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 4위 통신사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인수합병(M&A) 여부가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미국 규제당국의 결정이 한국의 통신사업자 M&A를 심사하는 규제당국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22일 M&A 분야에 정통한 통신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 규제당국이 어떠한 조건을 걸고 인수합병을 허가하는지, 인수합병을 어떤 이유로 반대하는 지 등 이슈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결정은 정부는 물론 사업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T모바일, 스프린트 로고. / 각 사 제공
T모바일, 스프린트 로고. / 각 사 제공
◇ T모바일 스프린트 합병두고 美 규제당국 온도차

최근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합병을 앞두고 미국의 규제 당국인 연방통신위원회(FCC)와 법무부는 엇갈린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20일(현지시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아짓 파이 FCC 위원장은 "T모바일이 265억 달러(31조6000억원)에 스프린트를 인수하려는 계획을 승인하도록 다른 4명의 FCC 위원들에게 권고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6년 이내 미국 인구 99%를 커버할 수 있는 5G망을 구축하겠다는 새로운 약속을 한 후 T모바일과 스프린트 간의 합병을 승인하겠다고 한 것이다.

파이 위원장은 "FCC의 두 가지 최우선 과제는 전원 지역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고 5G 사업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증진하는 것이다"며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내놓은 약속이 이런 목표 달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짓 파이 미 FCC 위원장. / FCC 홈페이지 갈무리
아짓 파이 미 FCC 위원장. / FCC 홈페이지 갈무리
이날 파이 위원장의 합병 승인 방침 소식이 나온 후 27%까지 치솟았던 스프린트의 주가는 법무부가 상반된 신호를 내보낸 후 크게 요동쳤다. 한때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시민단체, 노동단체나 민주당 의원들은 양사의 합병으로 요금 인상과 일자리 감축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다.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오바마 행정부 시절 합병을 추진하다 반독점법 규제에 걸려 좌절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양사의 합병을 통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서 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미국에 일자리를 창출하며 케이블 회사나 버라이즌, AT&T 등과 경쟁할 가정용 인터넷 사업도 구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두 회사는 독점 우려 해소 차원에서 스프린트의 선불제 휴대전화 사업을 맡고 있는 부스트 모바일을 처분하기로 했다.

파이 위원장의 공식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FCC 전체 위원들의 투표 절차와 또 다른 변수 법무부의 승인도 남아있다. 파이 위원장과는 달리 법무부는 합병을 반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합병 검토에 정통한 인사는 "T모바일과 스프린트가 제안한 처방들이 합병이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법무부의 반독점 수장이 합병에 반대한다면 이는 FCC와의 이례적인 균열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법무부와 FCC는 합병 검토 때 통상적으로 승인 여부와 관련해 한목소리를 내왔다.

◇ 美 통신사 M&A 이슈와 한국의 닮은꼴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SK텔레콤은 전 정부에서 CJ헬로와의 M&A를 시도했다가 실패 후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합병을 새롭게 시도한다. 합병의 대상은 CJ헬로에서 티브로드로 변경됐다.

합병을 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두 규제 당국의 결정이 남아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각 사 로고. / 각 사 제공
각 사 로고. / 각 사 제공
현재 과기정통부와 공정위는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와, SK텔레콤의 티브로드 합병을 각각 심사 중이다. 이 중에서도 공정위의 결정은 통신을 비롯한 유료방송 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과거 공정위가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반대하며,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의 심사는 제대로 이뤄지지조차 못 했다.

당시 미래부에서 인수합병 심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사실 공정위와는 달리 미래부에서는 인수합병을 부정적으로 보진 않았다"며 "M&A 허용하되 어떻게 시장을 활성화 할 지에 대한 정책적인 고민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같은 M&A 사안을 놓고 규제당국의 시각이 달랐던 점에서 지금 미국의 상황과 비슷한 모습이다.

한국 역시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일자리 감축과 시장 독점에 따른 요금상승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낸다. 인수합병 심사 중인 유료방송 사업자 소속 노조들은 과기정통부 앞에서 공정한 인수합병 심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 중이다.

시장 변화에 따라 M&A가 필요하다는 사업자들의 논리도 닮은꼴이다. 미국의 T모바일과 스프린트는 5G 활성화를 위해 두 회사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논리를 펼치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통신3사와 인수가 거론되는 케이블TV업체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대항하기 위해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합병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