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특례 적용을 둘러싸고 IT업계와 정부가 첨예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업계는 블록체인 등 기술특성 상 사업화 과정에서 기존 제도가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부는 무조건 기술의 사업화에 장애가 된다고 규제를 무조건 풀 수는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중소벤처기업부는 8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규제자유특구 쟁점규제인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박영선 중기부 장관을 비롯해 행정안전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 등 전문가, 사업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8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규제자유특구 쟁점규제인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IT조선
중소벤처기업부는 8일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규제자유특구 쟁점규제인 개인정보보호 이슈에 대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IT조선
◇ "규제자유특구에서 자유는 빠지고 규제만 남을 것"

이날 포럼에서는 블록체인 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을 중심으로 개인정보 규제 논의가 이어졌다. 중기부는 7월 중 규제자유특구 지역 선정을 앞두고 있어서다. 부산과 세종시는 각각 4월 블록체인과 자율주행 기술 규제자유특구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상황이다.

규제자유특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신기술에 기반을 둔 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핵심 규제들을 패키지로 완화해주는 제도다. 규제자유특구에서는 201개 메뉴판식 규제 특례를 적용한다. 관련 법령이 없거나 기존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맞지 않으면 임시허가 등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해 신사업을 검증하거나 제품 출시도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규제자유특구 지정 시 개인정보 보호법 규제특례 적용을 보다 포괄적으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최화인 한국블록체인협회 블록체인캠퍼스 학장은 현재 개인정보보호법을 예외없이 부산 규제자유특구 지역에 그대로 적용하면 사실상 ‘블록체인 없는 블록체인 사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았다.

최 학장은 일반 데이터와 블록체인 데이터 형식 차이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현재 신용정보법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개인신용정보 보유목적이 달성되거나 보유기간이 경과되면 개인신용정보를 즉시 삭제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 기록이 사슬처럼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블록체인에서 정보 삭제는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를 발생시킬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 시스템은 분산원장 방식으로 기록을 저장하기 때문에 참여한 모든 기관이 같은 정보를 동시에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신용정보법에 따르면, 하나의 서비스에 신규 금융기관이 추가돼 이용자 정보를 공유하게 될 때마다 이용자에게 정보제공 동의를 매번 받아야 한다.

최화인 한국블록체인협회 블록체인캠퍼스 학장은 해결 방법으로 ▲정보 제공동의를 사전 포괄동의 방식으로 완화해줄 것 ▲개인정보 삭제 개념을 초기화 또는 덮어쓰기 등으로 확대해줄 것 등을 제시했다. 최 학장은 "이러한 규제특례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에는 자유가 빠지고 규제만 남은 특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자동차에도 개인정보 이슈가 걸려있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에서 의도치 않게 다른 자동차 번호판과 보행자 얼굴 이미지를 수집하게 되기 때문이다. 수집된 이미지가 위치정보와 결합되면 특정 인물과 차량이 언제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위치정보가 된다.

하지만 현재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수집하는 데이터를 자동으로 비식별화하는 기술은 부족하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비식별화 처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손주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시속 60㎞로 주행하며 333일 동안 10만㎞ 길이의 영상 데이터를 비식별화하는데 드는 비용은 총 1800억원으로 추산된다.

손 연구원은 "자율주행자동차는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교통체증을 방지할 수 있는 등 공공 이익의 목적이 크다"며 "자율주행 기술이 수집하는 도로영상 이미지는 개인정보 보호 규정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개인정보보호법 규제특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서는 이유는 우리나라 법제 특징 때문이다. 고환경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위반하면 민사 책임만 지게 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사업자가 형사처벌까지 함께 받게 하고있다"고 설명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8일 오전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규제자유특구 개인정보 전문가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IT조선
박영선 중기부 장관이 8일 오전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규제자유특구 개인정보 전문가 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IT조선
◇ "당장 규제특구에 특례지정은 곤란"

다만 이날 포럼에서 나온 업계 제안에 정부 관계자들은 당장 규제특례까지 적용하기는 곤란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특히 블록체인은 아직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한진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 금융데이터정책과장은 "개인정보 사전 포괄동의 문제는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문제이므로 행정당국이 규제특례로 일시적으로 허용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현재 계류 중인 데이터3법 등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기술이 사회적으로 수용될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에 시행령 마련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 관계자들은 특구에서 시행하려는 사업 대다수가 블록체인 기술을 쓰지 않고도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현행 법규가 소비자 보호를 목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달성하려는 혁신성이 소비자 보호를 근간에 둔 법을 고쳐야할만큼 충분히 편익이 크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하인호 행정안전부 전자정부국 개인정보보호정책과장은 "많은 블록체인 기반 사업을 살펴보면 이 사업을 꼭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저 개인정보보호법이 블록체인과 맞지 않는다고 없애는건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설사 규제특례를 인정한다하더라도, 블록체인 사업으로 달성하려는 혁신성이 다른 방법으로는 이루기 힘든 것인지, 그 블록체인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은 없을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규제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조정하는 국회의 임무다"라고 전했다.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 "어떤 기술과 관련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서 현행 제도를 개선할 수는 없다"며 "비식별화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 법 제도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