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상장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미중 무역전쟁, 한일 테크전쟁 2라운드에 들어가면서 하반기 실적 개선도 장담하기 어렵다. 기업마다 예정한 투자를 축소하거나 늦추려고 한다. 실물경제에 좋지 않은 신호다.

금융투자 시장마저 불안하다. 5일 한국과 일본, 중국 동북아 3국은 물론이고 미국 주식시장까지 일제히 급락했다. 이른바 ‘블랙먼데이’를 네 나라 모두 경험했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 가능성이 높아진 게 컸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환율까지 치솟았다.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업투자 축소와 금융불안이 내수 침체를 부추기고 또다시 기업실적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우려까지 나온다.


. /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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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자·화학·게임·포털·통신·철강 실적 부진 늪…수출·내수 총체적 난국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7월 31일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125곳(삼성전자 확정실적 기준)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영업이익(36조5507억원) 대비 38.9% 감소한 22조3146억원으로 집계됐다. 4곳 중 1곳은 ‘어닝 쇼크’ 상태다.

전자, 화학 등 주력 수출 산업 분야가 2분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매출 56조1300억원, 영업이익 6조6000억원의 2019년 2분기 실적을 7월 31일 발표했다. 전년과 비교해 영업이익이 절반 이상 줄었다. 이익 규모가 가장 컸던 반도체 부문은 2016년 2분기 이후 분기 기준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LG전자는 가전 부문 실적 호조에 힘입어 2분기 역대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스마트폰 사업 부진 등으로 영업이익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2분기 영업이익은 6523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5.4% 줄었다.

SK하이닉스 2분기 영업이익도 6376억원으로 2018년 2분기(5조5739억원)보다 88.9% 줄었다. 수요 회복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가격 하락폭도 예상보다 큰 모습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 위치한 반도체 생산 라인 내 클린룸 전경./ 삼성전자 제공
LG화학의 2분기 영업이익은 2675억원의 전년 동기 대비 62%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 2분기 영업이익은 4976억원으로 전년 대비 41.6% 줄었다. 에쓰오일은 2분기 적자 전환했다. 2018년 2분기 영업이익은 4026억원 규모였다.

철강 부문도 주춤했다. 포스코는 2분기 영업이익으로 1조686억원을 기록하며 2018년 2분기 대비 14.7% 감소했다. 현대제철은 38.1% 급감한 2326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수요처인 국내 차·조선·건설 등 업황이 부진한 영향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제조업 뿐만 아니다.인터넷과 게임업계 실적도 악화 일로다. 네이버의 2019년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8.8% 하락한 1283억원이다. 실적 부진 요인은 라인의 적자 확대(2분기 영업적자 141억엔) 영향으로 풀이된다.

엔씨소프트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8.9% 줄어든 1294억원이다. 또 다른 대형 게임사인 넥슨과 넷마블의 실적 전망 역시 밝지 않다.

이동통신업계도 내수시장에서 투자 대비 효율을 내지 못한 것으로 해석한다. SK텔레콤은 2분기 영업이익 322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6.95% 줄었다. 마케팅 및 5G 투자 비용이 같은 기간 보다 2007억원 늘어난 탓이다. KT의 2분기 영업이익은 3200억~3400억원으로 2018년 2분기 대비 최대 20%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LG유플러스는 이통3사 중 가장 부진한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반면 현대차그룹 등 자동차업계는 2분기 기대 이상의 호실적을 냈다. 중국 시장 부진에도 미국이나 신흥국 등 여타 지역에서 수익성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2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1조2400억원, 53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51% 증가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 / IT조선 DB
성윤모 산업부 장관. / IT조선 DB
◇ 수출 8개월째 감소…하반기 기업 실적 전망 ‘먹구름’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경제 침체 여파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영향으로 우리 기업의 수출 실적이 마이너스를 지속한다. 반도체, 석유화학, 통신기기, 철강 등 제품의 수출 부진은 하반기 실적 전망을 어둡게 만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수출이 2018년 동기 대비 11.0% 감소한 461억4000만달러(56조원)를 기록했다고 1일 밝혔다. 2018년 12월(-1.7%) 이후 8개월째 지속한 마이너스 성장이다.

반도체 수출이 1년 전보다 28.1% 감소한 74억6300만달러(9조600억원)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시행된 7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반도체 제조용 장비(-2.2%), 기타합성수지(-4.2%), 기타정밀화학제품(-39.4%) 등 대부분 품목에서 2018년 동기 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화학과 석유제품도 국제유가 하락 직격탄을 맞아 수출액이 각각 12.4%, 10.5% 감소했다. 휴대폰 역시 전체 무선통신기기 품목 수출이 23% 줄었다. 철강 제품도 8.9%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협상 재점화와 한일갈등이 실물경제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제기한다. 2분기 반도체, 정유, 화학, 전자, 철강 등 제조 업종 전반에서 경고음이 감지된 가운데 하반기 기업 실적도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반도체 분야는 수출규제 대상이 된 3개 품목이 공정 핵심 소재로 일본산 수입 비중이 90% 이상일 만큼 대일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 회복은 하반기에도 요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화학도 개선보다는 유지 또는 악화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정유부터 석유화학까지 밸류 체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세계적으로는 사업 다각화와 설비 규모 확대가 경쟁적으로 이뤄진다.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수요도 뒷받침하지 못해 회복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는 상반기 실적 악화에 따라 하반기 가격인상이 필수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전방산업인 자동차와 조선업계의 반발이 커 관철 여부가 미지수다.

이통업계는 갤럭시노트10, 갤럭시폴드 출시에 따라 하반기에도 5G 마케팅에 과도한 비용을 쏟을 가능성이 높다. 연내 실적 개선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분기 기업 실적은 참담한 수준으로, 연간 영업이익 전망의 하향 조정도 지속한다"며 "이익 감소의 충격이 크고, 교역환경의 개선 시점을 낙관하기 어려워 실적 회복 시점 예상도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 투자 축소, 내수 악순환 없어야

기업은 실적이 나빠지면 투자부터 줄인다. 2분기 실적 악화가 업종과 기업규모를 거의 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향후 전체 투자 축소 우려를 낳았다. 더욱이 미중 무역전쟁, 한중 테크전쟁, 금융불안 등 다양한 대외 변수로 인해 미래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까지 높디. 기업 투자에 여러모로 악재가 겹쳤다.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비롯한 인력 투자부터 보류하거나 중단한다. 주요 대기업들이 최근 신입 일괄 공개채용을 수시 채용으로 바꾼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채용규모가 줄 전망이다.

기업들은 또 꼭 필요한 설비투자라도 가능하면 시기라도 늦추려 한다. 여러 악재에 직면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하반기 예정한 장비 발주를 내년으로 연기하거나 재검토에 들어갔다.

기업마다 설비 증설과 인력 채용과 같은 신규 투자에 나설 이유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투자를 유인할 획기적인 지원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 투자와 연계한 법인세 감세와 같이 파격적인 세제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심의, 의결한 ‘세법 개정안’을 통해‘생산성 향상 시설에 대한 투자세액공제 요율을 상향했다. 그간 위축된 기업 설비 투자를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끌어내기엔 유인책이 크게 부족하다고 산업계는 본다. 강도높은 투자 유인책 주장도 그간 대기업 감세에 매우 부정적인 현 정부의 기조를 감안할 때 전혀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