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에서 영업익 1조 목표로…日 샤프 부활 비결은

입력 2019.05.15 17:13

일본 전자기업 ‘샤프(Sharp)’. 필기구 ‘샤프 펜슬’을 만든 주인공이자 일본 8대 가전 제조사로 불리울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샤프 전자사전과 노트북이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고해상도 TV와 로봇 등 다양한 전자 기기를 만든다.

. / 샤프 홈페이지 갈무리
샤프가 최근 2018년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2조4000억엔(26조541억원), 영업이익은 841억엔(9129억원)이다. 당초 일본 증권가가 전망한 실적 컨센서스(매출 2조8900억엔, 31조3709억원)보다는 다소 낮다. 하지만, 1조원에 가까운 영입이익을 거둔 점을 좋게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샤프는 최근 파산까지 검토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폭 감자 후 은행에 긴급 자금을 요청했다 거절당하는가 하면, 대만 전자기업 훙하이그룹에 피인수되는 과정에서 숨겨진 우발채무가 발견되는 등 굴욕도 겪었다.

그러던 샤프가 불과 몇년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뼈를 깎는 자구책과 구조조정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 차기 주력 사업을 제대로 파악한 ‘선견지명’과 적재적소에 이뤄진 ‘투자’가 유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2012년 정크본드 강등, 2016년 천문학적 우발부채 등 풍파 겪어

1935년 설립된 샤프는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웠다. 앞서 예로 든 샤프 펜슬뿐 아니라 전파 라디오, 전자 레인지를 비롯한 가전, 계산기를 포함한 사무용품, TV와 액정 등 다방면에서 늘 최초이자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세번째 밀레니엄(2000년)의 첫날, 샤프는 ‘LCD(액정디스플레이) Only’를 선언하고 LCD TV 연구개발에 나선다. 이렇게 출원한 수많은 LCD 특허를 앞세워 샤프는 세계 TV와 액정 시장을 지배한다. 그리고 해마다 공장을 비롯한 LCD 설비 투자 금액을 늘렸다.

샤프 아쿠오스 8K TV. / 샤프 홈페이지 갈무리
이 샤프를 몰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한국 전자업체였다. 2000년대 중반 샤프와 LCD 기술 관련 송사를 겪은 삼성·LG전자는 대형 LCD에 집중 투자한다.

시대의 흐름은 샤프의 주력인 중소형 LCD가 아닌, 삼성·LG전자의 주력 대형 LCD쪽으로 기울어졌다. 판매 부진, 여기에 2010년 찾아온 세계 경기 불황과 엔고 현상이 겹치면서 투자에 매진한 샤프의 자금 사정은 급격히 악화된다. 당시 샤프의 적자 규모는 3800억엔(4조1253억원)에 달했다.

삼성·LG전자에 대항하려고 일본 TV 제조사는 2012년 연합(재팬디스플레이)을 만든다. 디스플레이 기술 원조라는 점에 자만한 샤프는 여기에도 참가하지 않고 독자 경쟁에 나섰다. 결국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2012년 이후 샤프는 매년 수백억엔의 적자를 냈다. 신용평가사로부터 ‘정크본드(신용도가 극히 나쁜)’ 평가까지 받았\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샤프는 필사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 퀄컴과 삼성전자, 애플 등이 샤프에 투자했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이내 발을 뺀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던 훙하이그룹은 샤프 인수를 시도한다. 3500억엔(3조797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빚이 될 가능성이 큰 부채)가 보고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샤프는 2016년 훙하이그룹의 일원이 된다.

◇ 훙하이 피인수 후 영업익 1조 노리는 견실 기업으로…"8K·5G AIoT에 사활"

훙하이정밀공업에 인수된 샤프는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한다. 인력을 감축하고 일본 내 가전 생산을 포기하는 등 구조조정에 단행했다. 차기 주력 사업도 신중하게 결정했다. 주축인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OLED와 고선명 디스플레이 익조(IGZO)를 활용한 ‘8K’를, IoT 부문에서 빅데이터·클라우드·5G를 융합한 ‘AIoT(AI + IoT)’를 각각 낙점한다.

이러한 결단력과 혁신이 빛을 발했다. 샤프는 4K UHD보다 선명한 8K UHD 시장이 열릴 것을 예견하고 8K TV를 개발한다. 이를 뒷받침할 영상 입출력기기, 편집 시스템, 고해상도 카메라 연구·개발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샤프는 8K UHD 하드웨어 솔루션뿐 아니라 기업·일반 소비자 대상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까지 기획했다. 마침 일본이 2018년 12월 시작한 8K 시험 방송도 호재로 작용했다.

5G 버전으로도 판매될 스마트폰, 샤프 아쿠오스R3. / 샤프 제공
AIoT(인공지능+사물인터넷) 부문에서도 5G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정보통신업계의 화두 인공지능에 이어 5G가 전세계 각국에서 속속 상용화한다. 초고속, 저지연 특성을 가진 5G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IoT 부문 혁신을 이끌 기술로도 꼽한다.

샤프는 2017년부터 AIoT를 육성 중이다. 인공지능에 사물인터넷을 결합, 활용 범위를 넓힌
기술이다. 여기에 5G를 더하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편리하게 사물인터넷을 쓸 수 있다. 마침 샤프는 5G AIoT 허브 역할을 할 스마트폰 브랜드 ‘아쿠오스’도 가졌다.

같은 일본 스마트폰 제조사 소니가 주춤한 사이, 샤프는 재빨리 5G 스마트폰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목표는 9월 일본 5G 시범 서비스와 동시에 5G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본 최초 5G 스마트폰 타이틀을 거머쥐며, 유럽과 중국 등 5G 서비스를 앞둔 지역의 스마트폰 시장 진출도 노릴 수 있다.

샤프는 2018년 결산 설명회에서 2019년 매출 및 영업이익 목표를 발표했다. 매출 목표는 2조5000억엔(27조887억원), 영업이익은 1000억엔(1조835억원)이다. 각각 2018년보다 10.4%, 18.8% 높은 수치다. 치열한 정보통신업계 경쟁을 뚫고 실적을 두자릿수 이상 올린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셈이다.

최고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절치부심 끝에 부활한 샤프. 정보통신업계에는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산 증인이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 투자, 선견지명을 가진 기업이 얼마나 큰 잠재력을 발휘하는지 알려준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 정보통신업계에 위기론이 퍼진다.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한국이 주도해온 정보통신 기술 격차는 이미 상당 부분 좁혀졌다. 심지어 일부 부문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 정보통신업계가 위기에 대처하지 못한다면,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지 못한다면 샤프가 겪었던 굴욕을 당할 게 뻔하다. 이는 선견지명과 집중 투자로 부활한 샤프를 새삼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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