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9년작 ‘마동왕 그랑조트(魔動王グランゾート)’는 전형적인 1980년대 소년 주인공 로봇 애니메이션에 마법과 판타지 요소를 결합했던 애니메이션이다.

마동왕 그랑조트. / 야후재팬 갈무리
마동왕 그랑조트. / 야후재팬 갈무리
한국에서는 ‘슈퍼그랑죠'란 이름으로 소개됐으며, TV가 아닌 비디오테잎으로 콘텐츠가 유통됐다. 1991년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슈퍼그랑죠는 당시 한국 어린이 사이서 드래곤볼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슈퍼그량죠는 1993년 SBS를 통해 TV 방영됐다.

마동왕 그랑조트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 / 유튜브 제공

마동왕 그랑조트는 ‘건담' 시리즈 제작사로 유명한 선라이즈가 제작했다. 선라이즈는 그랑조트 보다 1년 앞서 ‘마신영웅전 와타루(魔神英雄伝ワタル)’를 선보였다. 와타루와 그랑조트는 로봇에 판타지를 결합했다는 점, 로봇이 3등신에 가깝다는 점 등 공통점이 많다.

그랑조트 보다 1년 앞서 등장한 ‘마신영웅전 와타루'. / 야후재팬 갈무리
그랑조트 보다 1년 앞서 등장한 ‘마신영웅전 와타루'. / 야후재팬 갈무리
닮은꼴 애니메이션 마신영웅전 와타루가 그랑조트 보다 1년 앞선 까닭일까. 일본에서는 그랑조트는 와타루와 비교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평가다.

실제로 와타루의 경우 1988년 첫 번째 TV 애니메이션이 45화 분량, 1990년 후속작인 ‘와타루2’가 46화 분량, 1997년 세 번째 시리즈작인 ‘초마신영웅전 와타루'가 51화 분량이 제작됐다.

와타루는 TV애니메이션 외에도 비디오테잎과 레이저디스크(LD)로 콘텐츠가 유통되는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형태로 1989년 ‘진(真) 마신영웅전 와타루', 1990년 ‘마신영웅전 와타루 창계산(創界山·소우카이잔)영웅전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마신영웅전 와타루 끝없는 시간 이야기(終わりなき時の物語) 3편이 만들어졌다.

반면, 그랑조트 애니메이션은 전체 41화 분량의 TV판과 1990년과 1992년 크게 2편, 총 5화 분량의 OVA 콘텐츠가 전부다.

마동왕 그랑조트 일러스트. / 선라이즈 제공
마동왕 그랑조트 일러스트. / 선라이즈 제공
TV시청률로 따지면 와타루와 그랑조트는 비슷하다. 1989년 니혼TV 프로그램 시청률 조사 기록에 따르면 와타루는 당시 최대 7.7%의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그랑조트는 와타루 대비 1% 더 높은 8.5%를 보였다.

일본과 분위기와는 반대로 한국에서는 그랑조트가 와타루 보다 인기가 더 높았다는 것이 당시 애니메이션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던 마니아들의 목소리다.

와타루가 한국에서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에서다. 1980년대 한국은 일본 콘텐츠 수입을 금지했으며, 당시 정부 역시 앞장서서 일본 문화를 배척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바 있다.

그랑조트는 2014년 애니메이션 탄생 25주년을 기념해 블루레이디스크 박스가 정가 기준 4만엔(43만원)에 출시됐다. 박스에는 TV판 41화와 OVA판 5화가 모두 담겼다.

마동왕 그랑조트 25주년 기념 일러스트. / 선라이즈 제공
마동왕 그랑조트 25주년 기념 일러스트. / 선라이즈 제공
◇ 그랑조트와 와타루는 주요 제작자가 같아

그랑조트 애니메이션 원작자는 게임 ‘천외마경'과 ‘사쿠라대전'으로 유명한 ‘히로이 오지(広井王子)’다.

고등학생 시절 영화 감독을 꿈 꾸던 청년 히로이는 1980년대 후반 식품회사 롯데의 식품+장난감 상품인 ‘네크로스 요새' 기획을 맡은 계기로 1988년작 ‘마신영웅전 와타루' 원작 작가로서 콘텐츠 업계에 데뷔한다.

