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규어 최초 한국인 디자이너, 박지영…비결은 '낯설게 보기'

입력 2019.06.25 13:48 | 수정 2019.06.26 09:40

"영국인들은 디자인 자부심이 강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접근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영국인이 보는 재규어와 다른 의견을 낼 때 이들은 거부감을 표현하기보다 신선하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규어는 아름다운 고성능차(Beautiful Fast Car)를 표방하는 고급 영국 자동차 브랜드다. 007 시리즈 등 영국색이 강한 영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로도 잘 알려져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자동차 애호가도, 영국인도 아니었다는 박지영 씨가 재규어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쉽지 않았겠다는 질문을 던졌다. 박 씨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경직된 사고방식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재규어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오히려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대화에서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박지영 재규어 어드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박지영씨는 영국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 최초 아시아 여성 외장 디자이너다. 영국왕립예술학교(RCA)를 졸업한 후 2014년 재규어 어드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Advanced Design Studio)의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어드밴스드 디자인 팀에서 컨셉트카 프로젝트와 미래의 재규어 디자인 컨셉 개발을 해왔으며,
입사한지 3년만에 리드 익스테리어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전통을 중시 여기는 영국 자동차 업계의 관행 상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 재규어 디자인의 핵심,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

박지영 디자이너는 재규어 디자인을 ‘시간을 이기는 아름다움'으로 설명했다. 차가 처음 나온 순간에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멋진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재규어의 핵심 가치라는 것. 박 씨는 재규어 디자인 철학을 ▲완벽한 비례(proportion) ▲보는 순간 마음에 자리 잡는 감성적 아우라 ▲순수함이 갖는 미학 등으로 정의했다. 또 시간이 흐르며 부분적인 디자인 변화가 있겠지만, 이 세 가지 철학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는 "각 시대에 맞는 트렌드, 법률적·기술적 제약 때문에 같은 브랜드여도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기도 하고, 같은 시대에 다른 브랜드 자동차들이 비슷한 모습을 띄는 일이 종종 있다"며 "적어도 재규어는 현재의 유행을 쫓기보다 오래 두고 보아도 아름다운 자동차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표현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재규어 디자인 조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1999년부터 재규어 디자인을 이끌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안 칼럼이 이달 초 회사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재규어 선행디자인 총괄 디렉터 줄리안 톰슨이 이어받게 된 것. 박지영 디자이너는 디자인 수장의 교체로 재규어의 모습이 달라질 순 있지만, 역시 브랜드 본연의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안 칼럼이 도전을 즐기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였다면, 줄리안 톰슨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잘 알면서도 도전에 두려움이 없다"라며 "성향이 다른 디자이너로 수장이 교체되었지만,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재규어만의 가치를 이어간다는 전통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디자이너에게 도전이자 기회

자동차 시장은 100년 이상 사람이 운전대를 잡는 내연기관차가 주도해왔다. 그러나 친환경성을 앞세운 전기차가 빠르게 세를 넓혀가고, 자율주행차도 상용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급격한 변화는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전기차의 경우 커다란 엔진이라는 제약이 없어진 만큼 기존에 없던 실루엣과 비례감을 표현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는 속도감을 살리는 조형보다 실내 공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그는 전망했다.

박지영 디자이너와 재규어 최초 배터리전기차(BEV) I-페이스. /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제공
박지영 디자이너는 "겉에서 보기에 전기차와 내연기관차의 차이가 적을 수 있지만, 엔진이라는 제약이 있을 때 전면부를 단 1㎜ 늘리기도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기차 시대는) 디자이너가 더 많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근 국내 출시한 전기차 I-페이스의 경우 기존 재규어 세단과 다른 비례를 보여주는데,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방법으로 재규어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성공적인 사례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지금보다 조금은 지루한 디자인이 주를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박 디자이너는 시인했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많은 고민이 있다는 전언이다. 기존 자동차 디자인 언어보다 건축 디자인과 유사한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동차 디자인은 내가 운전하는 재미, 속도가 주는 짜릿함 등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했다"라며 "자율주행차는 탑승객이 운전하지 않고 실내에 머물기 때문에 ‘내가 이 차 안에 머물고 싶다' ‘이 차의 실내는 어떤 구조일까' 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 재규어 디자인 어워드, 한국 대학생들의 창의성 기대

박지영 디자이너는 올해로 4회를 맞은 재규어 카디자인 어워드의 사전설명회를 위해 방한했다. 재규어 디자인 가치를 공유하고, 차세대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는 공모전이다. 앞서 세 번의 공모전을 통해 본인과 동료 디자이너들은 재규어에 대한 젊은 학생들의 신선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어 큰 자극이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미래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물었다.

"이미 완성된 제품, 완성된 환경을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자동차 트렌드와 자동차 산업환경에 적합한 디자인은 이미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오히려 미래 자동차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이고, 새로운 환경 속에 어떤 자동차 디자인이 필요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창의적으로 생각을 펼칠수도 있고, 작업하기도 훨씬 즐거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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