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작의 신약이야기] 퀵 킬(Quick Kill) vs 슬로우 데쓰(Slow Death)

  • 이 영작 LSK글로벌PS 대표
    입력 2019.06.04 06:00

    과학자들이 연구소에서 발견한 신약은 열에 아홉은 임상개발단계에서 실패한다(신약은 ‘발명’이라 하지 않고 ‘발견’이라 한다). 이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제약업계 격언(格言)이고 미국 식품의약국(FDA) 통계가 증명한다. 신약 개발에 10년 이상 걸리고 2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정부는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수출산업으로 신약(바이오) 산업을 정하고 해마다 4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90% 실패율과 연계해 본다면 4조원을 투자하면 3.6조는 실패 비용이 된다. 제약회사와 바이오텍과 투자사들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비용은 해마다 2~3조원 정도는 될 것으로 추측된다. 그 돈의 90% 역시 실패 비용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10년 후 열 개에 아홉 개는 실패하는 신약개발 사업을 국가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2006년 12월 화이자(Pfizer)는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높이고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낮추는 꿈의 신약 톨씨트라핍(Torcetrapib)의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했다. 기초 연구부터 20년 이상, 2조원 이상을 투자한 신약의 실패였다.

    최근 미국 통계를 보면 신약 하나가 태어날 때까지 드는 비용은 평균 6.4조원이다. 그 가운데 5.8조원은 실패 비용일 것이다.

    미국 제약업계에 ‘퀵 킬(Quick Kill, 빨리 없애자)’이라는 말이 있다. 가능성 없는 신약은 신속히 솎아 내자는 말이다. 몇 년 전 LSK Global PS가 대형 글로벌 임상실험대행업체(CRO)와 경쟁해 굴지의 글로벌 제약사 항암제 퍼스트 인 휴먼 스터디(First in Human study)를 수주한 경험이 있다. 한국과 호주, 양국에서 시행한 임상시험이었다.

    필자가 그 제약사에 한국과 호주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이유를 묻자, ‘신속성’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임상시험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고 결국 이 신약은 퀵 킬 당했다.

    국내 신약개발 동향을 보면 훌륭한 신약개발 인프라를 갖춘 한국보다는 미국서 개발이 대세다. 정부 역시 세금을 가지고 미국에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것에 별 제약을 두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격려하는 편이다. 제약산업은 약을 개발해 판매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니 세계에서 가장 큰 제약시장을 가진 미국을 타깃으로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한 지인은 "LSK Global PS가 정부 신약 정책 혜택을 보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다. "콩고물도 떨어질 것 같지 않다"고 답한 적이 있다. 제약사와 바이오텍이 미국 진출을 위해서는 대형 미국 CRO와 일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조원 파티는 국내 CRO와 관계가 없어 보인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있다. 미국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제약 업계와 정부 정책은 퀵 킬이 아닌 슬로우 데쓰(Slow Death)를 지향한다. 미국에 가서 장기간에 걸쳐서 큰 비용을 들여 실패하는 길(route)를 채택하고 있다.

    열에 아홉이 실패하는 사업에서 미국 대형 CRO와 임상시험을 진행해 실패하는 것이 국내에서 국내 CRO와 임상시험을 하고 실패하는 것보다 멋있고 사주(社主)와 주주(株主)에게도 떳떳할 지도 모르겠다. 국내 CRO와 신약 개발하고 실패하면 "왜 국내 CRO와 했느냐?"는 질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으로 향하는 것 같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패할 신약이 과연 미국에 간다고 성공할까? 신약 개발에서 성공은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 성공은 예외일 뿐이다.

    LSK Global PS는 NRDO(No Research, Development Only) 사업을 시작했다. 신약 후보물질을 라이선스 인(license-in)하여 LSK Global PS 전문 인력이 지난 20년간 축적한 노하우로 단기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개발해 다시 라이선스 아웃(license-out)하는 사업이다. 라이선스인은 외부에서 발견·개발한 의약품 권리를 구매하는 것이며, 라이선스아웃은 내부에서 발견·개발한 의약품 권리를 외부에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진행했을 때에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우리 비용은 1/10정도다. 시간도 절반 미만이다. ICH 가입국인 우리나라는 임상시험 선진국으로, 한국에서 생성된 임상 데이터는 모든 선진국에서 받아들인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고 미국으로 진출해도 늦지 않다. 미국에서 신약 1개 개발할 비용으로 10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실패비용도 미국에 비하여 1/10밖에 되지 않는다.

    LSK Global PS NRDO 사업은 국내에서 의약품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개발해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국내 신약개발이 활성화되고 선진국 진출이 시작되면 CMO, Central Lab(모든 병원에서 수집되는 혈액 샘플 등을 수집·분석해 책임지는 기관), Drug Supply Business(임상시험 약물 제조사에서 임상시험 기관에 배송하는 업무를 담당), Central Imaging(CT, MRI, PET 스캔 자료를 중앙에서 수집해 관리 분석하는 업무), ePRO(환자가 전자적으로 보고하는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업무), 헬스(health) IT 등 각종 신약개발 지원 업계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아시아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제약산업을 가진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인구가 1억2000만명을 넘는 국가로서 일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신약 시장이 된다. 우리나라는 인구 5000만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자체 신약 시장 규모로 볼 때 부족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스위스,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등 작은 나라도 제약산업을 활발하게 하는 건 유럽이라는 시장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 진출에 열을 올리기 보다는 아시아 4룡(龍,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을 하나의 의약산업 연합으로 묶어 신약산업을 공유한다면 인종적으로 유사한 8800만 규모의 신약 시장이 창출돼 신약 산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차세대 먹거리 신약산업을 위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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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작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 대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교(Ohio State University)에서 통계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 이후 통계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미국 국립암연구소(NIH), 국립신경질환연구소, 국립모자건강연구소 등에서 데이터 통계분석과 임상연구를 담당했다. 1999년 한국으로 귀국해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를 겸임하며 2000년도에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S)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임상CRO협회장을 역임해 국내 CRO산업 발전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권위 인명 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에도 등재됐다. 현재 서경대 석좌교수를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