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훈·박지혜의 아트파이낸스 인사이트] 한국 미술품 담보대출, 왜 성장에 실패했을까?

  • 홍기훈 홍익대학교 교수, 박지혜 석사
    입력 2019.05.30 10:32 | 수정 2019.06.11 14:27

    영화 ‘상류사회’를 보면 재벌이 미술품 거래로 비자금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전시 행사를 열어 미술품을 홍보하고 해외 경매장에 내놓는다. 회사 자금으로 미술품을 비싼 값에 사서 경매 기록을 만들고, 이 경매 기록과 작품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비자금을 만드는 방식이다.

    고가의 미술품 담보대출로 비자금을 만든다니. 잘 살펴보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일이다.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지난 칼럼에서 해외 미술품 담보대출 현황을 살펴봤다.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 미술품 담보대출의 현황을 알아보려 한다.

    2005년 전후 전세계 금융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대체투자’가 각광 받았다. 풍선효과(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특정 사안 덕분에 관련 부문에서 새로운 현상이 발생하는 현상) 덕택에 ‘미술품 투자’가 수면위로 떠오른 것도 이 시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갤러리나 경매 회사, 저축은행이 주로 미술품 담보대출을 이용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오자 미술품 거래량이 크게 줄었다. 자연스레 미술품 담보대출도 위기를 맞았다. SGI서울보증의 보증 하에 일부 저축은행이 실시한 미술품 담보대출에서 대출금 환수에 실패하는 사례까지 생겼다. 저축은행 파산도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지금도 서울옥션을 비롯한 경매 회사는 미술품 담보대출을 진행한다. 하지만, 규모는 해마다 크게 줄고 있다. 2013년 서울옥션의 매출 150억원 가운데 미술품 담보대출금 수입은 28억원, 18%를 차지했다.

    2017년 서울옥션의 매출은 540억원으로 늘었지만, 미술품 담보대출금 수입은 4억7000만원, 0.88%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누적된 담보대출 규모도 45억원에 불과하다.

    미술품 담보대출을 다루던 저축은행의 줄파산, 서울옥션에서 점점 줄어드는 미술품 담보대출 규모 등 현황을 보면 ‘한국에서는 미술품 담보대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저축은행이나 회사가 아닌 제1금융권은 어떨까? 제1금융권은 미술품 담보대출에 적극적이지 않다. 이유는 많다. 먼저 미술품 담보대출 프로세스는 법률로 정형화하기 어렵다. 법률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특성 탓에 리스크가 커지며, 이를 막기 위한 조항을 넣어야 하니 계약서가 아주 복잡해진다.

    위작이 발견되거나 작품이 훼손될 경우 미술품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한다. 이를 제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래 빈도가 매우 적은 특정 미술품은 시장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게다가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지금까지 한국에서 미술품 담보대출이 제대로 작동한 사례도 거의 없었다. 따라서 제1금융권 입장에서는 미술품을 담보물로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1금융권이 미술품 담보대출에 나서기에는 ‘독소조항(법률, 공식 문서가 의도하는 목적을 막는 조항)’이 너무 많다.

    2008년 이뤄진 SGI서울보증의 미술품 담보대출 보증의 면책 기준을 보자. ▲천재지변에 의한 작품훼손 ▲이자 연체 시점으로부터 1개월 초과해 통보 ▲대출 만기 도래 후 1개월 초과해 미상환 사실을 신고 등 일반적인 면책 기준이 적용됐다.

    한편으로는 ▲작품이 조금이라도 훼손된 경우를 포함해 관리에 실패한 모든 경우 ▲작품의 시장가치가 일정수준 이하로 하락한 경우 ▲작품을 경매에서 처분할 수 없는 경우 등 무리한 독소조항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인지라, 한국 미술품 거래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제1금융권의 미술품 담보대출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하겠다.

    온고지신이라 했다. 한국 미술품 거래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는 한편 해외 시장의 역사와 사례를 분석하면 한국에서도 성공 사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한국과 달리 성공리에 이뤄진 해외 미술품 담보대출 사례를 살펴보겠다.

    ※ 외부필자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학교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 박사 후 시드니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 자문 활동을 하고 있다.

    공동 필자 박지혜 석사는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 대학원 졸업 후 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미술품 감정인력 양성 지원-미국감정가협회(AAA) 협력 프로그램을 수료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연구 용역, 갤러리 전시 기획 등 다양한 아트 파이낸스 실무 경력을 쌓았다.

    이들은 한국 미술품 구매·투자론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2016년 한국금융연구원 기타보고서 ‘국내 미술금융 활성화 전략 및 활용방안’, 10년간 이뤄진 5만건 이상의 미술품 경매 데이터를 분석해 전시 여부와 가격간 상관 관계를 증명한 논문 ‘미술관 전시 여부와 작품 가격의 관계’를 집필했다.

    문화체육관광부·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미술품 담보대출 보증지원 사업 계획(안)’의 운영 방안 연구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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