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2월 일부 불법 인터넷 사이트 접속을 강제로 차단했는데,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가 국민의 인터넷 사용 현황을 검열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검열을 위한 차단이 아니라는 해명과 함께 향후 인터넷 규제개선에 대한 공론화 협의체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속조치로 방통위는 13일 ‘인터넷 규제개선 공론화 협의회(이하 협의회)’를 발족하고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논란이 불거진 뒤 부랴부랴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만든 셈이다.

공론화의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협의회 구성을 반기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협의회에서 논의한 결과는 2019년 말쯤에야 도출되기 때문에 그사이 여전히 불법정보 범위와 차단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또 협의회에서 합의한 내용을 방통위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운영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협의회는 주제별로 소위원회를 운영한다. 소위원회별 안건 및 구성은 전체회의 위원들 간 합의를 거쳐 구체화한다. 협의회는 12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연내 최종보고서를 제출한다.

먼저 협의회는 불법정보에 대한 규제수준과 체계를 들여다본다. 불법정보에 대한 범위 재설정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불법정보 시정요구 관련 제도개선 등에 대해 논의한다. 민간 자율심의 체계 등 자율규제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SNI 차단방식 도입 당시 사회적 논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만큼, 새로운 콘텐츠 유통 방지 방안을 도입할 경우 거쳐야 할 절차와 공론화 방법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간다.

◇ 실효성 지적받는 SNI 차단 방식, 변경될까

방통위는 2월 보안접속(https)을 활용하는 해외 불법사이트 차단을 위해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 차단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것이 논란이 됐다. SNI 필드란 이용자가 보안 접속(https)을 통해 해외 불법사이트에 접속할 때 사용하는 ‘암호화되지 않는 영역'을 말한다.

SNI가 암호화되지 않은 평문으로 전송되기 때문에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가 이를 인지하고 SNI를 통한 접속 로그를 확인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이용자가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고 활동하는지 파악하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의 인터넷 검열 가능성 의혹이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재된 ‘https 차단 정책 반대 의견’이라는 제목의 글은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결국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공개적인 답변을 해야만 했다.

이 위원장은 "검열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못 박으며 https 차단과 인터넷 검열 간 인과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인터넷 상에서 https 우회 접속 방법을 공유하는 게시글. / 네이버 포털 갈무리
인터넷 상에서 https 우회 접속 방법을 공유하는 게시글. / 네이버 포털 갈무리
방통위의 설명에도 불법정보 기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되는 중이다. 또 이용자들 사이에선 이미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https 차단을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되며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방통위는 이번 협의회를 통해 현행 기술적 조치가 적절한지 다시 검토하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등장에 따른 불법정보 유통방지 효율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협의회에서 SNI필드 차단 변경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더라도 2019년 내 이뤄질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 한 관계자는 "13일 회의는 처음 열린 것이기 때문에 안건을 구체적으로 결정하기보다는 큰 틀에서 협의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며 "2019년 말에 보고서가 제출되더라도 위원회의 검토와 합의를 거쳐야 하므로 (협의회에서 도출된 방안들이)언제 적용될 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 ‘현재의 불법성' 기준 정립 중요

SNI필드 차단 방식 적용 전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 협의회 위원은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및 유관기관 등으로 구성했다.

논의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인 ‘불법정보'의 범위 설정은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제인 만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SNI 필드 차단 방식 적용의 잠재적 적용이 가능한 사이트 또는 서비스 단위의 URL을 별도로 관리 중이다. 4월 말 기준 차단 대상만 1만3688건에 달한다.

방심위에 따르면 통신심의소위원회 5명의 위원들이 매주 2~3회 회의를 통해 불법 사이트 차단 여부를 결정한다. 방심위 위원은 대통령이 위촉한 9명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방심위가 불법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도 있다. 방심위 결정의 근거가 되는 심의 규정에 적힌 표현이 주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규정 제4조 제2항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 ‘사회통념에 대한 위해 여부' 등 문구가 대표적인 예다. 사회통념과 질서 등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경진 가천대 교수(법학과)는 "(SNI필드 차단)도입 전부터 공론화 과정을 거쳤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후에라도 만들어 다행이다"며 "10년 전 불법으로 판단됐던 정보가 지금은 아닐 수도 있으며, 반대로 10년 전 합법이었던 정보가 지금 사회 통념상 불법일 수도 있으므로, 협의회를 통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불법성’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심의 규정의 표현이 애매하기 때문에 현재 방심위에서 내리는 (불법사이트 차단여부)결정이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며 "방심위에서도 보다 명확한 근거를 들어 불법사이트의 기준을 만들어야 하고, 만약 불법정보 범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후에 (왜 이 사이트가 차단됐는지)설명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