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희의 4차산업 법이야기] 가상실명계좌 유감

  • 한서희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입력 2019.06.05 06:00

    블록체인 업계 일각에서 실제 돈을 번 곳은 암호화폐 거래소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를 이유로 거래소가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 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수없이 많은 거래소가 생겨난 이유다.

    거래소는 설립을 위해 어떤 기관에 등록하거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설립이 자유롭다. 그 결과 암호화폐 거래소 시장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들어와 사업을 하게 됐고 정말 다양한 성격의 거래소가 존재하게 됐다. 거래소와 관련된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로 거론된다.

    가장 흔한 사례는 거래소가 갑자기 현금 입출금을 제한한 뒤 대표가 사라지는 경우다. 이는 결국 거래소 폐업으로 이어지고 당장 회원들은 피해를 구제받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폐업을 하거나 파산 절차를 진행하면 모든 채권자들은 잔존재산으로부터 채권확보를 해야 한다.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거래소 자산이 남아있을리 없다. 때문에 회원들은 자신이 예치해둔 현금이나 암호화폐를 사실상 반환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는 금융기관이 아니다.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소에 현금을 맡긴 회원들은 예금자 보호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결국 암호화폐 거래소가 문을 닫으면 회원들은 구제를 받을 수 없다.

    물론 모든 거래소를 이런 문제 있는 거래소로 치부해선 안된다. 제대로 경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열심히 사업하면서 생태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는 거래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정상적인, 노력하는 거래소도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한가지 있다. 바로 보이스피싱이다. 보이스피싱은 거래소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 문제는 벌집계좌다.

    벌집계좌는 거래소 법인계좌 아래에 여러 거래자들 개인계좌를 두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중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곳은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 4곳 뿐이다. 나머지 중소 거래소 상당수는 벌집계좌로 거래를 한다. 꼼수지만 가상계좌 발급이 막힌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실제 대다수 암호화폐 거래소는 가상실명계좌가 아닌 벌집계좌를 통해 현금 입출금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벌집계좌가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OO계좌로 돈을 입금하라고 하는데, OO계좌는 암호화폐 거래소 벌집계좌다. 기존에는 대포통장을 이용했는데, 최근에는 벌집계좌를 이용하는 추세다.

    보이스피싱 사기단은 자신이 지목한 벌집계좌에 돈이 입금되면 바로 거래소에 매수 주문을 걸어 암호화폐를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전송한다. 거래소에 각 개인 ID별로 가상실명계좌가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기단이 벌집계좌를 통해 더욱 쉽게 보이스피싱을 한다. 사기범이 암호화폐를 자신의 전자지갑 주소로 반출하면 암호화폐 지갑주소 특성상 사실상 암호화폐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이미 계좌 내 현금이 암호화폐로 전환돼 반출된 경우는 피해자가 자신의 돈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런 범죄는 거래소와 그 회원에게까지 피해를 끼친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금감원에 피해구제신청을 하면 거래소 계좌가 지급정지를 당한다. 이 경우는 거래소의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 같은 보이스피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거래소에 가상실명계좌를 개설해 줘야 한다. 그럼에도 은행(사실상 정부)은 가상실명계좌를 열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는 벌집계좌를 문제라고만 인식하고 벌집계좌를 없애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관련업계에서는 정부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전망한다. 개정안은 벌집계좌 금지, 은행의 벌집계좌 회수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4곳을 제외하곤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인 셈이다.

    여기에 금융위원회는 거래소 신고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신고 수리 요건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가상실명계좌를 부여받아야 하고 정보보호 인증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은 틀림 없어 보인다.

    핵심은 가상실명계좌다. 정부는 어떤 요건을 갖추면 거래소가 가상실명계좌를 부여받을 수 있는지 조속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서희 변호사는 법무법인 유한 바른에서 2011년부터 근무한 파트너 변호사다. 사법연수원 39기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대학원 공정거래법을 전공했다. 현재 바른 4차산업혁명대응팀에서 블록체인, 암호화폐, 인공지능(AI) 등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공정거래, 지적재산권 전문가다.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자문위원,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블록체인법학회 이사, 한국인공지능법학회 이사,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 특별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