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한 삼성전자의 선택이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밀려 수요가 줄면서 디지털 카메라 업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제조사간 경쟁은 더욱 심해졌고, 수익이 줄어든 업계는 실적 부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소모전에서 발을 뺀 삼성전자는 이미지 센서와 스마트폰 카메라 등 유망 시장 개척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1억800만화소 모바일 이미지 센서를 개발하고, 업계 및 소비자로부터 최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정 받는 등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가 나온다.

◇ 케녹스·V·블루에서 NX까지…영욕의 세월 보낸 삼성전자 디지털 카메라

삼성전자는 1990년대 말 삼성테크윈 케녹스 브랜드를 앞세워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진출했다. 독일 광학 명가 슈나이더 렌즈, 회전형 모니터와 DMB·MP3 컨버전스 등 독특한 개성을 앞세워 인지도를 높였다.

2006년에는 일본 펜탁스와 제휴해 DSLR 카메라 GX시리즈를 선보였다.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 브랜드 블루(Vluu) 시리즈는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셀피 특화 기술 앞뒷면 듀얼 모니터와 플립형 모니터, 고사양 영상 촬영 기능 등 디지털 카메라 시장 유행을 선도한 경력도 있다.

삼성전자 미러리스 카메라 NX1.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미러리스 카메라 NX1.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2009년에 디지털 카메라 사업부를 삼성디지털이미징으로 통합했다. 2010년에는 독자 개발한 하이브리드(미러리스) 카메라 NX 시리즈 첫 제품 NX10을 출시한다. 이 제품은 세계 최초 APS 미러리스 카메라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NX 시리즈 카메라와 교환식 렌즈군 종류를 순조롭게 늘렸다.

삼성전자 NX 시리즈는 성능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소니와 올림푸스 등 주요 제조사의 미러리스 카메라의 인기를 넘지는 못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15년 이후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축소하고 2016년 제품 생산을, 2017년 제품 판매를 차례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 철수 결단이 곧 기회로…스마트폰 카메라 및 이미지 센서 부문에서 앞서

삼성전자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에 소비자 및 업계는 대부분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2014년 등장한 최고급 미러리스 카메라 NX1은 사진 화질·동영상·자동 초점 등 성능 면에서 당시 경쟁 모델을 압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꾸준히 격화되는 시장 환경에 삼성전자가 실속 있는 판단을 내렸다는 분석도 있었다. 2010년 1억2000만대로 정점을 찍은 세계 디지털 카메라 생산량은 이후 곤두박질쳤다. 2019년 상반기 생산된 디지털 카메라는 731만대에 불과하다. 수요가 줄면서 자연스레 제조사별 실적도 급격히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쌓은 이미지 센서 및 광학 설계 노하우를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에 도입한다. 2014년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S5의 카메라에 독자 개발 이미지 센서 아이소셀이 최초로 탑재됐다. 디지털 카메라 수준의 위상차 자동 초점을 지원하는 첫 스마트폰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아이소셀 브라이트 HMX 이미지 센서.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아이소셀 브라이트 HMX 이미지 센서. / 삼성전자 제공
광학 기술도 적극 도입했다. 2015년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S6의 카메라에는 광학식 흔들림 보정과 피사체 추적 기능이 적용됐다. 2016년 공개된 삼성전자 갤럭시S7의 카메라에도 초점 검출 성능을 크게 높이는 듀얼 픽셀이 추가됐다.

2018년 갤럭시노트9에는 듀얼 카메라, 2019년 갤럭시S10시리즈에는 트리플·쿼드 카메라가 각각 탑재됐다. 이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세계 사진 벤치마크 사이트 DxO마크의 화질 평가에서 최고점을 획득하는 등 화질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들일 공을 이미지 센서 연구·개발에 쏟은 삼성전자의 계획은 성공했다. 스마트폰 업계 신진 세력인 중국 제조사들이 속속 삼성전자 이미지 센서를 선택했다. 갤럭시 스마트폰의 수요도 견조했다. 이를 뒷받침으로 삼아, 삼성전자는 세계 모바일 이미지 센서 시장 1위 기업 소니를 맹추격 중이다.

2018년 삼성전자와 소니의 모바일 이미지 센서 경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소니가 먼저 48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개발하자, 삼성전자는 4800만 화소에 이어 6400만 화소 이미지 센서를 양산했다. 2019년에는 세계 최초 1억800만화소 이미지 센서 양산 소식을 밝히며 소니를 제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바일 이미지 센서는 스마트폰 카메라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네트워크 TV와 AI로봇 등 첨단 기기의 필수 부품이다. 이미지 센서 시장 패권을 잡는 곳이 첨단 기기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이미지 센서 기술을 개발,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한편 모바일 기기의 혁신도 이끌겠다고 밝혔다.

전 삼성전자 이미징사업부 관계자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 철수 당시에 상당한 수준의 이미지 센서 기술력을 확보했었다. 업계를 놀라게 할 만한 제품도 있었다"며 "이 경험과 자산 덕분에 삼성전자 이미지 센서와 스마트폰 카메라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