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취재본부장


문재인정부가 개각 막판까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교체 여부를 고민한다. ‘도로 유영민 장관’으로 기울다가 모 교수 등용설이 급부상했다. 엎치락뒤치락한다.

청와대는 진작 과기정통부 장관을 교체할 방침이었다. 사실상 지난해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3월 지명한 후보자 낙마 이후로도 5개월이 지났다. 여태 후보자를 찾지 못하자 "이 분야에 그렇게 인물이 없어?"라는 질문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아니다.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안목’이 없다.

아무리 작은 조직이라도 적임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막대한 예산과 조직을 움직이는 정책 수장을 구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까다로운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적임자를 찾아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이 많다. 선택의 폭이 좁다. 아무리 그래도 나갈 채비를 한 장관을 반년 가까이 어정쩡한 상태로 놔둔 것은 너무했다.

청와대가 왜 이렇게 적임자를 못 찾았을까. 이유는 둘 중 하나라고 본다. 인재 풀이 너무 좁다. 좋은 인물을 찾아낼 눈과 귀가 모자란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괜히 ‘삽질경제’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이명박정부가 떠오른다.

장관은 정무적인 자리다. 대통령 코드에 맞는 주변사람만 찾는다고 무턱대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적임자만 잘 찾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힘들다면 인재 풀을 넓힐 때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은 정치 색깔이 상대적으로 옅은 분야다. 내부에서 도저히 적임자를 찾지 못하겠으면 바깥에서라도 찾으면 된다.뭐라 할 사람도 없다.

코드가 조금 맞지 않아도 정책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임무 수행 능력이 있다면 영입해야 한다. 정반대 코드만 아니라면 지지자도 용인해준다. 인재 풀을 이 정도만 넓혀도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 찾는 일이 어렵지 않다. 문재인정부는 좀처럼 그 범위를 넓히지 않았다. 그래서 인선난을 겪었다.


국가 미래 기술전략을 짜고 실행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요성은 최근 동북아 기술 무역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됐다. /사진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 미래 기술전략을 짜고 실행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요성은 최근 동북아 기술 무역전쟁을 계기로 새삼 부각됐다. /사진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더욱 심각한 것은 장관 교체의 메시지가 명료하지 않다는 점이다. 집권 중반 개각이다. "그간 성과가 어떻고 무엇이 부족했고, 이를 보완하려고 앞으로 뭘 하겠다." 장관 교체 메시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박근혜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로 김종훈 키스위모바일 회장을, 중소기업청장(현 중소벤처기업부) 후보자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을 선임했다. 파격적인 인사 실험은 결국 둘 다 중도 사퇴하는 것으로 끝났다. 찬성과 반대가 엇갈렸다. 하지만 기업가 출신 후보자 선임이 던진 메시지만큼 찬성자든, 반대자든 동일하게 들렸다. ‘미래 기술산업을 육성하고 중소기업 중심 국정을 펼치겠다’는 뜻 말이다.

문재인정부 개각에 이런 메시지가 안 보인다. 정치만은 참 잘 보인다.

개각도 하기 전에 조국 전 민정수석을 비롯한 장관 후보자 명단이 거의 노출됐다. 정작 왜 바꾸는지, 새 장관이 해야 할 임무가 뭔지 알 수 없다. "누가 내년 총선에 나가니, 마니" 하는 얘기만 들린다.

과기부 장관 교체 방침도 따져보니 유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 계획이 시발점이었다. 새 장관 후보자 물색 과정에도 정치인이 거론됐다. 겉으로는 정치인 장관 영입인데 속으로는 총선 불출마 권유로 읽힌다. 정치인들이 고사하자 다시 만만한 학계로 눈을 돌렸다. 개각 이슈에 청문회 통과와 내년 총선만 있다. 이런 것이 장관을 교체하는 이유와 메시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기술이 기폭제였다. 한일간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가, 미중간엔 통신기술이 뇌관이다. 물론 그 뿌리를 캐보면 양국간 정치외교와 경제패권 다툼이지만 기술이 국가 경쟁력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무역전쟁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기술정책 지휘자가 바로 과기정통부다. 동북아 3국이 모두 휘말린 기술전쟁은 과기정통부 장관 인선이 앞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 됐음을 뜻한다. 기술산업 비중이 그 어느나라보다 막대한 우리나라다. 어쩌면 과기정통부 장관 인사가 다른 부처 장관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이어야 맞다.

그래서 적임자를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면 누구나 수긍한다. 더 오래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장관 인선 지연 과정은 이런 신중함과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기술산업인들이 씁쓸해 한다.’인물난’ 얘기에는 "모욕적"이라며 발끈한다.

유영민 장관이 애정을 기울인 전담조직(TF)이 하나 있다. ‘아직도 왜TF’다. 소프트웨어산업 고질병인 그릇된 관행을 한번 제대로 고쳐 보자고 만든 조직이다. 산업 현장에 있던 10년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을 보고 놀란 유장관이 "아직도 왜?"라고 물은 것에서 이름을 딴 TF다.

유장관이 공무원에게 물었듯이 청와대에 묻고 싶다. "그렇게 인물이 안 보이나요? 아직도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