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어달라니 훼방 놓는 중앙 정부

입력 2019.06.13 14:42

이동식 반려동물 장례차량 서비스가 규제 샌드박스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심사 위원회는 사회적 합의가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며 지자체와 업무협약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서비스 업체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심사과정 중 중앙 정부가 불법사업을 막겠다며 특별단속을 실시하고 실증 특례 취득을 ‘방해'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불법일지라도 신규 사업 혁신성을 고려해 한번 실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규제 샌드박스 본래 취지를 살리기는 커녕, 신규 사업 자체를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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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반려동물 이동식 장례서비스인 브이아이펫 등 업체 두 곳이 지난 4월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실증특례)를 신청했다. 실증특례는 안전성 등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법 제도에 특수하고 예외적인 특례조치를 적용하는 것으로, 규제 샌드박스 일환으로 실시되는 제도다.

브이아이펫은 이번 실증특례를 신청하며 화재 위험과 민원발생 소지가 적은 장소에서만 소각사업을 진행하고, 화재위험을 줄이는 설비를 구축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향후 관계부처와 지자체 등과 적극 협조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응하겠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심의 결과, 심의위원들은 ‘규제당국에 포함되는 지자체와 업무협약 등이 전제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장과 같은 혐오시설로 분류되는 사업체가 영업을 하려면 해당 지역 주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논리다.

여기에 아직 실증특례 심사가 진행 중이지만 업체들이 거는 기대는 낮다. 이미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실증특례를 신청한 업체 중 한 곳인 서동윤 브이아이펫 대표는 "이동이 가능한 장례 서비스도 실증특례로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 요구 사항이다"라며 "기존 법이 요구하는 모든 시설 조건을 다 갖췄고 더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면 그 또한 개선하겠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아직 이동식 장례 서비스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실증특례를 통과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관계부처가 사실상 이동식 장례서비스 실증특례 허용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 실증특례 심사 과정에 의견을 제시한 관계부처 중 한 곳은 농림축산식품부다.
◇ 규제 샌드박스 심사 중인데…"무허가 특별단속’ 나선 정부

업계는 농림부가 ‘사회적 합의의 미성숙과 민원제기의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브이아이펫 등 업체가 실증특례 신청을 낸 2주 후 갑자기 무허가(무등록) 반려동물 영업자 특별단속에 나선 것이다. 4월 24일 농림부가 배포한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특별단속 대상 사업에는 허가 받지 않은 동물 장묘업이 포함됐다. 농림부가 특별단속에 나서겠다고 하기 전, 이미 업체는 사회적 합의와 지자체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받고 이에 대응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실증특례 심사를 진행 중이던 이동식 장례 서비스도 ‘불법' 사업자라며 특별단속 대상이 되는 상황이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미 해당 업체와 논의를 진행하던 일부 지자체들도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것이 업체 측 주장이다.

서 대표는 "중앙부처가 불법이라며 특별단속하겠다고 나선 서비스를 어떻게 지자체가 이에 맞서 업무협약을 검토할 수 있겠냐"라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가 지나친 요건을 들어 의도적으로 신 사업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는다. 여러 지역을 이동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임에도, 지역 사회 내 반발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기 때문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실증특례 위원들이 지자체와 업무협약을 반려동물 이동식 장례 서비스 실증특례 부여 요건으로 내세운 것은 지나치다"라며 "규제 샌드박스 본연의 취지에 맞게 해당 서비스의 기술 안전성과 타당성, 사회적 효과성을 중심으로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특별단속은 매년 해오던 것이다"라며 "이동식 장례 서비스만 타깃으로 단속을 실시한 건 아니다"라며 "농림부 공식입장은 이동식 장례 서비스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다.

다만 "화재를 대비한 시설을 갖추고 대기환경 기준을 준수하는 등 각종 기준이 필요하다"며 "지역 주민과 갈등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심사 과정 중 나왔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실증특례 심의위원회 관계자는 "현재 해당 안건을 심사하고 있다"며 "그 이외에는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전했다.

◇ 규제 샌드박스 문을 두드린 이유…"명확한 법 규정 필요하다"

이동식 장례 서비스 업체들은 자사 서비스가 ‘불법'은 아니지만, 명확한 법 규정이 필요하다며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했다.

이들 업체는 반려동물이 늘어나는데 비해 장례 서비스 공급은 부족하다는 점에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농촌경제진흥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전국 574만 가구가 870만 마리의 반려동물과 지낸다. 한국농촌경제진흥원은 반려동물 사육마릿수는 2027년에는 1320만마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관련법에 따르면 죽은 반려동물을 땅에 묻을 수 없다. 동물장묘업체에 맡기거나 폐기물로 처리를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가족과 같은 존재가 폐기물로 처리된다는 점을 꾸준히 문제삼았다. 또 올해 기준 동물장묘업체는 36개에 불과하다. 이중 화장장을 갖춘 곳은 31개다.

이를 이유로 이동식 장례 서비스는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일본에선 2004년부터 이동식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가 활성화됐다. 이들 업체들은 화장 차량을 이용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반려동물 장례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동물장묘 사업을 하려면 동물보호법에 따라 정부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시설 기준도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시의 ‘동물장묘업의 시설설치 및 검사기준'에 따르면 시간당 소각능력이 25㎏ 이상인 소각장을 갖춰야 한다. 이외에도 배기가스 중 매연 농도를 링겔만비탁표 2도 이하로 유지하거나, 연소실 출구 온도는 800℃ 등을 유지해야 하는 등 각종 시설 기준을 지켜야 한다. 다만 이 기준에는 이동식 시설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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