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지연·불편 있었지만 ‘제한’ 없었다”…법원이 페북 손든 이유

입력 2019.08.23 07:55 | 수정 2019.08.29 15:33

세기의 재판으로 관심을 모은 페이스북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간 법정 다툼에서 페이스북이 이겼다. 법원은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내린 시정명령 등 처분이 위법하다"며 "모든 제재 처분을 취소함과 동시에 소송 비용을 모두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방통위는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지만 이를 뒤집을 만한 제도적 보완과 논리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항소심에서도 고전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페이스북아일랜드리미티드(Facebook Ireland Limited)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청구의 소(2018구합64528)에서 22일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방통위와 페이스북 간 행정소송은 페이스북의 제소로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방통위의 2018년 3월 제재 조치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방통위는 페이스북이 서비스 접속 경로를 임의로 변경한 것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전기통신서비스의 가입·이용을 제한 또는 중단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3억9600만원의 과징금 조치를 내렸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서울행정법원 입구 모습. / 이진 기자
法 "접속 지연·불편은 이용 제한 아냐"…명확한 제재 수단 마련해야

하지만 법원의 해석은 달랐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전기통신서비스의 이용을 ‘지연’하거나 이용에 ‘불편’을 초래한 행위에 해당할 뿐, 이 사건 쟁점조항에서 정한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원칙적으로 이용 자체는 가능하지만 지연되거나 불편을 초래한 경우는 이용 제한에 해당하지 않아 페이스북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접속이 지연되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까지 ‘이용의 제한’에 해당한다면, 통신사(ISP)의 전송용량과 다른 CP의 트래픽 양 등 외부의 여러 요소에 의해 쟁점 조항의 위반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수범자(규범의 적용을 받는 사람)의 법 집행 여부에 관한 예측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봤다.

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해외 전송망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면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이용이 지연되거나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스스로 국제전용회선 및 해외 ISP와의 연동 용량을 증설해 접속 속도를 회복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접속 속도가 저하돼 이용을 지연하거나 불편을 초래하는 행위를 제재하려면 쟁점조항인 ‘이용제한’ 외에 별도로 명문의 규정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민봉 의원(자유한국당)이 3월 대표 발의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언급했다. 개정안 신설 조항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용자에게 제공되는 전기통신서비스의 품질을 저하시키거나 저하될 우려가 있는 방식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행위의 유형으로 추가했다.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와 망 접속 관련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접속경로를 변경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용자에게 피해가 발생하면서 제재의 필요가 절실하더라도 추가적 입법을 통해 명확한 제재수단을 마련하기에 앞서, 이용제한의 문언적·체계적 해석 범위를 벗어나면서까지 쟁점조항의 포섭범위를 확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행정법원 출입문 모습. / 이진 기자
法 "경로변경 후 품질 저하 수치, 국제 기준 이내…객관적 근거로 보기 어려워"

인터넷망에서 불특정 다수의 트래픽이 사전 예고 없이 다양한 경로로 전송되기 때문에 품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페이스북의 주장도 인정받았다. ‘페이스북이 언제나 방해, 지연, 결함 없이 기능할 것이라 보장하지 않는다’는 페이스북의 약관이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인터넷접속서비스의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지, CP가 관리·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CP는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이 ‘어느 정도까지‘ 저하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며 "ISP가 이용자에 대해 최저속도 보장 약관을 두는 경우는 흔하지만 CP가 이용자에 최저속도 보장 약관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특히 방통위가 페이스북의 경로변경 이후 품질이 저하됐다고 제시한 수치는 물론 이용자의 민원 건수가 과징금 부과를 합리화 하는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침해한 객관적인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법령에 규정된 객관적 수치를 비교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패킷 손실률, 패킷 지연시간, 지터 값, 비트 에러율, 네트워크 처리율 등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여야 한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이 사건 처분의 근거로 SK브로드밴드의 경우 29㎳에서 130㎳로, LGU+ 무선의 경우 43㎳에서 105㎳로 응답속도가 저하됨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히 SK브로드밴드의 경우 320㎳ 이상에 해당하는 측정치가 최번시(20:00 ~ 24:00, 접속자가 가장 많은 시간대) 기준 12.2%에 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 "방통위가 제시한 수치는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나 국제전기통신연합 등의 기준을 초과하지 않아 사건 처분의 적법성을 뒷받침할 객관적 실증적 근거로 보기 어렵다"며 "SK브로드밴드의 경우 개별 응답속도 320㎳ 이상을 넘긴 것이 하루 24시간 중 약 3% 정도에 불과하고, LG유플러스는 이러한 자료조차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민원건수는 2016년 12월 8일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이후 조금 증가했다가 다시 감소했고, 오히려 2017년 2월 중순에 이르러 크게 증가했는데 이는 방통위가 제출한 SK브로드밴드 이용자의 일자별 네트워크 평균 응답속도 추이와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위원회 현판(왼쪽), 페이스북 로고. / IT조선 DB
방통위 망 이용대가 가이드라인 제정 ‘동력’ 잃나

이번 판결로 방통위가 글로벌 CP의 무임승차를 문제 삼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더라도 힘을 받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통위가 승소했을 경우 글로벌 CP에 대한 규제 근거를 강화는 동시에 통신사도 향후 글로벌 CP와 망 이용대가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지만 가이드라인에 따른 규제 근거는 힘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

오히려 유튜브·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 CP가 통신사와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이 접속경로를 변경해 네트워크 품질을 악화시켜도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다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재판부는 페이스북이 방통위의 사실조사가 시작된 이후인 2017년 10월 13일에야 SK텔레콤의 접속경로를 기존대로 KT로 복원한 점을 인지했다"며 "그럼에도 이 행위가 이용 지연이나 불편을 초래했을뿐 이용을 제한하진 않았고,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함으로써 글로벌 CP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만들어진 셈이다"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방통위는 판결문을 전체적으로 검토한 후 항소에 나선다.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친 것을 인정받기 위한 논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성호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은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 행위가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쳤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며 "처분의 합당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면 논리를 더욱 보강해야 하고, 필요한 제도 개선 사항에 대해서도 지속 검토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번 판결은 국내 기업과 글로벌 CP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방통위는 앞으로도 이같은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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