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2019년 7월 18일 오전 10시반, 애니메이션 업계에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애니 업계의 보물’로 평가받는 쿄토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났다.
피해는 심각하다. 19일 23시 기준 사망자 수는 34명으로 늘었다. 34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현지 경찰당국에 따르면 불이 났을 당시 스튜디오 건물에는 74명이 있었다. 사망자는 남성이 13명, 여성이 20명, 성별확인이 어려운 사람이 1명으로 파악됐다. 마이니치 신문은 이번 방화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는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중 최악이라고 전했다.
아오바 용의자는 18일 오전 10시반쯤 교토시 후지미구에 위치한 쿄토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 1층 현관으로 들어와 가솔린을 스튜디오 내부에 뿌린뒤 라이터로 불을 붙여 화재를 냈다. 용의자는 불을 붙이면서 ‘죽어!(死ね)’라고 외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당국에 따르면 아오바 용의자는 신병 확보 당시 "소설을 훔쳤기 때문에 저질렀다"라고 말했다. 또 "회사가 작품을 베꼈다. 사장을 불러 사장에게 할말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애니메이션 일을 한적도, 소설을 출판한 사실도 없다라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가 한 말의 의미를 신중하게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현지 소방당국에 따르면 스튜디오 현장은 입구를 봉쇄하면 탈출하기 어렵고 애니메이션 제작 현장인 만큼 종이가 많아 불이 빨리 번졌다. 3층에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도 안쪽에서 열수 없어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망자가 발견된 장소는 1층에서 2명, 2층에서 11명,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1명, 3층 이상에서 19명이 발견됐다. 이들 사망자는 입구에서 발생된 방화로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채 옥상에 위치한 비상구로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당국에 따르면 아오바 용의자는 2012년 편의점 강도사건으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정신질환으로 인해 관련 의료기관을 이용한 이력이 있다. 용의자는 거주지에서 소음을 일으켜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핫타 히데아키(八田英明) 쿄토애니메이션 대표는 18일 현지 매체 인터뷰를 통해"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짊어지고 갈 사람의 목숨을 빼았는 행위에 분노를 느낀다"며 "영상 콘텐츠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분명히 말을 해달라. 이런 폭력행위는 절대 안된다"고 말했다.
핫타 대표에 따르면 쿄토애니메이션은 방화 사건이 일어나기 전 회사로 ‘죽어(死ね)’란 내용이 담긴 메일을 많이 받았다. 핫타 대표는 "의식적으로 주의하고 있지만 이런 큰 사건을 벌이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애니메이션 업계는 우울한 분위기
이번 방화 살인사건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동종 업계 관계자들이다. 만성적인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업무량에 따라 함께 일하거나 제작자를 공유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다.
19일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시오타 슈조’ 폴리곤픽처즈 대표도 "방화사건 소식을 들은 뒤 우울에 휩싸였다"며 침통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도 침울한 분위기는 감지됐다. 한국과 일본은 오랜기간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함께 제작해 온 만큼 양국 제작자간 관계가 깊은 편이다. 이번 방화사건 희생자 혹은 부상자 중에 한국인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은 제작자 교류가 많았던 만큼 이번 방화 사건은 충격적이다"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 1985년 창업한 쿄토애니메이션
쿄토애니메이션은 1985년 창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종업원 수는 우지시에 위치한 본사 기준 160명쯤이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쿄토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다. 스튜디오는 모두 5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회사가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한 것은 창업년도 보다 앞선 1981년부터다. 애니메이션 제작자 핫타 요코(八田陽子)가 애니메이션 제작사 무시프로덕션(虫プロダクション)에서의 업무 경험을 살려, 쿄토에서 집 주변 전업주부 여성들과 그림 작업을 시작한 것이 회사의 시작점이다. 핫타 요코는 쿄토애니메이션 전무이자, 핫타 히데아키 대표의 와이프다.
회사를 법인으로 등록한 것은 1985년부터다. 1986년부터는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일을 받아 그림을 그리는 하청업을 시작한다. 1992년에는 신에이동화로부터 수주를 받아 애니메이션 연출, 작화, 배경, 촬영 등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필요한 모든 작업을 사내 스튜디오를 통해 소화해 낸다.
이후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 건담으로 유명한 선라이즈와 ‘마법소녀 크리미마미'의 피에로, ‘독수리오형제(갓차맨)’의 타츠노코 프로덕션, ‘초중신 그라비온'의 곤조 등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함께 일했다.
하청 제작 시절 쿄토애니메이션이 참가한 작품 중에는 다수의 명작이 존재한다. 1984년 ‘마크로스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1981년 ‘시끌별 녀석들(우르세이야쯔라)’, 1982년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1987년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1988년 ‘아키라(AKIRA)’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1989년 ‘마녀 배달부 키키(마녀의 택급편)’, 1992년 ‘붉은 돼지',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 1997년 ‘마법기사 레이어스' 등의 작품에 쿄토애니메이션이 참가했다.
2002년에 들어서는 애니 ‘소울테이커'의 스핀오프 작품인 ‘너스위치 코무기짱 마지카르테'로 하청이 아닌 원청제작을 시작한다.
2005년 게임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에어(AIR)’는 완성도 높은 그림과 연출로 애니메이션 팬 사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물결 이어져
애니메이션 제작자 34명이 목숨을 앗아간 쿄토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으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은 슬픔에 잠겼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쿄토애니메이션 희생자를 추모하는 해시태그 ‘프레이 포 쿄애니(#PrayForKyoani)’가 확산 중이다.
NHK에 따르면 사고가 난 18일에만 트위터에서 260만건의 관련 해시태그가 등장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도 트위터를 통해 "사건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마음이 아프다. 쿄토애니메이션은 많은 대만인에게 청춘의 추억이기도 하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당한 분들의 회복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미국 애니메이션 콘텐츠 배급사 ‘센타이 필름웍스'는 클라우드 펀딩을 일으켜 애니메이션 팬들을 중심으로 123만달러(14억4279만원)를 모금했다.
존 레드포드 센타이 필름웍스 대표는 "뉴스를 보고 희생자를 위해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의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다가 클라우드 펀딩을 열게됐다"며 "펀딩은 놀랄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 세계 팬이 함께 연결돼 쿄토애니메이션과 제작자를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NHK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일본 애니메이션 상품 전문 기업 애니메이트도 쿄토애니메이션 희생자를 위한 모금운동에 나섰다. 애니메이트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비참한 상황에 놀라고 큰 아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애니메이션 팬들은 쿄토애니메이션 작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 아마존재팬 DVD·블루레이 판매순위에 따르면 쿄토애니메이션이 제작한 ‘리즈와 파랑새'가 2위,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3위부터 6위를 점령했다. ‘울려라 유포니엄'은 9위와 12위를 기록 중이다.
핫타 히데아키 쿄토애니메이션 대표에 따르면 이번 방화 사건으로 작업 중인 그림은 물론 과거 작품의 그림 자료와 컴퓨터에 입력된 데이터가 모두 소실됐다.
더 큰 충격은 인재 손실이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이 창작하는 콘텐츠인만큼 제작자의 사망은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어 쿄토애니메이션을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