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1987년작 로봇 애니메이션 ‘기갑전기 드라고나(機甲戦記ドラグナー)’는 선라이즈가 ‘기동전사 건담 더블제타(ZZ)’ 이후 선보인 작품이다.

감독은 ‘칸다 타카유키(神田武幸)’다. 칸다 감독은 1983년작 로봇 애니메이션 ‘은하표류 바이팜(銀河漂流バイファム)’을 만든 인물이다.

기갑전기 드라고나 애니메이션 한장면. / 아마존재팬 갈무리
기갑전기 드라고나 애니메이션 한장면. / 아마존재팬 갈무리
드라고나는 가상의 2087년 달에서 탄생된 군사정권 국가 ‘기가노스 제국'이 지구로부터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하고, 이로 인해 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가노스는 로봇 ‘메탈아머'(MA)를 강력한 병기를 앞세워 지구의 70% 점령에 성공한다.

기가노스의 침공이 계속되는 와중 우주 콜로니 ‘아르카드'의 주민 ‘켄 와카바', ‘탑 오세아노', ‘라이트 뉴먼' 등 세 명의 소년은 기가노스 군대에 쫓기던 중 신형 메탈아머 ‘드라고나(D병기)’에 탑승하고 만다. 드라고나 정규 파일럿으로 등록돼 버린 소년은 로봇을 조종해 기가노스 군을 격퇴하고, 이로 인해 지구 연합군에 징용돼 기가노스 제국군과 싸움을 이어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갑전기 드라고나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 / 유튜브 제공

◇ 시들해진 건담 인기 되살리기 위해 탄생된 ‘드라고나'

드라고나는 건담ZZ 이후 선라이즈가 ‘건담 시리즈 리뉴얼'을 목적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일본 매체 닛케이에 따르면 1986년작 건담ZZ는 TV 방영 당시 관동 기준 평균시청률 6.02%을 기록했다. 전작인 제타(Z) 건담의 관동 6.4%, 나고야 12.3%보다 낮은 수치다. 건담 핵심 상품인 ‘프라모델’도 전작인 Z건담의 경우 시장 상승세 속에 호조를 보인 반면, 건담ZZ는 판매 정체를 보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공업통계 자료에 따르면 일본 프라모델 시장은 1980년 촉발된 건담 프라모델 붐으로 1980년 100억엔(1085억원)에서 1985년 연간 300억엔(3255억원) 규모로 수직 상승곡선을 그린다. 하지만, Z건담이 나온 1985년까지 상승곡선을 그렸던 시장 그래프는 1986년 건담ZZ의 등장과 함께 정체 곡선을 보인다.

선라이즈와 스폰서인 반다이는 건담ZZ 이후 건담 시리즈 인기 정체 현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갑전기 드라고나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기갑전기 드라고나 일러스트. / 야후재팬 갈무리
‘이노우에 코우이치(井上幸一)’ 선라이즈 기획실 실장은 "드라고나는 건담ZZ 이후 건담 붐이 사그러든 건담 시리즈를 재탄생시킨다는 컨셉으로 기획이 진행됐다"며 "칸다 감독이 제안한 바이팜 시리즈 주인공 소년·소녀보다 좀 더 큰 소년이 신병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기획안을 채용했다"고 서적 그레이트 메카닉스7을 통해 밝혔다.

반다이 프라모델 상품도 드라고나를 기점으로 여러가지 색상의 부품을 한번에 사출하는 ‘성형 기술’과 로봇 모형의 다채로운 포즈를 유지시키는 ‘폴리캡' 등 품질을 한층 더 높이게된다.

1980년대 당시 반다이가 출간한 상품 홍보지 ‘모형정보(模型情報)’에 따르면 드라고나는 방영 전 ‘캬바리아 전기 그란다스트(キャバリアー戦記グランダスト)’, ‘아공전기 그란다르스(亜空戦記グランダルス)’ 등으로 소개됐다. 일본 모형 업계에 따르면 당시 반다이는 신작 정보를 숨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정보를 흘려보낸 것이다.

드라고나 프라모델은 애니메이션 방송 당시 144분의 1스케일로 제작돼 판매됐다. 이는 당시 건담 프라모델 시리즈의 기본 스케일과 같다. 가격은 500엔(5400원)쯤으로 판매 수 상승을 목적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한국에서는 아카데미과학을 통해 카피 프라모델이 소개됐다.

기갑전기 드라고나 D1 커스텀 액션 피규어. / 아마존재팬 갈무리
기갑전기 드라고나 D1 커스텀 액션 피규어. / 아마존재팬 갈무리
건담 메카닉 디자이너인 ‘오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는 "드라고나 프라모델은 당시 많이 팔리지 않았다"고 2013년 크리에이터즈 토크 서밋을 통해 밝힌 바 있다.

기갑전기 드라고나 컴플리트 아트웍스 표지. / 아마존재팬 갈무리
기갑전기 드라고나 컴플리트 아트웍스 표지. / 아마존재팬 갈무리
드라고나 애니메이션은 총 48화 분량이 제작됐다. 건담 시리즈가 ‘전쟁과 죽음' 등 무거운 이야기를 다룬 반면 드라고나는 같은 전쟁 테마를 사용했지만 주요 인물의 개그를 이용해 작품을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 갔다.

드라고나에 대한 애니메이션 팬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방영 중반 모형 상품 매출 부진으로 주인공 기체인 드라고나보다 적 캐릭터 ‘마이요 플라토'가 조종하는 ‘팔켄'이 더 부각된 탓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은 드라고나를 ‘푸른매 전기 팔켄'이라 부르며 조롱한다.

작품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피하는 오오카와라도 현지 매체를 통해 "드라고나는 제작진은 실력파지만, 어떤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는 작품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드라고나는 애니메이션 방영 당시 곧바로 비디오 소프트웨어로 제작돼지 않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따르면 DVD가 보급되던 1990년대 후반 레이저디스크(LD)로 뒤늦게 출시됐지만 DVD 인기에 가려 판매 수는 저조했다.

드라고나는 이후 게임 ‘슈퍼로봇대전A’를 통해 등장해 재조명 받았고, 이를 계기로 2005년 DVD박스로 판매됐다.

드라고나 팀 메탈아머. / 야후재팬 갈무리
드라고나 팀 메탈아머. / 야후재팬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