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박기상 링크드인 엔지니어 “실리콘밸리는 극단적인 다양성을 실험하는 공간"

입력 2019.06.05 13:00

구글과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전 세계 시장을 쥐고 흔드는 IT시장 큰 손이라는 점, 그리고 모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실리콘밸리는 미국 전역을 넘어 전 세계 혁신 기업을 키워낸 공간이다. IT조선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찾아 혁신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달리는 주요 인물을 만나 그 비결을 탐구한다. [편집자주]

실리콘밸리에선 아무리 신기술이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이용하는 사람과 수요가 금세 꽉 차고 만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일할 수 있고 자유를 만끽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기술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한다. 물속에서 끊임없이 발장구를 쳐야 하는 오리 발과 같다.

박기상 링크드인(LinkedIn) 시니어 엔지니어는 하드웨어 제조로 시작해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모바일 앱 개발, 인공지능(AI)·머신러닝 분야까지 발 담그지 않은 개발 분야가 없을 정도다.

그의 이력은 실리콘밸리와 일면 닮았다. 엔진을 다루는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박기상씨가 현재 커리어를 갖게 되기까지 ‘카멜레온 전략’을 펼쳤고 이는 유효했다. 실리콘밸리 그리고 링크드인이 원하는 인재는 박기상 엔지니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IT 트렌드 변화를 읽고, 언제든 자신의 색을 바꿀 수 있는 카멜레온이다.

IT조선은 지난 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링크드인 사무실에서 박기상 엔지니어를 만났다.

캘리포니아 222 Second St에 위치한 링크드인 사무실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7시였다. 직원들은 이미 모두 퇴근한 뒤였다. 사무실 곳곳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박기상씨는 빈 회의실에서 취재진을 맞았다. 한국 IT기업이 7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불이 환하게 켜져있는 모습과는 정반대다.

박기상 링크드인 엔지니어가 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링크드인 사무실에서 IT조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IT조선
―7시 이전에 다들 퇴근하는 분위기인가

"각자 상황에 따라 다르다. 출퇴근 시간보다는 본인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퇴근 후에도 따로 교육을 받거나 자기 계발에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링크드인은 언제 합류했나. 그동안 몸 담았던 회사는

"올해로 1년 반 정도 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버지니아주에 있는 지리움(Xerium)이라는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리움은 철강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다. 종이도 만든다. 기계공학과 출신이라 입사 후 하드웨어(HW) 개발을 주로 맡았다. 그러다 자연스레 HW에 올라가는 소프트웨어(SW)에 관심을 갖게 됐고, 개발로 연결됐다.

SW 개발을 시작하다 보니 마침 새로 등장한 아이폰이 보였다. 바로 iOS 앱 개발을 몇 개 해봤다. 그 이력 덕분에 이베이에 입사할 수 있었다. 당시 이베이를 포함해 실리콘밸리 내 많은 회사가 모바일 개발자를 고용했다. 당시만 해도 모바일 앱 개발을 할 수 있는 개발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모바일 앱을 만드는 회사도 창업했다. 그때 만들었던 앱은 스마트폰을 켜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어디 어디에 갔는지를 다 기록으로 남기는 앱이었다. 데이터는 각 단말기에만 저장되기 때문에 데이터 유출 문제도 없었다.

5년간 회사에 몸담다가, 인텔로 옮겨 VR(Virtual Reality) 개발팀 팀장을 맡았다. IoT(사물인터넷) 분야 개발도 담당했다. 지금은 링크드인에서 머신러닝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링크드인이 워낙 데이터 기술력이 뛰어난 곳이라 1년 정도 데이터 분석을 연구하는 중이다."

―링크드인 입사를 결정한 이유는

"다른 유명 회사에서 오퍼도 받았다. 링크드인 창업자이자 대표인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철학에 끌려 입사를 결정했다. 그가 가진 기업 경영 원칙을 컨페션 리더십(Compassionate leadership)이라고 부르는데,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보고 공감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이르는 말이다.

(편집자주: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의 또 다른 명언 중 하나는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떨어지는 동안 비행기를 조립하라"다. 세상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덧붙여 플랜B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그는 삶 자체가 언제 어떻게 서비스 내용이 바뀔지 모르는 ‘베타 테스트’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투자한 페이스북과 에어비앤비 등 IT기업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

―다양한 업무를 거쳤다. 비결은

"변화하는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는게 실리콘밸리에서 성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나는 남들보다 코딩을 늦게 시작했다. 학부 전공이 기계공학이니까. 그럼에도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바일 앱 개발을 남들보다 빨리 해 본 경험 덕분이다. 사물인터넷도 처음 등장했을 때 시작했다.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지만 실리콘밸리라는 환경은 기술 습득이 느리면 도태되는 곳이기도 하다.

첫 회사였던 지리움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내가 뭘 하더라도 회사는 말리지 않았다. 비결 아닌 비결이다. 작은 회사다보니 SW 엔지니어가 없었고 내가 SW 개발을 해보겠다고 해도 알아서 하라고 말리지 않았던 것 같다.

기계공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내 동기들은 보잉이나 포드 같은 전통 제조업 기업에서 일한다. 근황을 물어보면 지금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를 한다. 사실 전통 제조업 기업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하이테크 분야가 아니다. 규모가 큰 회사는 직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큰 회사에 들어갔다면 나도 자유롭게 엔터테인먼트 분야 SW를 만들어 볼 기회가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창업 후 다시 회사에 입사한 이력이 특이하다. 한국에선 그런 경우 ‘또 나가는거 아니냐’는 안좋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게 실리콘밸리 특징이기도 하다. 인텔과 이베이 그리고 창업 경험을 통해 배운게 많다. 배운 스킬을 링크드인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한 유튜버가 회사에서 못하게 막는 바람에 결국 유튜브 채널 운영을 접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에 달린 댓글이 인상적이었다. 직원이 유튜브 채널을 별도로 운영하면서 마케팅 분야에서 배우는 게 많아 회사에 적용할 수 있었을 텐데 유능한 마케터가 될 수 있는 싹을 잘라버렸다는 비판이었다.

