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달 탐사 사업이 삐거덕댄다. 달 탐사선 설계 변경을 놓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내부 갈등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주무부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제대로 관리를 못해 발생한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11일 항우연 등에 따르면 한국의 달 탐사 사업이 표류 중이다.. 한국은 2020년 달에 궤도선(달 주위를 도는 우주선)을 보내고 2030년 달 착륙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설계가 확정되지 않아 일정 지연이 불가피하다. 현재 사업 지연으로 1개 발사체를 공동 추진하는 미국항공우주연구원(NASA)이 독촉을 할 정도다.

최근 책임자들이 설계 변경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까닭에 사업이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항우연 노조는 10일 오후 성명서 통해 달 탐사 사업 관련해 연구현장에서 문제제기가 된 지 1년이 넘도록 아무런 조치나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자 모두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다.

. / 항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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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탐사 사업과 관련된 기존의 사업추진위·사업점검위·전담평가단·점검평가단 등을 모두 해산하고,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해외 전문가를 주축으로 하는 평가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3월 달 탐사 소속 연구원들은 사업단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연서명까지 했다.

◇ 항우연 노조 "설계 변경하거나 임무를 변경하거나"

노조 측은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묵살한 책임자들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조에 따르면 6개의 탑재체를 싣고 1년간 달 궤도를 도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총 중량 550㎏, 연료탱크 260ℓ라는 기존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 중량을 늘리면 연료탱크 역시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중량이나 연료탱크 크기를 그대로 가져가려면 임무 수행 기간을 1년에서 4~5개월 줄이든지 선택이 필요하다.

신명호 노조 위원장은 "연구 현장에서 초반에 설계가 잘못 됐다는 점을 시인하고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고)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사업단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이 잘못된 판단을 고수하고 있다"며 "달궤도선 설계를 확정짓기 위해 2018년 하반기에 계획돼 있던 상세설계검토(CDR)는 여전히 시작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사업 책임자들과 과기정통부와 연구재단의 전문성과 역량 부족을 지적했다. 과기정통부와 연구재단은 사업추진위, 사업점검위, 전담평가단, 점검평가단 등을 만들어 관리해 오고 있다.

신 위원장은 "사업단장은 위성의 체계와 설계 쪽 경험이 부족한 인물이다"며 "원장 역시 감사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위성본부장과 사업 추진 지연의 책임이 있는 사업단장 등을 경질하지 못하는 등 달궤도선의 기술적 문제와 사업단의 조직적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기정통부와 연구재단을 포함하는 관리조직들도 데이터와 자료를 분석하고 기술적 판단을 내릴 전문성과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기적인 점검과 평가가 있을 때마다 현장의 연구자들이 계속해서 문제점을 전달했고, 회의록 등 기록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평가나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항우연의 한 연구원 역시 "달 탐사 사업뿐만이 아니라 기관의 신뢰와 더 나아가 존립이 달린 문제다"며 "달 궤도선조차 제대로 성공해 내지 못하면 항우연의 위상은 크게 하락할 것이다"고 말했다.

◇ 2020년 달 탐사 계획 연기 불가피

노조의 주장에 항우연 측은 소수의 주관적인 의견이라고 답했다.

유명종 항우연 위성연구본부장은 "사업단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은 대다수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1호때부터 참여한 전문가들로, 이들의 자질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다"며 "중량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며, 내부에서 이뤄지는 기술 회의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출되는데 그중에서 설계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해서 사업책임자가 무조건 수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적인 문제는 본부장이더라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으며, 담당 엔지니어들 간에 협의가 되지 않으면 본부장의 의견도 거절된다"며 "기술적인 문제를 노조에서 거론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 본부장은 CDR 지연으로 사업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는 "2018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설계 변경 필요성이 제기돼 CDR이 9개월쯤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에 예정된) 일정의 조정은 필요하다 본다"며 "총 중량은 660㎏로 변경해 진행하는 것을 오래 전부터 논의 중이며, 현재 점검평가단의 결과가 나오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항우연 측의 얘기도 들어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과기정통부 한 관계자는 "(노조 측의)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며 "계속해서 달 탐사 추진 사업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