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초기 스타트업 기업 대상 투자 제도인 세이프(SAFE·Simple Agreement for Future Equity, 조건부 지분인수계약) 적용을 적극 추진한다. 관련업계는 세이프가 국내에 제대로 정착해 초기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을 기울인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중기부 제공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중기부 제공
24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7월 중 국내서도 세이프 투자를 받은 초기 스타트업이 등장할 전망이다. 중기부와 한국엑셀러레이터협회 등이 세이프 국내 적용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기부 지원 하에 기업과 투자자 간 계약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앞서 정부는 세이프 확산에 힘을 싣기 위해 3월 제2 벤처붐 확산 전략을 공개하고 세이프 도입 방침을 밝혔다.

세이프는 기업가치를 투자 시점에 정하지 않고, 후속 투자 때 가치를 평가받는 제도다. 투자자는 후속 조치 이후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 이는 초기 스타트업은 초반에는 실적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표가 없어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그 동안은 초반에 투자가 시급한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가 절실하다는 이유로 투자자에게 지나치게 높은 지분을 책정해 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이프는 우선 투자를 받고 추후 기업 가치 산정이 가능할 때 주식으로 전환해 제공한다. 이를 이유로 투자자에게 많은 지분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세이프 제도 활용이 활발하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엑셀러레이터 회사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세이프를 잘 활용하기로 유명하다. 와이콤비네이터는 드롭박스와 에어비엔비, 한국 미미박스 등에 투자해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세이프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이프는 상법 상 채권과 그나마 유사하다. 그렇다고 기존 채권 관련 법을 적용하기에도 애매하다. 세이프는 기존 채권과 달리 부채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세이프 제도를 명문화한 내용이 포함된 벤처투자촉진법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 금융관계법 충돌…관건은 명확한 법 마련

중기부는 관련 고시를 개정하고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세이프를 먼저 시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기부 관계자는 "현재 엑셀러레이터에 한해 세이프 투자가 가능하도록 관련 고시를 개정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세이프를 국내 안착시킬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세이프가 국내서 정착하기 위해선 선결 과제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존 금융법과 충돌 여지가 남아있다. 고시 개정이 아닌 벤처투자촉진법이 뒷받침돼야 법 해석의 모호성을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엑셀러레이터협회 관계자는 "금융분야 전문투자사는 금융관계법에 따라 세이프를 이용할 수 없다"며 "향후 세이프 제도가 생태계 전반에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법 문제를 명확히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세이프 제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위험성 때문이다. 세이프를 통해 초기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 후속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세이프 투자자에게 지분 보상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환사채(CB) 등 기존 채권과 달리 상환의무가 없다. 그만큼 원금을 날릴 가능성도 커진다. 업계에서는 초기 스타트업이 시리즈A 단계 이후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할 확률을 20% 내로 본다. 이는 세이프 확산을 지원하려는 중기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에도 업계 반응이 미지근한 이유기도 하다.

엑셀러레이터 업계 한 관계자는 "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이라 다들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라며 "세이프 첫 사례 기업이 어떤 계약조건으로 시작해 투자를 성사시키느냐가 향후 제도 확산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