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신방송업계 '내로남불' 흑역사 "이제 그만!"

입력 2019.08.01 11:10 | 수정 2019.08.01 11:22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 잣대를 가리키는 말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 요즘 통신방송 업계에 부쩍 많이 들린다.

인수합병(M&A)으로 유료방송시장 재편이 본격화하자 사업자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다들 경쟁사의 시장 지배력이 커질까 걱정한다. 거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점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식의 주장이 난무한다. 과거 발언을 180도 뒤집기도 한다. 누구라고 할것없이 다 똑같다.

2016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반대했던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당시 SK텔레콤이 이통3사를 견제할 알뜰폰 1위 사업자(CJ헬로)를 인수하면 알뜰폰 업계가 통신사업자에 종속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3년이 지난 지금, LG유플러스가 CJ헬로 인수를 추진한다. 그때와 달리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면 ‘메기 효과'가 일어나 활발한 경쟁을 촉진할 것이란 주장을 펼친다. 알뜰폰 시장이 달라졌다는 설명인데 그새 통신사업자에 종속될 알뜰폰업체가 왜 경쟁을 촉진할 힘있는 존재로 바뀌었는지 어리둥절하다.

SK텔레콤도 다를 바 없다. 2015년 SK텔레콤이 CJ헬로 인수를 추진할 당시 장동현 전 SK텔레콤 사장은 "우리도 KT와 KTF 합병 때 반대했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제 서로 잘하는 부분을 보고 자기 갈 길을 가자"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당시 KT와 LG유플러스의 반대를 의식한 발언이다. 4년 뒤 SK텔레콤 역시 결국 자기 갈 길만 가지 않는다. 경쟁사 갈 길에 어깃장을 놓는다.

SK텔레콤은 이통사업자의 알뜰폰 인수 시 알뜰폰 정책의 형해화(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게 됨), 이동통신시장 경쟁제한과 왜곡 등의 우려를 제기했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LG유플러스의 3년 전 반대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내로남불'에 KT도 예외는 아니다. KT는 알뜰폰 부문 독행기업(시장의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 이익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기업) 소멸과, 시장지배력 전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티브로드 인수합병시, SK텔레콤의 이동통신산업 지배력이 케이블TV 시장에 전이돼 공정한 시장 경쟁을 저해한다는 논리도 폈다. 유럽에서는 2~4위 사업자 간 인수합병도 경쟁제한성을 인정해 인수 불허 또는 사업 매각 등 구조적 조치를 인가 조건으로 부여한 다수의 사례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사진 왼쪽부터 7월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방송통신기업 인수합병 토론회'에 참석한 배한철 KT 상무, 강학주 LG유플러스 상무, 이상헌 SK텔레콤 실장. / 류은주 기자
KT가 유선사업 1위 지위가 흔들릴까 걱정할 수 있다. 합산규제 이슈에 걸려 경쟁사와 달리 M&A에 제동이 걸려 있기도 하다. 하지만 KT의 논리라면 이 회사 역시 딜라이브와 같은 다른 케이블 업체 인수 자체를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내로남불' 흑역사는 오래됐다.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의 하나로통신, KT의 스카이라이프 인수 등을 놓고 경쟁사들은 크게 반발했다. 그때 내놓은 반대논리가 나중에 다 제 발등을 찍었다.

통신사업자만 그런 게 아니다. KT가 IPTV와 위성방송을 결합한 상품을 내놓으며 점유율을 높이기 시작하자 케이블TV사업자들은 다른 IPTV 사업자와 함께 반대했다. 위성방송도 유료방송인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불공평하다고 항의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유료방송 합산규제다. 가입자 시장 점유율을 3분의1로 제한했다. 만약 이 규제가 없었다면 딜라이브는 2019년 상반기 내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았고, 채권 만기 시한이 다가오기 전 매각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때 케이블TV사업자가 통신사업자의 유료방송 M&A나 결합상품을 반대하지 않는 대신에 소유제한과 같이 케이블TV산업을 옥죈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죄다 통신사업자에게 헐값에 팔려나가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장이 변화될 때마다 사업자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그래도 스스로 내건 논리를 정면으로 뒤집는 정도까지 가는 것은 너무하다.

물론 유료방송을 육성하기는커녕 마냥 규제만 했던 정부 정책 탓이 크다. 규제만 덕지덕지 붙어 시장이 왜곡되고 사업자간 갈등이 생기면 또다른 규제를 봉합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사업자들마저 시장 파이 전체를 키우기는 것보다 당장 눈앞의 경쟁사 규제 쪽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 규제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규제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미디어 정책 당국자와 단기 실적에만 매달리는 사업자 사이에 낀 대관업무 담당자들만 괴롭다. 이들은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 내일 다시 또 말을 뒤집어야 할 판이니 자괴감까지 쌓인다.

워낙 얽히고설킨 통신방송 사업 규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방도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고쳐나갈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리는 논쟁은 도움은커녕 되레 방해만 될 뿐이다.

사업자들은 지금 펼치는 주장이 과연 미디어산업 파이와 생태계 발전을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늘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과연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정책 당국은 이처럼 건설적 논쟁이 이뤄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10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내로남불' 비판은 어쩌면 사업자보다 이를 방치하고 조장한 정책 당국이 더 부끄러워 해야 할 사안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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