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토종 인터넷 기반 방송서비스(OTT) 사업자 ‘웨이브’가 9월 18일 출범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SK브로드밴드의 OTT 서비스인 ‘옥수수’와 지상파 3사의 ‘푹(POOQ)’의 통합을 최근 조건부로 승인했고, 옥수수와 푹 간 결합 작업이 속도를 낸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은 한국 OTT 시장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했는데, 토종 OTT의 출범이 그 기세를 꺾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토종 업체 중 경쟁 상대로 꼽히는 ‘티빙’ 운영사 CJ ENM과 일부 스타트업은 공정위가 내세운 조건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대형 유료방송 업체들은 플랫폼 기업과 PP가 상생할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을 내놓지만, 일부는 웨이브가 앞으로도 계속 공정위의 인가 조건을 얼마나 지키겠느냐는 희의적인 전망도 나온다.

. /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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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CJ ENM은 티빙의 경쟁사인 웨이브에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 CJ ENM은 tvN 제작 드라마를 제작할 때 넷플릭스로부터 판권료를 받은 사례도 있다.

21일 CJ ENM 한 관계자는 "웨이브는 티빙의 경쟁 상대기도 하지만 CJ ENM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며 "웨이브는 CJ ENM이 전략적으로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는 창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OTT 운영 전략에서 중요한 점은 다른 서비스에서 볼 수 없는 독자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OTT 시장에서 디즈니+(플러스) 등 기업과 경쟁을 펼치는데, 교집합 이외 콘텐츠를 무기로 가입자를 모집한다. 각 기업 간 오리지널 콘텐츠를 무기로 삼다 보니 시장 규모의 확장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디즈니 등 OTT 기업 간 경쟁 심화에 대해 "아마존과 10년째 OTT 분야에서 경쟁 중이지만, 제로섬 경쟁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일부는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등을 통해 플랫폼과 콘텐츠제작사(PP)로 구성된 OTT 생태계가 활성화할 수 있지만, 공정위가 내건 조건이 오히려 경쟁을 해칠 수 있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공정위는 옥수수와 푹 간 기업결합 승인과 함께 지상파3사에게▲다른 OTT 사업자와의 기존 지상파 방송 VOD 공급계약을 정당한 이유 없이 해지 또는 변경 금지 ▲다른 OTT 사업자가 지상파 방송 VOD 공급을 요청하는 경우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성실하게 협상(협상을 진행하기 어려운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경우는 제외)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현재 무료 제공 중인 지상파 실시간 방송 중단 또는 유료 전환 금지 등 조건을 걸었다. 또 SK텔레콤의 이동통신서비스 또는 SK브로드밴드의 IPTV를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의 웨이브 가입을 제한하는 조건도 달았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조건의 이행 기간을 기업결합 완료된 날부터 3년 이내이며, 합리적이고 타당한 근거가 있을 경우 1년 이 경과한 후부터 시정조치의 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OTT 업계 한 관계자는 "어차피 웨이브 서비스를 시작한 후 시장에서 자리잡는 등 이슈가 있어서 공정위가 제시한 1년이라는 숫자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다"며 "웨이브가 시작과 함께 바로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는 없겠지만, 1년이 지난 후 콘텐츠 공급 재계약 시점이 도래했을 때 어떤 자세로 협상에 임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아직은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가 독점적 지위를 가졌고, SK텔레콤 역시 제휴 사업자로서의 지위가 있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이뤄질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공정위 결정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케이블TV 업계는 공정위의 웨이브 인수합병 승인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와 콘텐츠사용료(CPS)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케이블TV 사업자에 주문형비디오(VOD)를 제공하는 홈초이스도 OTT 시장 변화에 영향을 받지만, 웨이브 인수합병과 관련한 입장 발표를 꺼렸다.

상대적으로 정부나 기업의 의사결정에서 자유로운 대학 소속 교수는 웨이브 인수합병에 대한 의견 제출에 부담을 갖지 않았다. 한국 OTT 포럼 초대회장을 맡은 성동규 중앙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기대와 함께 우려한다는 전망을 내비쳤다.

성 교수는 "넷플릭스 같은 해외 OTT 성장 등의 외적인 위협요인으로 인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일했던 기업들이 통합법인을 만든 것 자체가 위축된 국내 OTT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다만 공정위가 조건으로 내건 콘텐츠 차별 금지 원칙은 콘텐츠를 무기로 삼아야 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