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대부’ 故 이민화가 다진 한국 벤처 생태계, 제2벤처붐 토양으로

입력 2019.08.04 11:27

3일 한국 벤처기업 업계 대부로 꼽히는 이민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겸 창조경제연구회(KCERN)이사장,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그는 벤처 생태계의 산 증인으로 꼽힌다. 한국 최초 벤처기업인 메디슨 창업과 벤처기업특별법 제정, 코스닥 설립 등 한국 벤처의 성장 토양을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가 다져온 한국 벤처 생태계 속에서 국내 대표 IT기업이자 벤처 1세대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와 엔씨소프트도 탄생할 수 있었다.

5월 28일 서울 도곡동 카이스트캠퍼스에서 ‘유니콘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주제로 열린 KCERN 공개포럼에서 故 이민화 이사장이 발언하는 모습./ KCERN 제공
◇ 한국 최초 벤처 메디슨 창업

이민화 이사장은 한국 최초 벤처 기업인 메디슨을 창업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 벤처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1985년,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초음파 연구팀에서 개발한 초음파 진단기로 메디슨을 설립했다. 연구팀에서 진행하던 국책연구과제 상용화를 맡았던 업체가 중도 포기하자, 직접 창업에 나선 것.

의료장비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메디슨은 다국적 기업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995년 메디슨은 국내 초음파 진단기 시장의 70%, 세계 시장의 17% 이상을 점유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했다.

다만 메디슨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2년 부도를 맞았다. 이민화 이사장이 다양한 분야 벤처기업을 모아 ‘벤처 연방제'를 구성한다는 비전을 내걸고 의료기기 개발과 무관한 40여 개 벤처에 800억원 이상을 투자하면서다. 메디슨은 2010년 삼성전자에 인수돼 현재 삼성메디슨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 벤처기업특별법·코스닥 설립 "1차 벤처붐 기반"

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코스닥 설립과 벤처기업특별법 제정도 꼽힌다. 벤처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90년대부터 그는 투자회수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벤처캐피털 시장이 벤처업계에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회수시장이 없어서라고 진단했다.

그가 1996년 코스닥을 만든 이유였다. 코스닥은 첨단 기술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나스닥(NASDAQ)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중소기업만을 위한 주식시장이다.

1995년 그가 세운 벤처기업협회는 벤처기업 특별법 제정도 주도했다. 1997년 시행된 특별법에는 창업 벤처의 자금과 인력, 입지 등 인프라 구축을 돕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현재 구로디지털단지가 벤처 집적단지로 선정돼 현재 벤처기업 요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특별법의 역할이 컸다.

코스닥과 벤처기업특별법은 IMF 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실은 1999년 IT벤처 붐의 기반으로 꼽힌다. 2000년대 초기 코스닥에 상장했던 정보통신 기술기업 중에는 네이버와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이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은 현재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다.

◇ 기업 호민관으로 ‘중소기업 고충 해결사' 역할

이 이사장은 중소기업 고충 해결사로도 통했다. 2009년 그는 정부 규제로 인한 기업의 애로사항 해소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업호민관(중소기업 옴부즈맨)으로 활약했다.

이전까지 기업의 애로사항 해소를 돕는 정부기관은 있었지만, 중소기업의 눈으로 정책을 바라보고 불합리한 점을 지적해주는 기관은 없었다. 그는 기업호민관으로 취임한 이후 연대보증, 비보복 정책, 기업회생 규제 등 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정책을 두루 발굴했다.

이외에도 그는 경제사회연구회 이사,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유라시안네트워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비즈니스위크지가 선정한 아시아스타 50인에도 선정됐다.

그는 혁신 생태계를 연구하는 사단법인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을 2013년부터 맡아왔으며, 4차 산업혁명과 유니콘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스타트업 벤처업계는 갑작스런 부고 소식에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성진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 대표는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으로 벤처업계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며 "지금까지 창업가 정신 확산과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애써오셨는데 떠나셨다고 하니 황망하다"고 전했다.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회장도 "벤처업계 큰 별이 졌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사장 장례식은 유족과의 협의를 통해 벤처기업협회 장으로 진행한다. 발인은 6일 오전이며 장지는 에덴추모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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