과 진행한 인터뷰 중 AI 로봇 다솜을 소개하고 있다./ IT조선
구 대표가 다솜을 개발하게 된 이유는 천안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신 장모 때문이다. 혼자 살다보니 대화할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혼자사는 어르신들이 TV를 껴놓고 마치 주인공과 대화하듯 혼자말을 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들은 귀가 어두워 TV 음량을 크게 틀어놓는다. 혹시라도 걸려온 자식의 전화를 못받는 경우가 발생하는 이유다. 또 자식들이 ‘혹시 부모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하며 발을 구르게 된다.

특히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고 있지만 생활보호사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때문에 생활보호사는 관리하는 독고노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나 한 달에 한 번 집을 방문해 확인하는 수준에 그친다.

다솜은 생활보호사 역할을 넘어 일상 속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도 도맡는다. 다솜은 음성 명령으로 가족에게 전화를 대신 걸어준다.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다솜은 원하는 유튜브 영상도 틀어준다. 30분 이상 말을 안하고 있으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치매 예방 체조법을 가르쳐 주거나 성경, 불경 구절을 읽어주기도 한다. 다섯 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생활보호사나 가족에게 알린다. 얼굴이 인식되지 않은 사람이 근처에 등장하면 "누구야"하고 묻기도 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돕는 기능도 있다. 약 복용 시간과 식사 시간 등 어르신에게 지켜야 할 일정을 알려준다. 생활패턴 데이터는 가족에게도 전송된다.

이용자 생활 데이터가 점차 쌓이면 다솜은 어르신에게 먼저 습관 개선을 제안할 수 있다. 이용자가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으면 다솜이는 먼저 "왜 안 주무세요"라고 묻는다. 식사를 골고루 먹으라는 제안도 한다. 다솜은 매일 김치찌개를 먹었다고 답하면 "내일은 김치찌개를 먹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구승엽 원더풀플랫폼 대표가 다솜의 영상통화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IT조선
구승엽 원더풀플랫폼 대표가 다솜의 영상통화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IT조선
다솜은 일상 생활에서 다방면으로 활용된다. 다솜은 온라인 쇼핑과 문화공연 예약, 상담을 도와주는 기능도 도입될 예정이다. 핀테크 업체와 협력해 기술 연동을 위한 협업도 추진된다. 이를 통해 다솜이는 "아들이 용돈을 보내왔어요"라고 알릴 수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 병원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대신 픽업 서비스를 예약할도 있다.

개선될 점도 있다. 다솜이가 진짜 자식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원더풀플랫폼은 엉뚱하게 흐르는 대화 상황을 인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용자가 다솜이와 대화를 나누다, 다솜이가 흐름에 맞지 않는 말을 던져 대화가 끊기면 자동으로 생활보호사에게 알림이 뜬다. 생활보호사는 원격으로 다솜 대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다솜은 실제 다른 이용자를 연결하기도 한다. 다솜은 성격이나 속한 환경이 비슷한 이용자를 찾아 원격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다. 구 대표는 "독거노인 간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넣은 기능이다"라고 소개했다.

./ 원더풀플랫폼 제공
./ 원더풀플랫폼 제공
◇ 기술력으로 승부 "기술로 세상 바꾸는 플랫폼 될 것"

원더풀플랫폼이 다솜을 개발할 수 있던 데는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이 바탕이 됐다. 구 대표는 "그동안 개발한 AI 기술을 어떤 하드웨어든 얹기만 하면 AI 하드웨어로 만들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현재 원더풀플랫폼 이름으로 등록된 기술특허는 총 35건(등록 14건, 출원 14건, PCT 출원 7건)이다. 총 41명 직원 중 81%가 전문 연구인력이다. 회사 전체가 연구에 집중하는 셈이다.

2016년 1월 설립된 원더풀플랫폼은 3년 차 스타트업 답지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같은 해 12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ICT유망기업(K-Global)에 선정됐다. 2017년에는 한국거래소에서 운영하는 KSM(KRX Startup Market)에 등록됐다. KSM은 비상장기업인 스타트업이 발행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결성한 엔젤투자 개인조합 등으로부터 투자도 유치했다.

원더풀플랫폼이 보유한 핵심 기술은 AI 기반▲영상인식 ▲음성합성 ▲자연어처리 ▲데이터 분석 분야다. 원더풀플랫폼의 챗봇 빌더 서비스 ‘인비챗'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무료로 AI 모듈을 만들어 나만의 인공지능 비서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이외에도 원더풀플랫폼은 최근 SK텔레콤과 협력해 대화형 홀로그램 스피커도 개발했다. 스마트 스피커에 가상 AI 아바타를 띄워 대화하면서 음성으로 각종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원더풀플랫폼 홀로그램 스피커는 일부 병원에서 화상환자 같은 면담이 어려운 전용 병실에 있는 환자가 보호자와 면회 하거나 간호사를 호출할 수 있는 용도로 활용한다.

원더풀플랫폼이 개발한 여러 기기가 실제 상용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규제 때문이다. 원더풀플랫폼은 일찌감치 고령 이용자를 대상으로 헬스케어 플랫폼을 개발했다. 매일 먹는 음식과 복용약, 진료 기록, 문진 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기록하면 AI 분석을 기반으로 이용자에게 필요한 음식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현행 법규상 의료데이터 활용이 불가능해 현재는 기술 개발 단계에만 머물러 있다.

구 대표는 "창업 이후 각종 기술을 많이 쌓아뒀지만 정작 기술을 활용할 데이터가 없다"며 "기술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해외에서 제공받아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원더풀플랫폼은 말 그대로, 세상을 바꾸는 ‘원더풀(Wonderful)’한 플랫폼이 되자는 취지로 구 대표가 붙인 이름이다. 다솜을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솜은 올해 하반기 중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말벗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현재 대학병원과 손잡고 발달장애 아동 대상 교육 로봇으로 실험 중에 있다.

구 대표는 "아이들은 로봇을 반려동물처럼 생각해 귀엽다며 끌어안고 자기도 한다"며 "애착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발달장애 치료에 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술 플랫폼이 가족을 한데 모을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구 대표는 "각자 생활하는 가족을 수시로 모이도록 해, 가족을 찾아줄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