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질병 분류에 한국 게임산업계만 반발하는 게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게임산업계도 반대성명을 냈다. 주목할 것은 해외 의학·심리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다.

세계보건총회. / WHO 갈무리
세계보건총회. / WHO 갈무리
◇ 국내외 게임업계 "적절한지 과학적 검증 같이 해보자"

미국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협회(ESA)는 사실상 세계 게임산업계를 대변하는 단체다. ESA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팬을 환자로 보지않는 것처럼, 게임 팬을 환자로 내모는 것은 옳지 않다"고 WHO에 반박 입장을 밝혔다. 퍼거슨 등 해외 게임 연구자 26명도 WHO의 게임 질병 코드 분류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글로벌 게임 협단체는 게임을 질병으로 등재할만큼 과학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함께 연구해 보자고 WHO에 제안했다.

게임과몰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으며 다른 종류의 중독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와 항목이 구분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게임업계는 게임 의존증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면 우울증이나 조현병 등 다른 병에 기인한 형태가 아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게임업계도 게임 질병 코드 부여의 적절성과 적용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영향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주무부처인 통계청, 보건복지부, 문화관광체육부, 산업계 및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해외 전문가 "잘못 접근했다가 엉뚱한 처방 내릴라"

해외 의학·심리학 전문가들은 게임 질병 분류가 과학적 증거나 근거자료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과학적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니 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들은 게임 의존 증상이 금단증상과 같은 전통적인 중독 질병과 궤를 달리해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을 보였다. 영국 미들섹스대학의 ‘마크 콜슨’ 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종류의 중독과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데 게임 장애 질병만 따로 분류한다는 것은 대중의 혼돈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이용장애가 중독에서 오는지, 강박적인 행동 장애에 따른 것인지 연구를 통한 명확하게 분류하고 질병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넷 등 다른 요인과 혼재돼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존스홉킨스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의 ‘미셀 콜더 카라스’ 정신건강학과 교수는 "WHO가 게임 장애 근거로 제시한 것이 인터넷 중독 등 다른 중독들에 연구 결과를 제시한 것"이라며 "게임 장애를 유발한 단독 근거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게임이 정신 관련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프레이밍햄 주립 대학교의 ‘앤서니 빈' 임상심리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게임중독 증상으로 치료 받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 게임보다 ‘우울’과 ‘불안’ 증세로 더 어려움을 겪는다"며 "많은 임상치료사가 게임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와 게이머들이 게임을 즐기는 이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빌면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엉뚱한 처방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빈 교수는 "명확한 진단 기준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문화적 시각으로 인한 고정 관념이 생기며, 이로인해 과학적인 연구 대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에 휘둘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 국내 전문가 "개념 정리와 절차 부적절"·"낙인 효과 악영향"

우리나라 의료계에도 게임 질병 분류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대표적이다. 한 교수는 "중독은 갈망, 내성, 금단이라는 세 증상을 충족해야 하는데, 게임은 몰입 시간이 짧아 질병 중독 증상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하지현 건국대학교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선호도 방식의 인터넷 중독 진단조사( IAT)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논문 ‘인터넷 중독 테스트의 유용성(Usefulness of Young’s Internet Addiction Test for Clinical populations)’을 통해 ‘IAT’는 인터넷 중독자의 실제 중독 여부와 정도를 진단하는데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하 교수는 "질병은 사례가 모이고 이들 사례만의 전형적 특징과 인과 관계, 진단 척도 등이 형성되는 과정이 진행되지만, WHO의 게임이용장애는 거꾸로 진단척도를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며 WHO의 모순을 꼬집었다.

‘게임=질병’이 공식화할 경우 엉뚱한 걱정하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심리학박사인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이 대표적이다. 이 소장은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 ‘병적 이득’(morbid gain)과 같은 용어를 인용해 설명한다.

노시보 효과는 효과가 있는 약인데도 환자가 효과가 없다고 믿으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플라시보효과(Placebo effect)의 정반대 개념이다. 이 소장은 게임장애라는 명칭이 공식화하면 우리 사회에 ‘노시보 현상’이 생겨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어떤 게임 이용자들에게 게임장애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돈다. 그 순간 그 게임을 했던 사람들도 유사 증상을 경험한 것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면 없던 ‘게임장애인’이 폭증한다. 게임에 부정적인 기성세대도 그렇게 부정적으로 봤던 근거를 확인하는 확증 편향이 더욱 강화된다. 일종의 낙인 효과로 게임과 그 이용자는 더 나쁜 쪽으로 가게 만드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병적 이득’은 ‘병으로 인해 얻어지는 심리적, 환경적 이득’이다. 유명인이 검찰에 불려갈 때 비난을 덜 받으려고 멀쩡히 걸어가기 보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례다. 이 소장은 게임이 질병이 되면 ‘범죄자가 범행 원인을 게임으로 돌려 감형을 시도한다거나 병역과 같은 사회적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