일본 게임 업계에 따르면 와타루로 애니메이션 업계 인지도를 쌓은 히로이는 당시 홋카이도 삿포로시에 위치했던 게임 제작사 허드슨에 방문한다. 와타루 소재 게임 제작으로 애니메이션 제작 자금을 지원했던 허드슨은 히로이를 회사 내에 가두고 철저하게 게임의 특징과 장점을 교육시켜, 그대로 게임 ‘천외마경' 제작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드슨의 롤플레잉게임 ‘천외마경' 시리즈는 두 번째 작품 ‘천외마경2 만지마루'로 초대형 히트 콘텐츠로 떠오른다. 천외마경2는 게임기 피씨엔진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그랑조트 원작자 ‘히로이 오지'의 게임 대표작 ‘천외마경2’. / 야후재팬 갈무리
그랑조트 원작자 ‘히로이 오지'의 게임 대표작 ‘천외마경2’. / 야후재팬 갈무리
히로이의 천외마경 시리즈 성공은 게임 제작사 세가(SEGA)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쿠라대전' 시리즈로 이어진다. 히로이는 사쿠라대전 원작자로 게임을 성공시킨 뒤 게임 성우를 활용한 뮤지컬 무대 연출자로 변신한다.

재미난 점은 그랑조트 원작 작가 히로이 오지가 마신영웅전 와타루도 만들었다는 것이다. 원작자 히로이 외에도 그랑조트 감독 ‘이우치 슈우지(井内秀治)’ 역시 와타루 제작 감독을 맡은 바 있다.

각본가 겸 애니메이션 감독이던 이우치는 1988년 ‘마신영웅전 와타루', 1989년 ‘마동왕 그랑조트', 1992년작 ‘엄마는 초등학교 4학년생', 1994년작 ‘야마토 타케루', 2001년 ‘격투 크래시기어 터보' 등의 작품을 총감독 자리에 앉아 제작했다.

이우치는 2016년작 애니메이션 ‘소년 아시베 고고 고마쨩' 콘티 작업을 마지막으로 향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스토리는 전형적인 소년 SF판타지 애니메이션

마동왕 그랑조트는 달 여행이 당연해진 미래를 무대로 지구에 살고 있던 초등학교 5학년 주인공 ‘하루카 다이치(遥大地)’와 친구들의 모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마동왕 그랑조트 한장면. / 훌루 갈무리
마동왕 그랑조트 한장면. / 훌루 갈무리
애니메이션은 2050년 달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달에 공기와 물이 생기고 중력이 발생해, 인류가 달로 이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달 지진으로 부터 반세기가 흐른 2100년 주인공 다이치는 마을 상점가에서 이벤트에 당첨돼 달 여행을 떠난다. 달에 도착한 다이치는 오르골 소리와 함께 나타난 귀가 긴 토끼인간 소녀 ‘구리구리'와 만나고, 토키인간과 적대관계에 있는 아동족(邪動族)의 공격을 받은 주인공이 마동왕 그랑조트를 소환한다는 내용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마동왕 그랑조트 일러스트. / 반다이채널 갈무리
마동왕 그랑조트 일러스트. / 반다이채널 갈무리
그랑조트를 소환한 다이치는 이후 카스, 라비 등 2명의 마동전사를 동료로 맞이해 아동제국의 손아귀에 든 달 지하세계 라비루나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성지(聖地) 루나를 향해 모험을 펼친다.

◇ 마법으로 움직이는 마동왕(마도킹) 로봇

마동왕 그랑조트는 마력의 원천인 땅과 불을 중심으로 한 마동력(魔動力) 움직이는 로봇이다. 로봇은 마동총이 대지에 그리는 마법진을 통해 소환된다. 로봇은 3등신 로봇 모양의 ‘배틀 모드', 얼굴 형태의 ‘페이스 모드'로 각각 변신이 가능하며, 배틀 모드에서의 크기는 높이 기준 8미터, 페이스 모드는 높이 5미터다.

슈퍼 그랑조트 액션 피규어. / 반다이 스피리츠 제공
슈퍼 그랑조트 액션 피규어. / 반다이 스피리츠 제공
동료 카스의 경우 ‘바람' 마동력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윈저트', 라비는 ‘물’의 마동력으로 움직이는 ‘아쿠아비트'를 조종한다.

주인공 로봇 기체 그랑조트는 ‘슈퍼 그랑조트'와 OVA에서 등장했던 최종 업그레이드 형태인 ‘하이퍼 그랑조트'로 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와타루와 마찬가지로 게임의 레벨업 요소를 애니메이션 로봇 캐릭터에 적용시킨 셈이다.

참고로, 애니메이션 설정에 따르면 마동왕에 탑승할 수 있는 마동전사의 조건은 100미터를 5초만에 달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공 다이치는 제트보드를 이용해 마동전사 조건을 충족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