미국 전체 평균 근속 기간은 4.2년에 불과하다. 직원이 5년 이상 머무르는 회사는 흔치 않다. 그리고 실리콘밸리는 위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줄 안다. 한번 창업했다가 실패한 사람도 회사에서 받아줄 수 있다. 포용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는 창업 경험을 ‘어떻게 회사 시스템에 녹이고 기여하도록 할까’를 고민한다."

박기상 링크드인 엔지니어가 3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링크드인 사무실에서 IT조선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IT조선
―미국은 퇴사도 잦고 해고도 쉽다. 해고되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다른 곳으로 이직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미국은 노동 유연성이 높다. 해고자를 좋게 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퍼포먼스가 좋지 않아 회사에서 해고됐다는 이유로 직원을 평가하지 않는다. 지원자는 왜 자기가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없었는지 설명할 기회를 갖는다."

―한국에선 실리콘밸리를 혁신 공간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런가. 실리콘밸리가 한국과 다른 점은

"꼭 어느 한 곳과 실리콘밸리를 비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미국만 놓고 설명하겠다. 사실 미국도 큰 변화가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 기존 대기업 중심 질서를 스타트업이 못 뚫는다.

실리콘밸리 힘은 래디컬(Radical)하고 크리에이티브(Creative)한, 다소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이 존중받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대체육을 개발해 인기를 모은 푸드테크 스타트업 임파서블푸드(impassible food)가 대표 사례다. 안정 지향적인 사고에 따랐다면 햄버거를 맛있게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는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넣고 소스에 다른 향을 첨가한다 정도일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그걸 넘어 식물성 재료로 고기를 아예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거다. 같은 미국이라도 동부 지방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신사업 규제가 적어 창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미국이 꼭 규제가 없다고 볼 순 없다. 다만 미국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테스트베드(Testbed, 신기술 시험무대)다. 미국 내 50개 주가 각기 다른 법을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이 금지된 주는 피하되, 금지되지 않은 주를 중심으로 신규 사업을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모빌리티 분야만 놓고 봐도 주마다 상황이 다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라임 등 마이크로 모빌리티가 금지돼 있다. 다른 곳에서는 허용된다. 어떤 주에서는 우버가 불법이지만 뉴욕은 합법이다. 우버가 뉴욕에서 서비스를 운영한 후 데이터를 확보해 택시 수가 줄어들거나 기존 택시기사가 우버로 바꿨을 경우 매출 차이가 있는지 등 각종 실험을 해보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은 중앙집권적 행정 시스템이라 좀 다르다. 아예 한국 전체에서 금지되거나, 전국에 허용된다. 그래서 규제 문제가 더 많이 언급되는 것 같다."

링크드인 사무실에는 곳곳에 직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IT조선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공유경제는 어떻게 보나. 우버는 여전히 지속 가능성 논란이 있는 것 같다

"공유경제 모델을 가진 회사가 재무적으로 건강하냐는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이미 성공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분명한건 이용자가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우버는 이용자 수요에 정확하게 부응하고 있다. 적어도 우버가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인지에 대한 논란은 이미 끝난 것 같다."

―실리콘밸리 혁신 비결은 세계에서 모인 인재도 한몫하는 것 같다

"맞다.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실험하려면 인력과 투자금이 필요한데, 실리콘밸리는 이 모든 걸 갖췄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모든 인재를 빠르게 끌어들이는 생태계다. 옆 회사에 잘하는 개발자 몇 명 불러오면 되니까.(웃음) 물론 투자 생태계도 잘 갖춰졌다. 이런 말도 안 되게 우월한 실리콘밸리 창업 환경은 어느 곳도 쉽게 따라하기 힘들다.

요즘 원격근무가 ‘탈(脫) 실리콘밸리'라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슬랙(slack)이나 줌(zoom) 같은 협력 툴로 근무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된 덕분이다. 굳이 실리콘밸리에 거주하지 않아도 된다.

SW 회사 인비전(Invision)이 대표적이다. 사무실 하나 없이 8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전부 원격으로 근무한다. 그러다 보니 꼭 실리콘밸리에 위치해야만 유리해지는 창업 환경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

― 실리콘밸리 기업은 한국보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가졌다고 하는데

"실리콘밸리 기업이라고 꼭 수평적이지는 않다. 몇몇 회사는 대표 한 사람이 주식 다수를 보유하고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나.

다만 실리콘밸리 기업 특징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하는 구조다. 특히 최근 설립된 회사일수록 사내 데이터에 모두 직원이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렸다. 그만큼 모두 같은 데이터를 보고 의견을 낼 수 있다. 때문에 결정 과정이 평등하고 투명한 것이다. 감이나 추측에 의해, 혹은 위계질서에 기반해 결정하는 문화는 지양한다."

―실리콘밸리 내 한인 커뮤니티 ‘K-그룹’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K-그룹을 소개해달라

"실리콘밸리에 속한 기업에 근무하는 IT분야 한국인 5000명이 활동하고 있다. 디자이너도 있고 금융업 종사자도 있다. K그룹 목표는 교류를 통해 각자 역량을 키우는 기회를 만들고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실리콘밸리는 극단적인 다양성이다. 세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실험을 해보는, 극단적인 다양성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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